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에는 왜 팝아트가 없었나? 조각은 왜 무거워야 하나? 추상화란 무엇인가? 연필은 밑그림만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다. 사진으로 정신을 보여 줄 수 있다. 조각도 연극이 될 수 있다. 한국 미술의 빅뱅은 이처럼 근본적이고 래디컬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화가, 조각가, 설치예술가, 사진작가 등 여기 소개된 젊은 예술가들은 고전에 대한 탄탄한 연구 위에 오늘의 한국이 낳은 새로운 감각으로 획기적인 사고와 시각을 들이대며 로봇아트, 사진-조각, 팝아트 등 기존 한국 미술에서 부재했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경계를 허물고, 기존 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이들, 세상의 비밀과 통음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이 책은 유행 담론의 횡포 속에서도, 시장의 횡포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위대해진 예술가들의 이야기이다.
“좋은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중문화의 얄팍한 취향에서부터 순수예술의 완벽한 형식미까지, 즉 텔레비전과 박물관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철학자의 눈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예술은 지식의 층위를 뚫고 가서 감각에 꽂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래디컬한 질문으로 상상력을 퍼 올리다
“현대 미술에서 어느 순간 ‘조각(sculpture)\’이라는 말이 잠시 실종된 시기가 있었다. 조각이란 말 대신 입체 미술은 오브제, 설치, 미디어아트, 개념미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갔다.” 그런데 권오상(1974년생)은 조각에 대해 너무나 급진적인(radical) 질문을 던진다. “왜 가벼운 조각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조각은 돌, 청동, 석고 같은 재료로 ’노동‘을 해서 만드는 장르였기 때문에 조각가는 예부터 회화에 비해 고상하지 못한 예술가로 통했다. 그런데 권오상은 한때 회화의 역할을 위협하며 등장했던 사진을 압축 스티로폼(아이소핑크)에 붙여서 가벼운 조각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사진-조각이라는 전혀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다. 래디컬한 질문이 바로 창조력의 시발점인 것이다. 이 사진-조각에는 ’데오도란트 타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서양인의 암내 제거제를 동양인에게 팔려 했던 엉뚱한 마케팅에서 착안한 명칭으로, 사진과 조각의 생뚱맞은 조우를 암시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데오도란트‘라는 이름은 이제 미술계에서 권오상의 작품으로 더 유명해졌다. 이처럼 급진적인 발상은 영국 록그룹 KEANE의 재킷 디자인 작업으로 이어졌다.
앤디 워홀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21세기 한국에서 팝아트는 친숙한 장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한국에는 퍼포먼스, 민중미술, 추상미술, 개념미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가 소개되고 있었지만 이동기(1967년생)는 당시 이런 질문을 해야 했다. “컬러 TV가 등장한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 대중문화를 다루는 작품은 왜 없는 것인가? 미술이라는 것은 당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왜 팝아트는 없는 것일까?” 그리하여 1993년 아토마우스가 탄생했다. 한국 팝아트의 최고령 아이콘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토마우스는 “록 밴드를 조직하기도 하고, 핵폭탄을 날리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가기도 하면서 우리 사는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참견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미술에서 팝아트적인 요소가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동기, 홍경택의 작품에서 보인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1980년대 조용필, 들국화에 이어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성숙도뿐 아니라 대중문화에 대한 변화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 준다. … 1988년 올림픽 전후로 해서 많은 문화적인 금기가 풀린 이후에 터져 나온 자극이 바로 한국 팝아트의 성립 배경이다. 팝아트는 금지곡이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법 복제판으로 듣다가 정식 LP판으로 들었을 때의 짜릿한 해방감을 기억하는 세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세대는 또한 TV브라운관에 떠도는 허상 같은 이미지와 브랜드네임이라는 기호를 소비할 줄 아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동기가 작품을 시작할 무렵 한국 미술의 지형도는 1980년대의 민중미술과 추상미술의 대립, 그리고 1990년대 설치미술을 필두로 하는 새로운 모색의 시작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이동기의 미술적 자양분은 외국 서적을 통해 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줄리안 슈나벨, 제프 쿤스 등의 작가들이었다. 이 작가들을 통해 그는 당시 한국 미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를 보았고, 여기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다. ―4장 「팝아트에 대한 팝아트」에서
★ 발상의 전환, 약한 것이 강하다!
