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탄압, 대통령 탄핵, 페미니즘 리부트, 팬데믹…
한국 사회의 변곡점을 영화로 세심히 좇으며
진실과 희망을 모색하는 비평가 강유정의 시선
문학과 영화 그리고 저널리즘까지, 독자적인 행보로 새로운 비평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강유정 평론가의 새 비평집 『시네마토피아』가 출간되었다.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와 ‘어디에도 없는 땅’을 의미하는 ‘유토피아’가 결합된 새로운 단어인 ‘시네마토피아’는 말 그대로 ‘영화의 땅’이라는 표면적인 의미와 ‘지금 이곳에 없는 낙원을 모색’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는 제목이다.
『시네마토피아』는 2014년부터 연재 중인 《경향신문》 칼럼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의 글들을 한 권에 모은 책으로, 만 7년의 시간 동안 강유정 평론가가 성실히 들여다보고 쓴 ‘영화 비평집’이자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지금 한국 사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발화한 ‘사회 비평집’이기도 하다.
2005년 신춘문예에서 문학과 영화 평론이 동시에 당선되어 데뷔한 후 신문과 잡지,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히 대중과 만나며 소통해 온 강유정 평론가는 2018년 K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를 계기로 저널리즘 비평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강유정 평론가가 문학평론에서 개인의 내밀한 서사를 축으로 타자성과 타자에 대한 윤리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고민하고자 했다면, 그가 쓴 영화평론에는 영화 안에서 포착되는 사회 구조적 시스템과 영화 밖의 대중 정서를 연결 지어 ‘지금 여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더욱 두드러진다. 저널리즘 비평에서는 기사를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텍스트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매체의 성격과 글을 쓴 사람의 관점, 시대 구조와 맥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콘텐츠’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특히 인문학적인 사유와 대중적인 감각이 결합된 균형 있는 시선으로 현재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강유정 평론가의 관점은 저널리즘 비평에 대한 논의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었다.
강유정 평론가는 문학과 영화, 저널리즘 비평은 모두 콘텐츠와 대중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을 읽고 필요한 담론을 포착해 보여 주는 일이라고 세 영역의 접점을 분명히 짚으며 『시네마토피아』의 서두를 연다. 이렇듯 『시네마토피아』는 비평의 관점에 서서, 문학과 영화 그리고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한국 사회의 현재를 다각도로 바라본다. 영화를 경유해 얽히고설킨 현실 정치와 언론의 부조리를 조망하고 세대, 젠더, 경제적 격차처럼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체감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 다음 영화와 인문학을 오가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성과 공동체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 정치와 사회 문제로 시작해 인문학으로 차근차근 이어지는 이 책의 흐름에는 강유정 평론가가 오랫동안 지켜 온 서사에 대한 철학과 소망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적 깊이와 현실 감각을 동시에 갖춘 균형감 있는 이야기,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잊지 않으면서도 쉽게 절망하거나 헛된 희망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현실과 “삶을 견인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다. 『시네마토피아』를 통해 우리는 강유정 평론가가 품은 믿음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 믿음에 기반해 이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낙관해 볼 만한 미래를 함께 모색해 보게 될 것이다.
