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원제 Bartleby, The Scrivener : A Story of Wall-Street·Billy Budd, Sailor

허먼 멜빌 | 옮김 이삼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9월 6일 | ISBN 978-89-374-6450-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80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해양 모험담 『모비 딕』으로 19세기 근대적 이상을 비판한 미국의 대표 작가 허먼 멜빌

월가의 기이한 사건 「필경사 바틀비」, 멋쟁이 선원 이야기 「선원 빌리 버드」 수록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 어릴 적에는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때 읽지 않았던 허먼 멜빌을 사랑한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멜빌은 세계가 두려워하는 작가이다. ─ D. H. 로렌스

편집자 리뷰

■ 상징과 알레고리로 존재의 심연 드러내는 위대한 작가 허먼 멜빌

    멜빌 세계관의 정수를 드러내는 후기 단편 소설 두 작품 엄선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장편 소설 『모비 딕』을 쓴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집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가 세계문학전집 450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에 엄선한 멜빌의 단편 소설은 기원이 없는 순수한 인간 바틀비를 통해 근대적 이상 세계를 비판한 「필경사 바틀비」(1853)와 순수한 선원 빌리 버드를 통해 계몽주의적 이념을 비판한 「선원 빌리 버드」(1924)이다. 멜빌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해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의 대중적 관심사를 반영한 해양 모험담 『타이피』(1846)와 『오무』(1847)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멜빌이 심혈을 기울여 1851년에 발표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신화적 주제를 천착한 장편 소설 『모비 딕』은 대중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멜빌의 새로운 예술적 열망에 영감을 준 것은 너새니얼 호손과의 교류였다.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 경향이 강한 호손의 영향으로 멜빌은 신기한 풍물과 모험 이야기를 버무려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대신 독창적이고 새로운 자기 세계를 구축하였고, 이를 단편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고스란히 반영한다. 멜빌은 익명으로 2회에 걸쳐 《월간 퍼트넘》에 「필경사 바틀비」를 발표했고, 1924년 유고작 『빌리 버드』가 출간되면서 그의 문학성은 다시 주목받는다. 이후 20세기 중반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평가 과정에서 멜빌은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자리매김했다.

 

월 스트리트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인 화자는 ‘바틀비’라는 청년을 필경사로 채용한다. 어느 날 ‘나’는 필사한 서류를 검토하자고 바틀비를 호명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거절한다.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바틀비는 필사 외의 모든 업무를 이 말로 거절하더니 필사를 거부하고, 사무실에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하고, 급기야 먹기마저 거부하는데…….(「필경사 바틀비」)

 

그레이블링 선장이 이끄는 ‘인간의 권리’호 선원인 빌리 버드는 정세가 급박하여 영불해협에서 출항 중이던 영국 해군 전함 벨리포텐트함에 강제로 징집된다. 그리스 조각 같은 외모에 고귀한 영혼을 지닌 빌리 버드는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단 한 사람, 클래거트 선임 부사관은 날것 그대로인 이 ‘멋쟁이 선원’에게 적개심을 느끼는 동시에 매료된다. 어느 날 클래거트는 비어 함장을 찾아가 빌리 버드를 모함하는데, 빌리 버드의 운명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선원 빌리 버드」)

 

 

■ 기원이 없는 인간 바틀비를 통해 인본주의적 한계 드러내는 「필경사 바틀비」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필경사 바틀비」는 단편에 불과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줄거리야 지극히 간단하지만 왜 그런 식으로 줄거리가 흘러가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왜 바틀비는 그런 선택을 하는가, 왜 화자는 그런 선택을 하는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줄거리가 이렇게 흘러가는가’라는 질문이 ‘왜 바틀비는 그런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다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바틀비는 과연 어떤 인간인가.’이다. 이 최종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설명은 대개 바틀비를 ‘소외된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소외론’이 주로 주목하는 내용은 벽에 갇혀 벽만 바라보는 인간, 남이 써놓은 글을 그대로 복사하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인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임금 노동자, 저항으로 아무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인 편지를 불태우는 일을 오래 했던 인간, 결정적으로 인간의 존재론적 고립감에 대한 화자의 마지막 탄식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등이다.