앳되고 예쁘게 생긴 소녀 화가 이승애(1979년생)는 괴물을 그린다. 그것도 밑그림을 그릴 때만 사용되는 가장 약한 도구인 연필을 가지고. “나는 약자이다. 절대적인 힘, 감당할 수 없는 힘들이 세상에 있지만, 내가 도와줄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큰 힘은 없지만, 내가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있다.” 화가는 왜 이렇게 낯선 몬스터들을 그리는 것일까? 그것은 약자의 생존 전략이다. 예술을 “눈물 없는 울음”이라고 했던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은 사회의 “비화해적인 것을 증언함으로써 사회와 화해를 제시하는 역설, 이 역설을 통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화해’를 제시”한다.
몬스터들은 낯선 존재들이다. 낯선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가 아는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전해져 오는 신화와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인류는 이성적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어떤 것들을 ‘몬스터’로 표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직면해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두렵고 낯선 감정들이 이야기의 옷을 입고 이미지로 구체화된 것이 몬스터들이다. … 상처 유발자들이 ‘초자연적인 힘’에 걸맞게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이하고 낯선 것이듯, 슬픔에 대처하기 위해서 이승애가 그린 몬스터들도 괴이하고 낯설다. … 이 몬스터들은 치유의 기능이 있으며, 고통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도 한다. 몬스터 ‘초록색 눈’은 날카로운 발톱 대신에 한없이 부드러운 털로 된 발톱이 있다. 치유의 임무를 맡은 ‘초록색 눈’은 상처를 준 대상에 복수를 해 주는데, 이 복수는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관용’을 포함하고 있다. 응징이 아닌 복수를 택한 이유는 그 대상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1장 「슬픔 항전기」에서
김정욱(1970년생)은 ‘얼굴 들이밀기’로 세상의 폭력에 대처한다. 화가가 그린 얼굴들은 상처를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폭력의 구조화와 일상화를 표현한다. 세상의 폭력과의 대결은 분장한 얼굴로, 마스크화된 얼굴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대결과 긴장 단계를 넘어서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어 가해자의 존재와 그 폭력의 무지막지함을 명백하게 증언한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즉 “무기력해지고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얻고, 세상의 폭력을 고발한다.” 그래서 화가의 얼굴은 인간의 능동성을 잃어버리고 인형이 되거나 짐승의 본능을 드러내며, 감상자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가한다.
★ 토종 한국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다
한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이슈 파이터’ 김아타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매번 다채로운 예술 형식에 담아 세계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대작가다. 한국 최고의 강신무 김금화의 초상 사진을 찍기 위해 그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간 불꽃같은 대화가 인상 깊다. “나는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직성이 풀린다. 절대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김금화의 사진은 전율할 득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정신을 찾아 떠난 김아타의 다음 도정은 ‘정신을 배제한 진보’에 대한 반성과 ‘박물관에 보존될 영원한 관념’ 타파, 우상파괴에 이어 ‘해체’로 연결된다. 그리하여 김아타의 작품은 “모든 것은, 그러나 사라진다.”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2006년 뉴욕 ICP외벽을 장식했던 대형 작품인 「온에어 프로젝트 077: 최후의 만찬」은 “다중인화” 연작으로 열세 명의 모델들을 촬영하고 겹쳐서 얻어낸 이미지로, 예수 속에 유다가 있고 유다 속에 예수가 있는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전통적인 서양의 도상에 동양적인 사유로 접근한 것이다. 이처럼 아-타의 경계가 해체되고 다시 일체화되는 접근법은 예수와 유다를 구분하고 차이를 분석하는 데 익숙한 서양인들의 사고 속에서는 절대로 떠오를 수 없는 장면이다.” 2009년 5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김아타는 서양 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파르테논 신전을 녹여 버렸다. 「온에어 프로젝트 153: 얼음 파르테논」은 얼음으로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이 조명을 받아 투명한 황금빛으로 물들며 녹아 내렸다. “이탈리아라는 서양 문화 원류의 한복판에서 행해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행사에서 김아타는 바로 서양인들의 자부심과 우월성을 녹여 버린 것이다.”
