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죽음의 체제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들의 의미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4년 2월 7일
ISBN: 978-89-374-5634-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0 · 340쪽
가격: 19,000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한 여자도 잃을 수 없다’는 어떻게, 왜 싸우는가?
위기의 시대에 불이 붙는 새로운 저항들의 공통점
들어가며
1장 (재산을) 지배하다
2장 (물건을) 상품화하다
3장 (노동을) 소진하다
4장 (생명을) 파괴하다
5장 혁명
6장 (삶을) 구하다
7장 (노동을) 재생하다
8장 (상품을) 공유하다
9장 (재산을) 돌보다
나가며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위기의 시대,
당신이 원하는 변화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철학자
에바 폰 레데커의 강력한 선언
어려운 시절이다. 경제 불황과 정치의 혼란 속에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과로로 소진되는 삶. 변화를 꿈꾸기에는 막막하지만 냉소하기에는 심각한 지금 새로운 자본주의 비판이 도착했다. 1982년생 독일 철학자 에바 폰 레데커는 한나 아렌트와 카를 마르크스를 두 축으로 소유의 문제를 비판하고, 인간 행위의 가치를 되찾는 사유를 펼친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여성들의 파업까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포착하는 철학 에세이.
지배하지 말고 기르자,
착취하는 대신 공유하자,
채굴을 멈추고 재생시키자!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비판
인간 행위를 향한 사랑의 몸짓
독일에서 출간 즉시 좌우를 막론한 언론의 찬사가 쏟아진 이 책은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으면서도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던 변화에 이름을 부여한다. 바로 ‘삶을 위한 혁명’이다. 생명을 앗아 가는 죽음의 체제에 저항한다는 것. 미투 운동에서 퀴어 퍼레이드, 기후정의 행진까지 ‘내용’이 서로 다른 이 모든 움직임들에 공통적인 ‘형식’을 찾은 것이다.
유년 시절에 농장에서 자란 에바 폰 레데커는 무표정한 도시에서 우울에 빠지지만, 또한 길 위에 포석을 깔고 건물을 짓고 간판을 올린 인간의 행위를 긍정한다. “세상이 사라지기를 바라야 하는 유토피아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그는 ‘사물지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근대 시민권 운동에서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았던 소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것이다. 아렌트의 행위 이론과 마르크스의 최신 발굴 문헌, 오드리 로드에서 올가 토카르추크까지 동시대의 레퍼런스를 통해 파편화된 경험과 낡아 가는 사회이론을 종합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를 꿈꾸며 좌절하다가도 다시 시작하는 당신에게 동료가 되어 줄 책이다.
혁명에 대해 늘 궁금했지만
아무도 속 시원하게 풀지 않았던
다섯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① 이제 와서 혁명을 이야기하다니, 시대착오 아닌가?
→ 혁명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근대의 프랑스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 같은 것이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혁명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에 존재하고, 여성 살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죽은 지구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를 의식하게 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임금노동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봉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파괴에 대항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투쟁으로 이어진다.”(10쪽)
②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 동물권 운동, 퀴어 퍼레이드, 기후정의 행진 등등 새로 등장한 사회 운동들은 역사 속의 혁명과 뭐가 다른가?
→ ‘삶을 위한 혁명’은 일상적인 반복에 기초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영웅, 급작스러운 단절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현 시대의 주요한 특징은 새로운 형태의 실천주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동을 마주하고 있다. 재분배 투쟁을 우선적으로 이끈다거나 시민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해양에서의 난민 구조, 살인적인 경찰 폭력에 맞서는 반인종주의적 투쟁, 성폭력과 여성 살해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파업, 종 소멸과 지구온난화에 맞선 환경운동, 전염병 시대 식품건강부의 노동분쟁. 이 모든 순간들이 삶을 위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저항은 계급화를 염두에 두거나 일부의 삶을 다른 삶의 부의 자원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생활상 중요한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주장한다.”(163~164쪽)
③ 여성은 투표권을 얻었고 흑인은 노예제에서 벗어났다. 역사상 많은 진보가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인가?
→ 문제는 ‘소유’다. 오늘날 여성, 흑인, 동물, 난민 들은 마치 소유물처럼 여전히 지배받고 있다.
“근대적 정체성은 노예제, 강제 노동, 가부장제 결혼의 섹슈얼리티와 돌봄노동 등 인간에 대한 소유권을 창출하는 제도 속에서 등장했다. 이러한 사물지배에 기반한 정체성은 처분권을 보증하는 제도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살아남는다. 이전의 지배자들은 그들이 지배하는 사지가 절단된 다음에는 더욱 잔혹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허구의 소유권을 계속해서 옹호한다. …… 노예 소유가 금지되고 난 이후에도 흑인의 삶은 가치 없게 여겨지고, 가부장적 결혼제도가 폐지되고 난 이후에도 여성성은 착취 대상으로 여겨진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착취당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소유이며, 이 모든 천연자원들, 도축을 위한 동물들 위에 자본주의가 세워진다.”(14쪽)
④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거나 아무 일도 없어서 좌절하며 죽어가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더 빠르게 생산하자는 ‘가속주의’를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말하는데,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딱 하루 동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일을 중단해 보자. 당신은 과중한 업무, 혼자 하는 돌봄 모두 거부하고 다시 조정할 수 있다.
“지배가 강요하는 활동을 거부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대를 깨는 일을 적어도 하루 동안 당신은 할 수 있는가? 파업의 방법에 대한 질문을 열어 두면 때때로 가장 파업하고 싶은 일을 단순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인간은 아이들을 그렇게 쉽게 놓아 버릴 수 없다. 중환자실에서 단결해 걸어 나올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 파업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고 나면, 시위는 소모적인 부문의 집단적 재조직, 즉 노동자의 요구와 해당 업무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함께 우선시되는 재조직을 요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바로 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이다.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누구에게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병인이나 환자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삶을 위한 사회적 돌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열어 주는 것은 바로 불가능한 파업이다.”(224~225쪽)
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 ‘함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환상 아닌가?
→ 공동체만이 고립된 개인들이 느끼는 처절한 불안과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를 현실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때 공동체의 원리는 ‘따뜻한 친밀함’이 아니라 ‘냉정한 받아들이기’다.
“공동체 관계는 그 범위와 상관없이 연대에 기반한 분리를 허용해야 한다. 인정받고 싶지 않지만 단순히 충족되고 싶은 욕구, 갖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빚지고 싶지 않은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공동의 쇼핑 목록에는 없지만, 혼자 슈퍼마켓에 갈 때 직접 사 들고 오는 양주나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279쪽) “우리는 지금의 감시 자본주의가 부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후퇴와 안정, 그리고 무한한 익명성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아름답게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고립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더 큰 연결성이 필요하다.”(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