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임원묵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10월 4일 | ISBN 978-89-374-0944-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뒤섞인 시간과 어둠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무수한 과거의 형상들,
희미해진 몸들이 어두운 온기를 나누는
밤과 꿈의 숲

편집자 리뷰

임원묵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이 민음의 시 324번으로 출간되었다. 임원묵 시인은 상실 이후의 사랑을 그리는 “간절함과 미학적인 것의 결속”이자 “기억의 현상학”이라는 평으로 2022년 《시작》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임원묵의 시는 기억이 가진 양가적인 힘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은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을 만나게 하고, 이별과 사랑,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다. 바로 그 힘으로 임원묵의 시는 양립할 수 없는 가능성들을 동시에 탐색하고 사방으로 팽창해 나간다.

‘작은 점’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처럼,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은 상실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기억의 우주’다. 이 우주에서 영원불변한 것은 빛이 아니라 사랑이다. 어떤 힘에도 변질되지 않기에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기준이 된 빛처럼, 이곳에서는 사랑이 절대적 기준이다. 빛이 흩어지고 시간이 뒤섞이자 깊은 어둠을 타고 무수한 과거가 현재로 온다. 탄생과 죽음, 멸종과 진화가 나란히 놓이는 이 우주에는 소멸이 없다. 새와 공룡은 개와 늑대처럼 공존한다. 나와 똑같은 이를 만나면 죽음이 찾아온다는 도플갱어의 저주도 힘을 잃는다. 만날 수 없던 나와 나, 너와 너가 도처에서 마주치고, 똑같이 생긴 얼굴들에서 서로 다른 표정과 감정 들이 쏟아진다. 이곳에서 나와 너 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멀어지는 동시에 껴안으며 영원히 함께 있다.

 

 

■ 너를 두고 온 미래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슬프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 사랑 대신 용서를 구하기로 한 셈이지요

― 「삼월」에서

 

임원묵의 시가 시작되는 구심점, 상실의 기억에는 사랑과 죄책감이 언제나 함께 깃들어 있다. 기억을 끝없이 돌이키며 상실이 없는 미래를 찾는 임원묵의 화자는 이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사랑의 지속과 죄의 용서를 동시에 갈구한다. 그러나 곧 어떤 미래에서도 사랑과 용서는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억이 비추는 것은 과거뿐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통해 사랑과 죄가 선명해지는 만큼, 미래는 멀어진다. 과거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한 죄의 용서는 먼 미래의 일이 된다. 그렇게 임원묵의 화자는 “사랑 대신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먼 미래에도 ‘너’를 둔다. 미래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 사랑과 죄가 없는 무구한 어둠이지만, 그곳에 ‘너’를 둔 순간 미래도 ‘나’의 사랑과 죄가 빛나는 기억이 된다. ‘나’를 용서하지 않는 ‘너’는 ‘나’의 모든 미래에 있다. 이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미래를 기다린다.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네가 던진 돌처럼 미래가 내게 날아들기를.

 

 

■ 깊은 밤의 숲

여긴 길의 끝이나 세계의 종말처럼 공허하지 않습니다. 불빛이 없어도 모종의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나는 더 걸을 수 있어요.

― 「열 번째 겨울, 바닷마을에서」에서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에서의 밤은 언제나 “밤이 아닌 것들”과 섞여서 온다. 여섯 개의 다리로 어둠을 헤아리는 곤충, 팔을 물어뜯는 맹수들, 도로 위의 고양이, 쓰레기봉투 앞에서 낑낑거리는 개. 소름 끼치고, 섬뜩하고, 아프고, 애처롭게, 그렇게 밤은 살아 있는 채로 ‘나’에게 달려든다. 임원묵의 인물들은 어둠 속에 다만 머물지 않는다. 어둠을 헤아리거나 더듬어 감촉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가 죽고, 서로의 몸을 바꾸며 경계를 흐리다가 이윽고 어둠이 된다.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은 시공간의 한계가 없는 깊은 어둠, 밤과 꿈의 숲이다. 끝내 의심했던 ‘멸종’과 애써 믿었던 ‘진화’, 네가 없는 ‘미래’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제 우리는 이 어둠이 되어, 어둠의 몸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 본문에서