 

바틀비는 기원과 관련이 있는 존재이다. 필사의 기원은 서구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말씀’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신성한 노동이며 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바틀비나 터키와 니퍼가 하는 필사의 원본은 화폐 단위의 이동과 관련된 계약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교환 가치의 순수한 표현으로서의 화폐는 애초 권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전의 권위와 그와 관련된 후광을 잃어버린 작업이 화자의 사무실에서 행해지는 노동의 본질, 소외된 노동이라 볼 수 있다. 바틀비의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I would prefernot to.)”는 절대적인 발언이다. 나에게 제안된 행위가 그 무엇이건, 그 어떤 가정에서 추론된 것이건, 어떤 전례에 기초한, 어떤 상례에 맞는 것이건 상관없이 거부하겠다는 보편적인 부정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화자의 문제 해결 능력이 바틀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바틀비에 관한 한 화자의 개입은 언제나 실패한다. 바틀비는 언제나 상궤를, 가정을, 전례를, 일상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틀비를 인본주의 관점에서 희생자로 규정하는 것은 화자가 이 줄거리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범하는 해석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일 수 있다.

 

바틀비의 이런 절대적 부정을 ‘자유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소외를 극복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소외를 초래하는 억압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틀비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가. 바틀비에게 원래 돌아갈 그 무엇이 있는가. 바틀비에게는 아무 내용이 없다. 기원도 없으며, 경과도 없고, 흔적도 없다. 바틀비는 ‘유령’이며, ‘죽음’이며, 텅 빈 구멍이다. 바틀비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으며, 기원이면서, 목적지이며, 효과이지 존재가 아니다. 바틀비를 상궤와 연결시켜 그 부정성을 ‘해결’ 또는 ‘상쇄’해 보려는 화자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바틀비를 ‘개인’으로 규정하기를 포기할 때 일반적인 소외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화자는 그를 구원하려 했으나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실패한 자가 된다. 화자는 다른 고통받는 인간에게 우편환을 보내고, 사면장을 보내고, 갖은 구명조끼를 다 던져 보았으나 그 모두가 배송 불능의 편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화자의 절규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는 따라서 바틀비의 존재 또는 죽음을 자신의 인간성을 강화하려는 핑계의 최종 결정판이 된다.

 

 

■ 순수한 인간 빌리 버드를 통해 법을 넘어서는 숭고함 그린 「선원 빌리 버드」

   “비어 함장님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1924년에 출판된 『빌리 버드』는 멜빌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모비 딕』과 「필경사 바틀비」의 작가로서 오늘날의 멜빌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인 셈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 「선원 빌리 버드」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클래거트와 빌리 버드는 왜 갈등을 일으키는가. 둘째, 비어 함장의 판단은 과연 옳았는가. 사건 발생의 동기나 원인을 규명하는 첫 번째 부류의 설명에서는 선과 악, 이성애와 동성애, 문명과 원시 등의 대립 관계가 핵심 개념으로 설정되며, 비어 함장의 판단과 관련해서는 정의의 문제, 사건과 기록, 현실과 종교, 과학과 종교, 현실과 법 등의 대립 관계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빌리 버드라는 등장인물은 순진함, 아름다움, 용기, 힘, 정의감, 남성다움, 여성적 아름다움, 원시의 무구함, 신적인 성스러움 등 거의 모든 긍정적 자질을 거의 모두 갖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빌리 버드의 이런 성격적, 육체적 특징에 대한 화자의 언급은 신화, 종교, 철학, 역사 등 온갖 영역에서 가져온 비유와 인유와 상징을 망라한다. 「필경사 바틀비」의 줄거리가 그 대립 구조에 있어 단순하고, 그 반복에 있어 희극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처럼 「선원 빌리 버드」 역시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짓게 하는 상황적 아이러니 구조를 갖는다. 핵심 사건, 즉 빌리 버드가 상관인 클래거트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모두 이 사건에 이르는 빌드업이다. 빌리 버드의 선과 아름다움, 클래거트의 ‘자연발생적’ 악함, 비어 함장의 초월적 인품을 지시하는 디테일 과잉에 당시 영국과 유럽, 미국 등의 국내 사정과 국제적 관계에서부터 영국 해군 내의 반란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설명이 더해진다. 따라서 독자는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등 온갖 가능한 문맥에서 곧 발생할 핵심 사건을 판단할 준비를 갖춘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질 것인가. 기대가 극에 달한 순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결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부재하는 곳을 채우는 것은 화자의 해석이다. 그런데 이 화자는 독자와 같은 삼인칭이면서 어떤 면에서는 독자와 마찬가지로 제한된 시점만을 가진다. 직접 경험했다는 화자나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에 접근하는 독자나 그 해석의 권위에 차이가 없다. 그 어떤 해석도, 그 누구의 해석도 다른 해석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마지막 두 장은 이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정반대라 할 수 있는 해석의 예로 구성된다. 해군의 공식 입장과 동료 해군 수병들의 판본이다. 전자에서는 클래거트가, 후자에서는 빌리 버드가 성자로 추대된다. 화자가 전달한 정보는 그 양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너무 풍성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한’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 「필경사 바틀비」와 「선원 빌리 버드」: 블랙홀과 빅뱅을 읽는 순간

