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

최미래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5월 29일 | ISBN 978-89-374-2790-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5x205 · 36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나는 가벼워지고 싶은 걸까 무거워지고 싶은 걸까.”

공격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청춘의 시간들
바라는 것은 오지 않고 엉뚱한 것만이 들이치는
돌풍과 안개 속을 묵묵히 걷는 앳된 팔과 다리

편집자 리뷰

2019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최미래의 소설집 『모양새』가 출간되었다. 이십 대 내내 소설을 써 온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름 지어지는 ‘청춘’이라는 시간이 실은 얼마나 지루하고 멀뚱멀뚱한지 알고 있다. 그때의 우리가 각자의 청춘을 어떻게 견뎠으며 얼마나 관찰자적이었는지 밝히는 데 탁월하다. 겁이 없고 능력이 있으며, 야망이 있고 의욕적인 이미지로 청춘은 얼마나 오해되고 오래 이용되어 왔는지. 최미래가 보여 주는 청춘의 경로는 어쩐지 물이 많이 섞인 물감으로 채워진 것 같다. 젊은 날의 생기 있는 몸과 낭만적 무계획은 알록달록한 물감, 깊은 우울과 불안은 탁한 물. 최미래는 그 둘을 적절히 섞어 인생의 초여름 같은 날들의 질감을 되살려 낸다. 최미래식 청춘을 깊이 탐색하는 시간은 알록달록하지만 먼지의 빛깔이 묻어나 마냥 유쾌하지 않으며, 선명한 장면 군데군데 스민 얼룩이 못내 신경 쓰일 것이다. 젊음이 자리한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보는 일, 생각보다 성숙하지 않고 유치함이나 이기심이 묻은 그때를 인정하는 일. 최미래의 소설을 읽는 일은 한 시절에 대한 이해의 해상도를 올리는 일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양에 가까울까?

표제작인 「모양새」는 주인공 ‘나’가 친구이자 동거인이었던 ‘모린’과 함께 살던 때, 그중에서도 어느 날 순식간에 사람들을 사로잡은 ‘모양새’라는 존재를 찾아다녔던 때를 돌이켜 쓴 통통 튀는 회고담이자 연약한 성장담이다.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화장실 벽에 아무런 힘도 공격성도 없이 붙어 있는 작은 나방” 같다고 말한다. 슬프도록 스스로를 알고 있는, 욕심 없는 젊은이의 조용한 자기객관화. 이 냉정한 관찰은 『모양새』 속 젊고 어린 화자들의 모습에 빠짐없이 걸맞는다. 최미래의 인물들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나 재난을 맞닥뜨리거나, 어엿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지켜봐야 한다. 가진 것 없는 그들이 유일하게 가진 것은 서로의 몸을 기댈 단 한 명의 누군가이지만, 그 관계는 팽팽하거나 느슨해서 언제나 불안정해 보인다. 이때 작가는 자신의 모양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한 맑고 진지한 인물을 그려 낸다. 가만히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뒷모습. 어쩌면 그것은 ‘자신 없음’으로 불안해하는 청춘의 한 모양새일 것이다.


 

“너는 어떻게 지냈는데? 뭐가 재밌고 어떻게 슬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재밌고 슬픈 게 없었다.”

‘없음’이나 ‘알 수 없음’이 그들이 큰 정체성인 『모양새』 속 인물들은 마치 각자의 결핍을 공통점으로 뭉쳐 모험을 떠나는 「오즈의 마법사」 일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양새』의 인물들에게는 모험을 해서 얻고 싶을 정도로 원하는 것이, 그러기 위해 맞닥뜨려 싸워야 할 적이 없다. 모든 것이 희미해서 힘겨운 시기에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비슷한 체격과 체력을 지닌 또래다. 「모양새」의 ‘나’에게는 “뒷모습을 베끼고 싶”은 ‘모린’이, 「작은 개를 껴안듯이」의 ‘나’에게는 “만지고 싶”은 ‘니나’가 그런 존재이지만, 이 관계는 종종 헐거워 보여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너무 많은 것이 없으므로, 단단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은 개를 껴안듯이」의 ‘나’는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찾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고, 부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옆에 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되고 싶은 나도, 사랑하는 너도, 우리가 함께할 것이라고 미래를 믿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체념과 인정이 미묘한 배합으로 뒤섞인 듯한 이 문장은 아마 최미래가 직감한 삶의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돈 없다고 좋아하는 거 포기하지 말고 꾸역꾸역 사 먹어.”

최미래의 소설에는 누구보다 젊어 보이지만 어딘지 먼저 늙어 버린 것 같은 인물들이 있다. 수록작 「양지바른 곳」의 ‘조황주’는 겉으로는 젊어 보이나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 온 ‘흡혈인’이다. 조황주가 자신을 찾아온 친구의 손주, 이제 막 젊은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회피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닥쳐오는 슬픔을 정직하게 맞이하라는 것. 조황주의 조언은 『모양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씩씩한 두 다리로 걷고, 앳된 팔로 서로를 안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젊은 인물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받은 최미래의 인물들은 ‘운 없음’에 좌절하다가도 별안간 씩씩해지기도 한다. 여름에 어울리는 맥주와 토마토 조합을 찾아내고, 최소한의 돈을 버느라 쉴 틈 없는 가운데에도 친구와 통화를 하며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캄캄한 밤을 보낸다. 휴대폰 너머 들리는 것은 피곤함과 노곤함이 기본값인 힘 없는 청춘의 목소리지만, 거기에서 왠지 기분 좋은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나는 듯한 이유는 최미래가 인물들에게 기어이 쥐여 주는 희망의 쪽지 때문일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내 안에 새를 하나 키웠다. 모린은 그 새를 보지 못했다. 새가 내 심장을 뚫고 나와 방 안을 돌아다니며 꽥꽥 울어 대고 배설물을 잔뜩 싸 놓는다고 해도 못 볼 것이다. 모린은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데 모든 시간을 꼴아박느라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제 속에서 어떤 생물을 키워 낼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밤을 모두 써 가면서 함께 자신의 새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모양새」, 21쪽