‘미술계의 엄친아’로 알려진 서도호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면서 ‘인연(카르마)’이라는 테마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로 참여했던 서도호는 한국화의 거장이었던 부친 서세옥이 마당 한켠에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떠 지은 한옥을 정서적인 원천으로 삼아 만든 작품 「서울 집」(1999)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투명한 집의 껍데기는 환영처럼 전시장 안에 떠 있다. 그의 미감은 이번에는 선녀의 날개옥 같은 청자 빛 은조사의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선택했다. 서양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집의 주명성은 한옥의 창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반투명한 창호지는 자연과 건물의 경계이면서도 자연을 거눌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단단하고 폐쇄적인 서양식 주택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 천으로 된 투명한 집은 슈트케이스에 넣어 옮겨 다닐 수 있어 유목민적인 삶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무겁고, 단단하고, 고정된 것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을 가볍고, 비물질적이고, 여성적이며 어디든지 옮길 수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킨 이 계열의 작품들은 1970년대의 남성적이고 근육질적이며 기념비적인 미국 미술에 대한 안티테제로 평가받기도 했다. ―5장 「카르마 저글러의 옮겨 다니는 집」에서
홍경택의 「연필」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한국 작가 최고가로 거래되어 유명세를 치렀다. 연필은 일상의 필수품이 살상의 도구로 무심히 변화하는 순간, 즉 삶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이 표면화되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 잔인한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존재를 회화적으로 다스린 것이 「연필」 연작이다. “작가는 뾰족한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불꽃같은 형태를 이루게 함으로써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을 해소하며 청춘의 한 장을 넘겼다.
★ 새로운 감각, 미술의 빅뱅이 시작됐다
2008년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설치작품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는 최우람(1970년생)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영국 최고의 미디어아트 미술관인 팩트에서 전시됐다. 최우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본다. 현대 문명의 거대한 집산지인 도시는 갖가지 통신망과 회로가 얽히고설켜 있으며 그곳에 기계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일렉트릭 애니미즘’에서 출발한 최우람의 작품은 ‘로봇아트’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 이 기계 생명체들이 억 대의 예술적 가치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봇아트들의 예술성은 서정성과 기술력의 황금비율을 가지고 결합할 때 돋보인다.”
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인터넷 게임, SF 영화와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과의 차이점은 최우람의 조각은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존재로 변형되면서 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머릿속의 환상이 존재감에 충만한 하나의 실체로, 조각이라는 구체적인 미적인 향유의 대상, 즉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기계적인 작동의 한계에 묶여 있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최우람 조각의 느리고 유연한 동작은 독일의 아티스트 레베카 호른의 기계 조각에 비견할 만하다. 레베카 호른의 기계 조각은 매우 간단한 조작으로 움직이는 수공업적인 기계이다. 단순한 기계적인 제어 장치로만 움직이는 레베카 호른의 작품에 예술성이 깃드는 것은 서정성이 기술력을 철저히 통제하고 상호 조응하기 때문이다. ―13장 「일렉트릭 애니미즘」에서
반면 정연두(1969년생)는 “가장 비예술적으로 보이는 평범한 모습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발견”한다. 예술에서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날것 그대로 작품의 대상이 된다는 건 지극히 획기적인 발상이다. 작가가 발견한 건 꿈과 현실,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우리의 삶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정연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 고등학생의 꿈인 남극 여행을 사진으로 찍는다. 이글루는 종이로 만든 것이고 시베리아허스키 두 마리는 이웃에서 빌려 온 가짜 썰매견이다. 꿈이나 현실에서나 똑같은 모델의 포즈는 “꿈과 현실이 똑같이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평범함에 대한 존중이 그의 출발점이자 비범함을 이룬 첫 번째 요인이다.” 정연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연작 중 하나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원더랜드(Wanderland)」 연작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는 장면을 그린 아이의 그림에 ‘왕국’이라는 간판을 작품에 그대로 적용한 건 ‘간판의 왕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으면서 판타지를 따듯한 유머로 끌어안는다.