 

세계는 사건이 발생하는 무대이다. 사람은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세계에 존재한다. 삶의 방식이란 결국 사람의 작동 방식이며,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바틀비의 존재와 맞닥뜨린 변호사나 우발적 살인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비어 함장은 어떻게 해서든 그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변호사의 작동 방식과 함장의 작동 방식은 일견 아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변호사는 이기심과 자부심과 자존심을 우선으로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 비범한 바틀비의 존재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면, 함장은 이 세상 진지한 모든 것을 고려하는 신중함과 용기, 책임감, 사랑, 연민, 인류애 등을 우선시하는 영웅적인 방식으로 빌리 버드 사건을 처리한다. 하지만 그 결과의 면에서 범인과 영웅의 차이는 없다.

 

바틀비의 존재와 행태가 변호사의 처리 방식을 무화시킨다면, 빌리 버드의 주먹은 함장의 지혜와 용기를 무화시킨다. 두 경우 모두에서 ‘유효한’, 또는 ‘의미 있는’, ‘진실된’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가 의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두 경우는 동일하다. 멜빌의 문학에서 「필경사 바틀비」와 「선원 빌리 버드」의 근본적 차이는 범인과 영웅의 경우라기보다는 소설 형식상의 차이에 있다. 바틀비는 정보 부재, 즉 궁핍함으로 그 앞에 등장하는 모든 시스템을 무효화한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블랙홀이다. 「선원 빌리 버드」는 정보 과잉으로 어떤 판단도 정답으로 성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 그 이후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빅뱅의 순간이다. 이제 바틀비라는 블랙홀과 빌리 버드라는 빅뱅을 읽을 순간이다!

 

 

■ 본문 중에서

 

필경사 바틀비

 

제가 낸 광고를 보고 젊은이 하나가 어느 날 아침 제 사무실 출입문 안으로 들어와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여름이었으니 문이 열려 있었던 거지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창백하게 단정하고, 애처롭게 정중하며, 도리 없이 쓸쓸한 모습! 바틀비 군이었습니다.(21-22쪽)

 

“무슨 말이지? 자네 돌았나? 여기 이 서류 나와 검토해 주게, 받게.”

서류를 바틀비 군 쪽으로 불쑥 내밀었습니다.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25쪽)

 

차근차근 살펴보니 바틀비 군이 한동안 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옷 갈아입어 왔다는 것을, 그것도 접시도, 침대도, 거울도 없이 그래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찌걱대는 낡은 소파 위에는 야윈 몸을 뉘었던 자국이 희미하게 나 있었습니다.(38쪽)

 

“말해 주겠나, 바틀비 군, 고향이 어딘지?”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뭐든 좋으니 자네 자신에 관해 말해 주겠나?”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무슨 합당한 이유라도 있나? 난 지금 아주 친근하게 말하고 있지 않나.” (……)

“지금으로서는 대답하지 않는 편이 전 좋습니다.”

이 말과 함께 바틀비 군은 자신의 은신처로 물러갔습니다.(43-44쪽)

 

“전 필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대답과 함께 옆으로 슬그머니 비켜났습니다.

바틀비 군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제 사무실의 붙박이였죠. 아니, 이런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붙박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여전히 아무 일도 하려고 들지 않아. 그럼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지?(48쪽)

 

벽 아래 이상하게 웅크린 자세로, 무릎은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머리가 벽 밑부분의 차가운 석조 벽돌에 닿은 채로 피골이 상접한 바틀비 군이 모로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저는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자 바틀비 군이 흐릿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뭔가에 이끌려 저는 바틀비 군의 몸에 손을 갖다 댔습니다. 손을 잡아 본 순간 짜릿한 전율이 제 팔을 타고 올라와 등골을 타고 발끝까지 내려갔습니다.(74쪽)

 

배달 불능 우편물이라니! 죽은 편지들이란 말 아닙니까!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선천적으로 그리고 불행한 일들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기질을 갖게 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끊임없이 죽은 편지들을 처리하고, 또 소각하기 위해 정리해야 하는 일보다 더 그런 기질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또 있을까요?(76쪽)

 

선원 빌리 버드

 

이 모든 과정이 끝나자, 선장이 침묵을 깨뜨렸다. 선장의 목소리에는 서글픈 힐난이 어려 있었다. “대위님, 최고의 선원을 빼 가시는군요, 보석 같은 친구를요.”