나는 연못 앞에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품고 사는 그런 연못이었다. 연못 주변은 수풀이 우거져 한낮에도 햇살이 잘 들지 않았다. 공기는 미지근했고, 연못을 들여다보기에 적당할 정도로 사위가 고요했다. 나는 거기서 종종 누군가를 생각했다. 주로 애정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지, 왜 자꾸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인지. 이곳의 풍경은 왜 내가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 바뀌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연못을 들여다보면 낯선 얼굴이 수면에 비쳤다. 물풀이 자라나고 물고기 그림자가 많아졌다. 긴장이 풀리면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연못으로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내 연못에 우유를 붓고 달아나기도 했다. 우유 한 컵으로 오염된 연못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몇십 배의 깨끗한 물을 들이부어야 했다.

-「귀신 산책」, 106~107쪽

나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애의 말이 의아했다. 두애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풍선이니, 갓 만들어진 케이크니 비유를 하며 충만함에 대해 계속 말했다. 나는 아 그거! 이런 거구나 그런 거구나 이제 알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건 예를 들어 고양이 같은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의 기분을 알 수 없다. 두애가 하는 말은 마치 고양이가 내게 ‘높은 지붕에서 잠을 자다가 몸을 쭉 편 후에 아래로 한 번에 훅 뛰어내리는 기분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눈높이. 서 있는 곳이 다르거나 보고 있는 것이 다르거나. 나는 두애가 말하는 충만함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어린 이의 희박한 자리」, 124쪽

소나기가 내렸다. 나와 엄마는 칼국수를 먹은 후 비를 피해 빵집 처마에 잠시 서 있었다. 칼국수를 먹는 내내 벌어 먹고사는 앞가림에 대한 잔소리를 들어서 사이가 서먹했다. 하늘은 맑았는데 빗줄기가 꽤 굵었다. 이걸 소나기라고 하나 여우비라고 하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휘청거리며 빗속을 날고 있었다. 쓸 거면 저런 것들에 대해 써 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생각만 했다. 나비는 여전히 비를 맞으면서 꾸역꾸역 날고 있었다. 바보 같기는. 엄마. 나는 저런 거 안 해. 안타깝고 속 터지는 거 말고, 지독한 매미나방 같은 거. 그런 게 될래요.
-「지난 이야기」, 168쪽

  서정이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어요?
둘이 한 대화는 둘만의 이야기로 두어야지요. 저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에게서는 잘 마른 풀 냄새가 납니다. 겨울에 얼었다가 녹아서 축축해진 풀이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서 새싹과 뒤엉키며 잘 마르는 냄새가 나요. 만약에 제가 죽게 된다면 그런 곳에 묻히고 싶어요. 사람의 냄새는 생각보다 참 오래 남습니다.
결국 못 참고 다시 한 질문도 소용없었다. 원하는 말을 내주지 않고 교훈을 주려는 듯 돌려 말하는 조황주의 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둠이 한층 갠 하늘은 물을 부어 놓은 것처럼 맑고 푸르스름했다. 곧 해가 뜰 것이다. 텃밭의 고른 흙으로 보아 조황주의 마당은 볕이 잘 들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지나쳐온 김서정의 밤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으나, 그 밤
들은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양지바른 곳」, 219쪽


■작가의 말

지난 시간을 불러다가 씻기고 재우고 질책하기도 하면서 함께 지냈다. 어느새 그들은 이야기가 되고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
소설 속 인물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그들은 나와 같은 시절을 보냈고, 내가 해결하지 못해 구겨 버린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각각 다른 시기에 쓰인 단편들을 하나의 소설집으로 데려와 지붕을 수리하면서 깨닫게 된 것.
1. 어떤 인물은 내가 팽개친 감정을 스스로 조용히 펴내고 있었다.
2. 어떤 인물은 본인이 구겨져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감내했고 끝끝내 받아들였다.
3. 어떤 인물은 엉망인 채로, 여전히 살아 내고 있다.


 

■추천의 말
최미래의 인물들은 솔직하고 단단하다.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들이 겪은 일들에 대해 떠드는 시간을 무용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설 속 나방, 연못, 돌멩이, 운동화, 머리카락, 물 자국과 같은 단어들을 ‘생’이라는 단어로 바꿔 읽었다. 그리고 생이란, 매 순간 희망차고 기운찬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이해할 수 없음이나 알 수 없음과 비슷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최미래는 그런 시간을 통과하여 미래로 가는 일이 그 자체로 소중하며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 준다. 소설 속 인물들이 생에 대한 의문을 품고 기억을 돌아볼 때, 우리는 생에 대한 사랑과 의지가 깊어진 채로 그들을 본다. 이처럼 최미래의 소설은 소중하고, 무엇이든 가능하다. 어차피 생이라든지 이야기라는 것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이주란(소설가)

목차

모양새 7
작은 개를 껴안듯이 53
귀신 산책 91
어린 이의 희박한 자리 117
지난 이야기 159
양지바른 곳 177
우리 죽은 듯이 225
퍼플 피플 263
어쨋든 이곳은 여름 299

작가의 말 341
작품 해설
두 번째 외로움을 기다리는 마음_최다영(문학평론가) 345

작가 소개

최미래

2019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녹색갈증』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평점

4

북클럽회원 1명의 평가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