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윤성희가 첫 단편집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 같은 인상을 남긴다. 걸음 멈추고 허리 굽혀 그 흰 점 같은 꽃을 들여다보면 그 작은 소우주의 미를 엿볼 수 있듯이 윤성희의 소설이 그렇다. 외롭게 한 무더기로 피어 있는 그녀의 소품들은 깊은 밤 스탠드를 켜든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
소설가 윤성희의 첫 작품집 『레고로 만든 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윤성희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꾸준한 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윤식 교수가 꼽은 역량 있는 작가 윤성희의 작품들은 이미 이상문학상 및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등의 작품집에 수록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데뷔작 「레고로 만든 집」은 지진아인 오빠와 칩거하는 아버지를 부양하는 젊은 여자의 희망 없는 삶을 섬세한 필치로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이후 작가는 고단한 삶을 외롭게 버텨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소설집에 수록된 여타의 작품들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평론가 황종연은, 윤성희가 동시대의 자잘한 삶의 체험을 거울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는 데 능숙하다며 천운영과 함께 \”현대 일상을 탐구하는 미시적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작가군으로 묶은 바 있다. 작가는 가령, 등장 인물이 9자를 알파벳 g와 비슷하게 쓴다거나(「레고로 만든 집」), 3자를 8자와 비슷하게 쓰는(「서른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 것까지 보여준다. 사소한 것 하나도 스쳐 보내지 않고 마치 대상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는 데 치중하는 작가의 모습은, 「레고로 만든 집」에서 대학 휴학생인 척하며 학교 앞 복사 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행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은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눈을 뜬 채 자기를 복사한다. 복사기에서 쏘아져 나오는 빛에 온몸이 저절로 움찔거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도 눈을 감지 않는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초라하고 외로운 젊은이들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응시하는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 등으로 간신히 생을 이어나간다. 벌어진 이빨을 보이기 싫어 사람들과 직접 대면할 필요 없는 \’기념일 서비스\’라는 일을 택하거나(「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방송국에서 탄 경품을 팔아 돈을 벌거나(「악수」), 빌린 돈을 갚을 방도가 없어 스턴트맨이 되는(「모자」) 등 세상의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한편 주인공들은 대개 평범한 가족 관계에서도 벗어나 있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생활력 없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여자(「레고로 만든 집」), 아기 때 사과상자에 담겨 버려진 여자(「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매주 고향 근처에서 맴돌기만 할 뿐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남자와 화재로 어머니를 잃고 보험금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여자(「그림자들」), 형과 어머니를 잃은 남자와 아내에게서 버림받은 남자(「계단」) 등 기댈 곳 없는 혹은 기대지 않는 이들이 그려져 있다. 윤성희는 이렇게 활력 없는, 마치 \’그림자\’처럼 뚜렷한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면서도, 다른 여성 작가들과 달리 과도한 감상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강점을 갖추고 있다. 평론가 황종연이 「모자」를 다룬 글에서 \”윤성희는 자칫 초라한 앙심의 문학으로 떨어질 소지가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시장의 그늘 속에 주눅 들어 서식하는 젊음의 초상을 이뤄냈다. 윤성희 소설은 낙백한 젊은이의 영혼 앞에 사랑의 맑은 렌즈를 반짝이는 성능 좋은 캠코더이다.\”라고 말했듯,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서 작가는 \”가만히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참 외로워 보인다. 한쪽 발이 땅에 닿는 동안 다른 한쪽 발은 허공에 떠 있어야 하는 \’걷다\’라는 행동은 나를, 사람들을 외롭게 만든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우리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 있어도, 얼굴에는 혼자라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언제나 외발일 수밖에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내 마음속으로 끌어오고 싶다. 앞으로 내가 쓴 소설은 \’걷는 중\’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등단 이후 작가는 애초의 작의를 고스란히 실현시켜 가고 있는 중인 셈이며, 평론가 방민호는 그러한 \”외로움을 갈파하는 힘\”으로 인해 그녀의 문학은 길게 갈 것이라고 평하였다.
레고로 만든 집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서른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 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악수 그림자들 모자 터널 계단 새벽 한시 작품 해설 / 방민호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