■ 현실은 영화에 어떻게 침투하는가 ― 현실 정치와 영화 저널리즘
강유정 평론가가 《경향신문》 칼럼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시작한 2014년은 박근혜 정권이 집권한 지 1년이 된 시점이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사회는 정권이 보여 준 소통의 무능함과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지난 정권부터 이어져 온 언론 탄압으로 인해 부실해진 언론을 향한 대중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이어져 온 언론의 부실함은 지금의 한국 현실 정치의 부조리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강유정 평론가는 이 책의 1부에서 ‘영화’의 눈으로 ‘저널리즘’을, ‘저널리즘’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며 시작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트루스」를 통해 저널리즘의 본질과 시스템의 모순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통해 언론 탄압으로 뉴스에서 기자가 사라지고 영화가 저널리즘처럼 사회적 진실 규명을 추구하게 된 현실을 짚으며 ‘영화적 판타지가 불가능해진 사회’를 말한다. 「킹메이커」, 「더 킹」을 통해 ‘왕’이 되려 한 권력자들과 ‘왕’을 추대하려 한 집단의 행태를 바라보고, 「아수라」, 「베테랑」, 「내부자들」 등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무법자들의 ‘밀실’을 중심으로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정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 영화가 보여 주는 현실의 사각지대 ― 아이, 청춘, 노년 그리고 여성의 자리
이 책의 2부 ‘사람의 자리’에서는 그동안 언론에서 갈등으로만 다뤄질 뿐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재적이면서도 오래 묵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아이, 청년, 노년, 여성, 그리고 경제적 격차를 둘러싼 문제들로, 우리 곁의 가까운 타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강유정 평론가는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계적인 흥행을 설명하며 소설 『파리대왕』과 『헝거게임』을 경유해 시스템을 향한 질문이 불가능해진 사회에서 고립과 생존만을 반복하는 “생존 게임 서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현상의 본질을 짚는다. 「스물」, 「소공녀」를 통해 점점 작아져만 가는 청춘의 사회적 자리가 로맨스조차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언급하고, 「그레이트 뷰티」, 「화장」 등 노년의 삶을 낭만적으로 다룬 영화를 다수 소개하면서 이런 영화들이 현실의 노년이 경험하는 가난과 고립을 의도적으로 가리거나 삭제한다고 지적한다. 「괴물」, 「해운대」, 「부산행」처럼 거듭 ‘천만’ 흥행에 성공한 재난 영화들을 통해 유토피아보다 재난에 더욱 공감하는 대중 정서를 사회적 맥락과 엮어 함께 읽어 낸다.
최근 몇 년간 가장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안고 있는 여성에 대한 글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여성을 피해자로 삼아 완성되는 남성의 성장 서사를 비판하고,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을 ‘연애’로 그렸던 지난 한국 영화들을 다시 짚으며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캡틴 마블」처럼 새로운 여성 영웅의 등장을 반가워하면서도, 여성 서사가 여전히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자기 동일성’의 서사보다 자신의 이름과 힘을 새로이 발견하는 ‘자기 정체성 발견’의 서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짚으며 우리에게 아직도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 지금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가 ― 영화의 태도
강유정 평론가는 다른 서사 장르보다도 영화에서 사회 공동체의 열망과 정서를 보다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1년에 두 편씩 천만 관객 영화가 탄생하는 한국에서의 영화는 그 어떤 콘텐츠보다 집단 무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강유정 평론가는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지, 또 어떤 인간이 되길 희망하는지 영화를 통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영화 「동주」를 통해 동지애적인 관계가 아닌 각자의 고유한 신념에 발을 딛고 서로를 존중하는 우정을 바라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서서 서로에게 시대와 염치를 배우는 공동체를 상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킬링 디어」를 통해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약속했던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돌아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약속을 얼마나 제대로 지켜 왔는지, 어쩌면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며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기도 한다.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약자의 상처와 피해를 다루는 영화의 윤리적인 태도에 주목하며, 약자가 발언권을 갖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때 일어날 사회적 변화를 우리가 함께 상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강유정 평론가는 『시네마토피아』를 통해 영화와 인문학이라는 보편적 언어가 가진 힘으로 이 시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성과 공동체 감각에 대해 거듭 이야기한다.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에 발을 딛고 서서 진심으로 낙관할 수 있는 미래를 가늠해 본다.
