에로스와 아우라
김행숙 문학 에세이
“새로운 것을 시에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면서 우리는 새로워진다.
시는 사랑의 운동이고 모험이고 발명이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폭죽 같은 에너지를 촉발시킨 감각의 연금술사 김행숙 시인의 문학 에세이 『에로스와 아우라』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란 무엇이며, 시가 우리에게 와서 어떻게 작용하고 운동하는지, 시를 쓰고 읽는 행위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새로워지는지에 대해 감각적으로 풀어낸 산문집이다. 그동안 시인이 고민해 온 ‘나’와 ‘타인’이 만나는 찰나, 그 사이, 즉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깊이 있게 만나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너’와 ‘내’가 만나 서로에게 물들어 가며 ‘우리’로 미묘하게 바뀌는 그 매혹적인 떨림의 세계를 보여 준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파동이 퍼져 나가서 이루는 경계의 윤곽을 ‘아우라’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존재를 둘러싼 주위와 ‘관계’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인 권위를 드리우는 그림자라기보다는 존재를 바깥으로 열어 놓고 바깥을 존재 속으로 새어들게 하는 공명(共鳴)의 영역이다. 그녀는 이 ‘아우라’를 일컬어 ‘사랑의 작용’, ‘시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이란, 시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떻게 존재하고 운동하는가, 라는 질문들 속에서 쓴 글들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글쓰기가 삶의 운동이며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말해 주는 글을 통해 그동안 시인이 추구해 온 타인의 의미, 소통의 의미와 방법 등에 관한 고민과 사색을 엿볼 수 있다. 2부와 3부는 김수영, 최승호, 허수경, 이장욱 등 현대 문학을 이끌어 가는 타인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새로워진 시인 자신의 경험이 실려 있다. 4부에서는 우리 현대시의 문제적인 시인들의 시론을 살펴본다. 시를 쓰는 것과 시를 말하는 것,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는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으므로, 그 ‘사이’를 더욱 깊게 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새로운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우리는 새로워진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시와 함께 운동하는 삶을 꿈꾼다. 그녀가 그렇게 쓰면서 새로워지듯이,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워진다.
진정한 언어의 소통이 부재하는 ‘불통’의 시대에 타인들인 우리를 향하여 따뜻하게 말을 건네 오는 문학, 그 문학의 ‘아우라’ 안에서 대화의 공동체를 꽃피우고자 시인은 우리를 초대한다.
■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노래하는 김행숙 시인의 문학 에세이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를 통해 김행숙 시인은 전통적인 의미의 서정시와 뚜렷이 구분되는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의미의 논리보다 미시적인 감각의 도약을 만들어 내는 언어의 매혹을 살린 그녀의 시는 “‘현대시’의 어떤 징후”를 예고하며 “경계에 걸려 흔들리는 불안한 감성”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그녀의 화두는 “나와 다른 존재와의 사이, 아주 좁으면서도 감각과 사유의 운동이 일어나는 격렬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김행숙은 나와 타인이 만나는 찰나,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사상의 기저를 “에로스와 아우라”와의 관계로 풀어 나간다. 어떤 존재의 고요한 파동인 ‘아우라’는 독자성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채로 멀리서 가까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그녀는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라고 말한다. 에로스의 눈빛, 에로스의 살결 속에서 아우라는 상호적이고 접촉적인 것이 된다. “타인의 몸 주위로 구부러진 공간의 만곡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자신의 공간 속으로 타인을 불러들였다 내보내곤 하며 우리는 살아가는 것,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김행숙의 이러한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우리에게 따뜻하게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 이 책의 구성
이 책의 1부는 문학이란, 시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떻게 존재하고 운동하는가, 라는 질문들 속에서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로서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소녀 시절의 비밀스러운 기억에 관한 글들, 그녀의 개인사와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 글들, 그리고 생존의 도구로서의 ‘호흡’의 고통, ‘호흡’의 기쁨과, 시의 운율로서의 호흡을 연관시켜, 글쓰기가 삶의 운동이며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말해 주는 글 등이 실려 있어서, 그동안 시인이 추구해 온 타인의 의미, 소통의 의미와 방법 등에 관한 고민과 사색까지 그대로 녹아 있다.
‘바람이 분다’는 것, 이것이 타인의 의미가 아닐까. 타인은 똑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는 기차일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을 불화, 갈등, 오해, 혐오, 착각, 질투, 공허, 쓸쓸함, 차가운 마음, 따뜻한 마음, 소중한 마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 드물게는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예스 위 캔”을 합창하는 성과 사회의 노동 속에서의 분열적이고 고갈적인 피로가 아니라, 노동을 내려놓은 일요일의 피로, “정체성의 조임쇠를 느슨하기 풀어 놓”은 상태에서 느끼는 무위의 피로를 한트케는 예찬한다. 유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난 자의 시선 속에서 “사물들은 반짝이고 어른거리며 가장자리가 흔들린다. 사물들은 더 불분명해지고 더 개방적으로 되면서 확고한 성질을 다소 잃어버린다.” 사물들은 “모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우애의 분위기”, “공동의 피로”, “피로의 구름”, “에테르 같은 피로”는 서로를 가르는 경계선들을 뭉개면서 “평화에 함께 기여”한다. 이 개방성을, 이 우애의 분위기를 사물들이 되찾은 ‘숨’이라고, 또는 ‘아우라’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우라는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인 권위에 드리우는 그림자라기보다는 존재를 바깥으로 열어 놓고 바깥을 존재 속으로 새어들게 하는 공명(共鳴)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19쪽
2부와 3부는 일종의 독후감에 해당하는 글들로서 텍스트를 읽은 경험, 다시 말해 텍스트를 읽으면서 새로워진 경험을 쓴 글들이다. 김수영, 최승호, 허수경, 심보선, 문태준, 이장욱 등 현대 문학을 이끌어 가는 타인의 문학 텍스트를 읽으면서 새로워진 시인 자신의 경험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녀의 시보다도 더 반짝이는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냄새, 목소리, 손은 가까운 곳에서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서 멀어진다. 미끄러운 거울에서, 깎아지른 절벽에서 ‘너’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섭고 안타깝고 간절한 일인가. 너의 손을 잡으면, 너의 손을 놓으면, 아아……. 절벽에서는 죽을힘을 다하여 너를 부른다.