멸종 위기 동물에 관한 글을 읽었다 밤낮없이 사냥당했다, 는 문장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램프 아래에서

 

(…)

 

작아져만 갈 뿐 사라지지 않는

깊은

불에 기대서서

 

멸종과 위기를 끝내 의심하는 일

― 「새와 램프」에서

 

검게 변한 것들의 감촉. 혹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밤에 팔을 휘저었을 때 무수히 달라붙는 맹수들의 어금니 자국. (…) 그 갑작스러운 질감을 우리는 어둠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 여긴 길의 끝이나 세계의 종말처럼 공허하지 않습니다. 불빛이 없어도 모종의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나는 더 걸을 수 있어요.

― 「열 번째 겨울, 바닷마을에서」에서

 

자꾸 숨을 참았지

생각을 버리고 싶어서

 

시를 쓰는 내가

그게 사격술인 줄도 모르고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사냥꾼은 말할 것이다

 

이 새의 날개는 비밀로 하자

우리는 모두 이 새의 날개에

총을 쏜 적이 있으니까

―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에서

 

나는 잠에서 깬다.

 

햇빛보다 진실하게

내가 쓰레기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 생각들은 뼈처럼 희게 빛나서 떠오르는 순간 잠에서 깰 수 있다. 밤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어도 환한 빛으로 내부를 고조시키고 구석구석 먼지를 일으킨다

― 「탄생」에서

 

견딜 수 없는 일들은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사흘쯤 앓고 나면

열이 내렸다

 

선명한 진실을 담았다가

흰 꿈을 함부로 앓으면

자국이 남기도 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이니까

― 「구조조정」에서

 

나는 내게 웃는 사람들을 하나씩 지웠다 길이 적을수록 움직임은 확실해지겠지 외로울수록 정확한 문장을 쓰곤 했잖니 나는 당신이 아닌 것들을 검게 칠했다 오, 나는 이 소실점이 마음에 드네

― 「치킨 레이스」에서

 

 

■ 추천의 말

어두운 곳에서 서로를 감싸안는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에 더욱 집중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문득 두려워지고, 또 불현듯 외로워지지만, 그렇기에 더욱 서로를 열정적으로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 가까워서 아찔해질 것만 같은 어두운 온기가 임원묵의 시에는 가득하다.

비관하면서도 희망을 꺼뜨리지 않고, 멸종해 가는, 혹은 멸종해 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일. 혹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사랑의 형상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계속되는 역접과 망설임 끝에 결국 도달하게 되는 확신까지가 임원묵의 시이다.

―황인찬(시인)

목차

■ 차례

1부 작은 점

 

친한 사이 13

콜링 14

모르는 사람 16

하루살이가 들어간 귀 18

흔적 20

삼월 21

국경의 오후 22

사랑 24

새와 램프 25

음각 풍경 28

열 번째 겨울, 바닷마을에서 29

고백 30

밤에 사는 푸른 고양이 32

겨울잠 34

비밀에게로 36

성탄절 38

증언 39

 

2부 비를 맞고 사라지는 불

 

침대 43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 숲 44

탄생 46

피 48

가벼운 외출 49

하나와 둘 51

붉은 협곡 53

흰모래의 계절 54

영화와 영화 56

싯다르타와 유디트가 이 해변에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58

두 개의 기도 60

하수구에 핀 숲 62

처음 만난 사람 64

DIY가구 조립 66

땅을 파는 사람들 68

오진 70

시 71

겨울에게 72

 

 

3부 푸른 차에 기대

 

먹이 활동 77

약 78

수련회 80

다짐 81

구조조정 82

메리 제인 84

밀과 설탕 86

계기 88

휴가 90

각자의 섬 92

회식날 94

순환 열차 96

치킨 레이스 98

서울 100

학교 앞 거리 102

빈 곳 105

선명한 날 106

연대기 108

 

작품 해설–송현지(문학평론가) 111

추천의 글–황인찬(시인) 134

 

작가 소개

임원묵

1989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22년 《시작》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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