■ 책 속에서
역사, 아니 엄밀히 말해 역사의 기록은 공정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에는 이면이나 다양성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통제가 답이라고 보는 이들에게 역사란 승자의 몫이다. 승자는 단수다. 그러니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 자체가 권력에 대한 모독이며 월권이다. 하지만 문학만큼은 예외적인 치외법권 지역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은 곧 예술의 자유다. 즉 예술에서만 큼은 역사나 기록이 거부하는 다양한 상상력을 담을 수 있다. 그 어떤 권력자도 예술의 게토에 권력의 깃발을 꽂으려 해서는 안 된다. _ 54쪽 「‘을’들의 망명지」
‘나의 템포에 맞춰라.’ 사실 이것이야말로 갑질의 본질이다. 도대체 ‘당신의 템포’란 무엇인가. 비행기를 멈추게 한 재벌 3세의 속내는 ‘나의 템포’, 곧 내 기분에 맞추지 않았다는 비틀린 분노 아니었던가. 갑이란 ‘나의 템포’를 보편적 세계의 리듬으로 만들려는 사람이고 을은 끊임없이 자신의 템포를 누르고 더 큰 힘을 가진 자들의 템포에 맞추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나의 템포’라는 게 너무 주관적이란 사실이다. (……) ‘나의 템포’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열정 페이로, 대기업에서는 비정규직 인턴 사원으로, 자기 계발서에서는 도전으로 변형된다. 그들만의 템포를 만들어 두고는, 이건 내 템포보다 느리다, 이건 내 템포보다 빠르다며 정신없이 채찍을 휘두른다. _ 138쪽, 「나의 템포에 따르라」
최근 개봉하고 있는 영화들은 노년의 부정성의 정반대편에 있다. 65세가 된 유명 작가는 여전히 젊은 여성과 섹스를 하고, 친구들과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100세 노인은 어마어마한 돈이 든 가방을 챙겨 들고 방해되는 조직폭력배들까지 처리해 나간다. 우리가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노년과 세 영화가 그려 내는 노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노년대로라면 늙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레고리우스처럼, 하마터면 몰랐을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되는 노년이라면 말이다. (……)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영화 속에 그려진 노년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상상된 노년에 더 가깝다. _ 141쪽, 「상상적 허구, 상품이 된 노년」
재난이 장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이 공감한다는 걸 보여 준다. 관객들이 재난이라는 상황과 괴로움에 공감하는 것이다. (……) 우리가 이 영화들 가운데서 보는 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말처럼 환상은 집단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재난 서사들은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의 결집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된 재앙은 실제의 삶, 정치적 선택들 그리고 채 발화되지 못한 개인의 말들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_ 173쪽 「왜 ‘재난’이 자꾸 먹히는 걸까」
신데렐라는 어떻게 태어날까? 우선 믿어야 한다. 호박을 마차로 바꾸어 주고, 재투성이 옷을 화려한 드레스로 바꿔 준다는 요정 할머니의 말을 믿어야 한다. 순결하고 착하게 살아간다면 정의롭고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구원해 준다는 어머니의 말도 믿어야 한다. 이 순진한 믿음의 세계가 더러운 현실과 만나지 않을 때, 진공상태의 스노볼 안에서 신데렐라는 공주가 될 수 있다. 아니, 왕비로 신분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화다. 동화의 세계는 현실의 공기에 닿는 순간 바로 변질되고 만다. 현실의 여자들을 보면 그렇다. 그녀들은 믿기 때문에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나락에 빠진다. 「무뢰한」(2014)의 김혜경, 「은밀한 유혹」(2014)의 지연을 보며 신데렐라의 허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_227쪽 「세 여자」
우리는 흔히 우정이란 무조건 같은 길을 가는, 동지애적 관계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동주」에 묘사된 우정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 속에서 친구의 존재를 인정하는, 깊은 우정이다. 동주는 몽규에게 이상이 되어 주고, 몽규는 동주가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이 되어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되어 주는 이 관계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의 우정이 가져야 할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_ 275쪽 「부끄러움을 배웁니다」
사회적으로 큰일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가해자의 일부로서 참회하고 부끄러워한다. 세월호 참사 순간 무력하게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때도 그랬고, 열아홉 살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랬고, 몇 년 전 네 살 아이가 뜨거운 어린이집 통학 버스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도 그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다들 가해자나 다를 바 없다며 미안해했다. 처음처럼 그렇게 미안해하고 모두가 다 가해자로서 진짜 반성했다면, 세상은 달라졌어야 옳다. 하지만 과연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가?