-78쪽
그녀는 우리에게 주어진 ‘읽는 삶’에 감사를 표하며, ‘읽기’를 일컬어 “우리가 문학을 하는 또 하나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독서는 눈을 뜨고 하는 것인 만큼 눈을 감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놀라운 독서의 경험은 사랑이 그러하듯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변화시키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사건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자, 이제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아 보자. 사랑에 빠지듯이 어둠에 빠져 보자. 사랑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듯이 어둠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깜깜한 타인 속으로 스미면서 …… 환해지고 투명해지는 어떤 순간,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84쪽
4부에서는 우리 현대시의 문제적인 시인들의 시론을 살펴본다. ‘시와 정치’의 상관성을 시대적 대응에서가 아니라 시학적 차원에서 탐색하여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동시에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사례를 창출한 김수영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 시작의 관계를 본격적이고 심층적으로 탐색한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현대시 50년의 전개를 ‘시적 형태’의 양상과 변이의 맥락에서 재구성한 김춘수의 『한국 현대시 형태론』에 관한 평론들을 통해, ‘시론’은 단지 시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것과 시를 말하는 것,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는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으므로, ‘사이’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이’를 깊게 하고 복잡하게 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더욱 문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새로운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우리는 새로워진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시와 함께 운동하는 삶을 꿈꾼다. “모르는 시가 언제나 남아 있어서 우리는 타인을 다시 상상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듯이, “모르는 당신이 언제나 남아 있어서 우리는 시를 다시 상상하고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쓰면서 새로워지듯이,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워진다.
■ 본문 중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무언가 더 말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어서 글을 쓰겠지만, 글을 쓰면서 예상치 못했던 생각과 말들이 빚어지고 생겨나기도 했다. 문학은 혼잣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는 것, 문학은 당신을 향하여 있다. 문학의 에로스는 핏줄의 공동체가 아니라 대화의 공동체를 꽃피운다. 어디, 어디에서 피어날까?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 그 분위기, 그것이 문학의 아우라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들의 대화는 화기애애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고, 문득 길이 끊기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했으며, 거의 싸움에 육박할 때도 많았다. 사교든 싸움이든 당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 당신과의 관계에 휩싸여 무언가 달라지는 것 같은 기분, 그 분위기, 그것을 문학의 아우라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공기가 바뀌고 냄새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순간, 미묘하게 세계가 바뀌는 것이다. 그 순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책머리에
1부 누군가의 호흡
에로스와 아우라
그 주홍빛……
서른 개의 질문 중에서
머리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가로수 논쟁
가로수 원근법의 끝에서
가로수-로봇 프로젝트
숨 쉬는 일에 대하여
감정의 건축술
2부 맨몸, 거울의 몸, 타인의 몸
이상의 절벽과 거울
사랑의 기술: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
무엇이었어요, 당신?: 허수경의 「그 그림 속에서」
타인의 흔적: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거리며」
회귀하는 ‘맨몸’: 문태준의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불안, 시를 쓰는 기분: 심지아의 「이웃들」
깊이의 무한함과 몸의 순간: 이장욱의 「핀란드」
새로운 생명파: 김중일의 「체온의 탄생」
나의 수난극: 정재학의 「어머니가 춧불로 밥을 지으신다」
‘귀 없는 토끼’라는 감각 기계: 김성대의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신(新)에밀: 김승일의 「에듀케이션」
‘그것’이 있다: 황인찬의 「그것」
물결과 숨결: 성동혁의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3부 쓴다, 쓴다, 쓴다,
쓴다, 발 없는 새처럼, 빛나는 쟁기처럼: 최승호 시인과의 대화
이장욱은 어디에 있는가
희미한, 너무나 희미한, 그는 ‘거의 모든 세상’이 되려 한다: 조연호의 글쓰기
(어디선가) (누군가) (무엇인가) 쓴다: 김언의 소설을 쓰자
문제는 거울이 아니라 주체다: 황성희의 앨리스네 집
언니와 물고기와 계단의 시간: 이영주의 언니에게
4부 시를 쓰는 것과 시를 말하는 것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여성-되기’와 ‘시-하기’: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김춘수가 ‘산문시’를 가지고 사유한 것들 :김춘수의 한국 현대시 형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