★ 발견하고 해체하고 창조하라
21세기 예술가들의 저항 전략은 무엇인가? 대중문화가 제도화되고 소위 B급 문화도 타성에 젖은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가 많아도 미술계의 시스템이 취약하여 세계 진출이 쉽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서 한국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 해답은 “새로운 감각의 열림”에 있다. 예술이란 ”사회의 가장 예민한 감각 기관”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변화를 예술가들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재빨리 알아차려서 발설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들을 ‘세상의 비밀과 통음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은 확실히 새로운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긍정한다. 존재했으나 의식화되지 못한 것들을 작품에서 발견했을 때 우리는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삶에 답이 없다는 것, 아니 정확하게는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것이 예술의 출발점이다. ―「글을 시작하며」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여섯 명의 작가들은 이 시대에 새로운 감각을 보여 준 증인들이다. 현대인은 “시대의 분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다. “예컨대 나는 루카치와 조지 루커스를 동시에 사랑하며, 타르코프스키의 서정적-철학적 화면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유혈낭자-사지절단 화면을 동시에 즐기고, 라흐마니노프와 빅뱅을 동시에 듣는 사람이다.” 2010년 한국에서 살면서 시대와 나 자신을 정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내놓는 시대의 증거물은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견제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소위 ‘트렌드’다. 저자는 단호하게 “트렌디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난다.”라고 경고한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성이야말로 작가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미덕이다. 언제나 실천은 살아 있고 이론은 죽은 것이다. 이론이 실천을 포획하는 순간 실천은 이론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이런 유행하는 담론의 횡포에서 자기를 지켜 낸 사람들이다. ―「글을 시작하며」에서
21세기 한국 예술가들의 저항 전략은 다양하다. 이들 이슈 파이터들은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몰입으로, 대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대항으로, 때로는 편집하지 않은 세상을 보여 주고 때로는 소통이 안 되는 세상을 고발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한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시각적 쾌락과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고 경계를 허물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형상을 통해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계 생태계 등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한국 작가들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하나로 묶어 낼 단어가 없어 마케팅 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저자는 이처럼 한국 아티스트의 탁월한 개별성이 한국 미술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독창적인 그림으로 세상의 폭력에 저항하는 이승애와 김정욱, 모든 경계를 허물며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김아타, 시적 감응력으로 구상을 추상이 되기까지 밀어붙인 김혜련과 정수진, 한국산 팝아트의 창시자 이동기, 노마디즘을 시각화한 서도호, 환상 속에서 집요하게 현실을 상기시키는 정연두, 색청(色聽)을 탁월한 디자인 감각으로 그려 낸 홍경택, 즉흥적 창작법으로 새로운 촉각의 세계를 여는 김남표, 고전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도상학의 세계를 창조한 남경민과 박민준, 미디어에 노출된 현대인을 강렬하게 시각화한 오형근, 사진-조각을 탄생시킨 천재 조각가 권오상, 로봇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최우람, 조각-연극을 개척한 천성명. 이들 열여섯 명의 예술가들은 사회에 대한 저항 능력은 조직적 행동이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걸 실천한 창조적 이단아들이다.
1 이승애, 슬픔항전기
2 김아타, 인달라 속으로 사라진 세상
3 김혜련, 정물에서 풍경으로
4 이동기, 팝아트에 대한 팝아트
5 서도호, 카르마 저글러의 옮겨 다니는 집
6 김정욱, 상처의 역사
7 정연두, 핸드메이드 라이프
8 홍경택, 연옥에 울려 퍼지는 훵케스트라
9 권오상, 조각에 대한 365장의 보고서
10 김남표, 촉감으로 그리는 세상
11 남경민, 그림의, 그림에 의한, 그림을 위한 그림
12 오형근, 미디어 덮어쓰기와 뻥사진의 진실
13 최우람, 일렉트릭 애니미즘
14 정수진, 추상화되기 퍼포먼스
15 박민준, 세상의 비밀을 본 예술가
16 천성명, 줄무늬 씨의 끝나지 않는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