(……) 어느새 가해자의 위치에서 슬쩍 내려오지는 않았을까? 죄책감의 유통기한은 얼마가 적당할 것인가? 아니,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죄책감에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어도 될까? _ 296쪽 「죄책감의 유효기간」
영화가 주는 위안, 우리는 그것을 판타지라고 부른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일들이 영화 속에선 척척 이뤄진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이 맺어지고, 진실을 입증하기 힘겨운 사투가 사필귀정으로 끝난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에서 그 판타지를 구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판타지의 밑바탕에는 실현 불가능한 정의에 대한 패배감이 깔려 있다. 어른들의 판타지가 좀 더 사실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독한 현실을 직면하는 것, 리얼리즘적 태도엔 체력이 필요하다. 순수한 이념은 곧 리얼리즘의 체력이기도 하다. _ 358쪽 「세상을 견딜 체력」
들어가며 영화로 세상을 읽는다는 것 4
1부 사회의 거울
영화와 저널리즘
파수꾼의 윤리 17
언론이 잃은 것 21
손가락과 달 사이, 패배의 크레바스 24
미국 그리고 영화의 자정 능력 27
현실 정치의 그림자
왕이 없는 세상의 ‘왕’ 33
최소 인간 실격에 대하여 37
자연인 박근혜 41
‘딸 바보’와 그 딸의 금기 45
뒤늦게 깨닫는 ‘빈집의 사랑’ 49
‘을’들의 망명지 53
냉정한 리더와 공감의 지도자 57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60
자기 단속 사회의 역습 63
두 개의 밀실, 두 번의 밤 67
그러므로 눈을 더 부릅떠야 한다 70
두 번째 삶, 선택 74
정치와 사업의 민낯 77
자유주의자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80
세월호 이후
시간의 무게 87
상처의 공동체, 재난의 커뮤니티 91
고통의 공간을 배우는 시간 94
2부 사람의 자리
아이, 청춘 그리고 노년
「우아한 거짓말」의 아픈 거울 101
미로와 생존 105
현실의 아이와 영화적 환상 가운데서 108
그 시절, 우리가 모르는 소녀 112
한낮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 115
촉법소년과 미래 118
소녀, 여름 그리고 1994년 122
연애도 사치라 하오 126
N포 세대의 로맨스 129
엑시트·타짜…… 그리고 ‘청춘’ 132
나의 템포에 따르라 136
상상적 허구, 상품이 된 노년 140
두 아버지 144
불평등과 침묵 148
나이 듦의 자리 151
노장의 품격, 거장의 인문학 155
역사와 갑을 상대성
자연주의 재고 161
속죄 없는 가해자 165
혐오와 정의, 만족의 두 얼굴 169
왜 ‘재난’이 자꾸 먹히는 걸까 173
친일, 작품과 사람 사이 176
즐거운 범죄 서사의 소멸 180
거래를 트는 식사, 정을 나누는 밥상 184
수사학이 불가능한 시대 188
현실이 스크린에 침투할 때 192
관객의 감정 구조와 정서적 현실 196
고통과 영광 그리고 질병 199
종말 그 이후 202
아파트 그리고 서울 205
다시 쓰는, 여성 서사
또 다른 10년 211
그 남자는 가짜다 215
그는 상습범이다 219
그녀는 이해받고 싶다 223
세 여자 227
불편한 ‘아가씨’는 누구의 ‘아가씨’인가 231
‘원더우먼’의 힘 235
가해와 피해, 뻔하지 않은 윤리학 238
‘엄마’와 멜로드라마 242
남을 위해 예쁠 필요는 없다 246
내가 누구인가를 물을 때는 언제일까? 249
싸움·투쟁이 아니라 공감·이해하자는 것 252
투명인간과 피해자의 서사 256
아름다운 뉴욕, 남루한 욕망 259
가만있지 않는 것 263
여성 그리고 주인공 266
3부 영화의 태도
삶이 묻고 영화가 답하다
부끄러움을 배웁니다 273
힙의 원천 클래식 276
종적 연민에 대하여 279
관심병과 악의 진부함 283
마음과 프로그래밍 287
일회적 삶과 인간의 의지 290
죄책감의 유효기간 294
비극의 반대말 297
항거와 헝거, 그리고 의지와 기적 301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305
나만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 309
영혼을 위한 여행, 기억을 위한 죽음 313
‘종수’에게서 포크너의 소년을 보다 316
나 자신을 아는 것 320
자결과 처벌의 아이러니 323
고전 처방전 327
호모사피엔스에게 겸손을! 331
살고, 사랑하고, 사유하고 335
강철비와 강철로 된 무지개 339
우아함, 그리고 옷에 대하여 342
브로맨스의 위계 346
시간과 신 349
믿음의 벨트 352
영화의, 영화를 위한
세상을 견딜 체력 357
미적 가상과 환각 사이에서 361
상투적 위안에 기대는 삶 365
진실의 발언권 368
공포 영화의 죽음엔 ‘의미’가 있어야 한다 372
상상력의 원천 376
감성의 공백 379
여배우의 눈빛 382
2015년 「어벤져스」 서울 386
‘되는 영화’의 피로 389
「어벤져스」의 농담 392
모니터와 텔레비전 그리고 스크린 395
볼거리보다 이야기 398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 401
차이 나는 해피 엔딩 405
영화도 진화가 필요하다 409
내일의 한국 영화
광대 없는 희극, 악인 없는 비극 415
계단, 비극 그리고 유머 419
아카데미 열병 423
‘봉준호 너머’ 새로운 봉준호를 기다리며 426
나가며 영화의 대답은 계속된다 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