“네, 알고 있습니다.” 대위는 술을 따르려고 자신의 잔을 다시 낚아채며 말을 받았다.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고요.”(87쪽)

 

그 순간, 새로 징집된 신병이 키잡이가 앉아 있으라고 지정해 주었던 이물에서 벌떡 일어나 상선의 고물 난간에서 말없이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동료들을 향해 모자를 흔들면서 다정한 작별의 인사말을 했다. 그러고는 그 상선 자체에게도 작별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너도 잘 있으렴, 정든 인간의 권리호야.”

“앉아, 거기!” 즉각 자신의 계급에 걸맞은 준엄함을 되찾은 목소리로 대위가 일갈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91쪽)

 

빌리 버드는 업둥이였다. 사생아였을 확률이 높지만, 분명 천한 출신은 아니었다. 종마를 보면 그렇듯 빌리에게서는 고귀한 혈통이 명백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 나머지에 대해서라면, 지적인 예리함이라든지 뱀 같은 간계의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비둘기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지식이라는 수상한 사과를 아직 받아 들지 않은 사람, 즉 건전한 인간에게나 있을 수 있는 관례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판단 능력에 수반하는 정도의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97쪽)

 

노인네는 쓰고 있던 방수모의 앞부분을 치켜올리고, 길고 비스듬하게 난 흉터가 성긴 머리칼 속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천천히 문지르면서 간단히 툭 내뱉었다.

“아기 버드야, ‘쇠막대기 다리’(선임 부사관을 가리킨다.)가 널 찍은 거야.”

“쇠막대기 다리님이요!”(134쪽)

 

플라톤을 제대로 번역한 책에 나와 있는, 플라톤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는 정의의 목록을 보면 이런 항목이 있다. “자연적인 사악함: 자연에 따른 사악함.” (……)

그와 비슷한 사람 중 하나가 클래거트였다. 그의 속에는 사악한 본성이라는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훈련이라든가 타락시키는 책이라든가 아니면 방탕한 생활을 통해 양육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 그러니까 내재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간단히 말해 “자연에 따른 사악함”이었다.(143-145쪽)

 

“자네 말은 지금 우리 배에 위험한 자가 한 명은 있다는 거지. 이름을 대게.”

“윌리엄 버드라고, 앞돛대 망루병입니다, 함장님.”

“윌리엄 버드라고!” 비어 함장은 놀라움을 그대로 드러내며 되뇌었다.

“얼마 전에 래트클리프 대위가 상선에서 데려온 수병 말이군. 수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많아 보이는 젊은 녀석이던데. 멋쟁이 선원 빌리라고들 부르잖나?”(179쪽)

 

빌리는 함장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더 빨리 말을 내뱉으려고 더 격렬하게 노력했다. 이런 힘겨운 노력은 곧 마비 증상을 잠시 더 고착시키고 빌리의 얼굴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음 순간, 야간 사격하는 대포가 내뿜는 화염처럼 재빠르게 빌리의 오른팔이 뻗어 나갔고, 클래거트가 갑판 위로 쓰러졌다.(187-188쪽)

 

빌리는 고물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마지막의 직전 그의 입에서 나온 최후의 말이자 유일한 말은 발음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비어 함장님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수치스러운 밧줄을 목에 두른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리라고는 결코 예상할 수 없는 말이었다.(230쪽)

 

 

목차

필경사 바틀비 7

선원 빌리 버드 77

 

작품 해설 249

작가 연보 265

작가 소개

허먼 멜빌

181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대표작으로 『모비 딕』(1851), 『빌리 버드』(1924), 「필경사 바틀비」(1853)가 있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해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의 대중적인 관심사를 반영한 해양 모험담 『타이피』(1846)와 『오무』(1847)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멜빌이 심혈을 기울여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천착한 장편 소설 『모비 딕』은 대중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멜빌은 죽을 때까지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남북 전쟁과 그 이후 시작된 서부 개척과 산업화에 매진한 미국에서 해양 모험담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징과 알레고리, 역설과 아이러니 등의 난해한 형식에 계몽주의적 이념과 인본주의적 인간관 등 근대적 이상을 비판적으로 천착하는 내용을 결합하려는 멜빌의 작품 자체가 대중에게 쉽게 소비될 수 없었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1924년 유고작 『빌리 버드』가 출간되면서 멜빌은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20세기 중반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평가 과정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삼출 옮김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영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모더니즘 시 전공으로 버팔로 소재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영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모더니즘을 국민문학 정립 운동으로 파악하는 논문들을 썼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공역했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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