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정원

정철훈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5월 19일 | ISBN 978-89-374-8182-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316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카인의 정원』은 실낙원에서 낙원을 꿈꾼다. 아니, 바로 지금이 실낙원이기에 낙원을 향한 행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카인의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한국 문학이 가야 할 중요한 이정표 하나가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류보선(문학평론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이념이 빚어내는 갈등을 심도 있게 천착해 온 작가 정철훈이 두 번째 장편소설 『카인의 정원』을 선보인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 소설을 읽고 며칠이 지났을 때까지도 소설에서 본 장면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날것의 상상력, 육질의 상상력에서” “능숙한 칼잡이처럼 삶을 저며” 내 “구원의 언어들을 건져 올린”(소설가 정미경) 것이다.  이질적 공간인 Y읍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과 자연의 복수 등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문을 연 이 소설은 인간의 탐욕과 그 결과를 시종 기이한 분위기로 연출해 낸다. 이미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답게 문장 하나하나마다 연단하고 세공한 흔적 또한 역력한데, 단 한 문장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은 탓에 치밀하고 적확한 묘사가 소설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비단 살인 사건의 범인 찾기라는 기존 소설 문법에 따르지 않고 “상징적 규범에 가려진 무시무시하고도 매혹적인 실재들을” 묵직한 주제 의식에 잘 형상화한 “이 작품은 한국 문학이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문학평론가 류보선)하고 있다.

편집자 리뷰

신조차 침묵하는 죽음의 땅, 핏빛 저주가 시작된 그곳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노래
“영혼이 배회하는 땅의 참혹에 관해 쓰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카인의 정원』의 배경인 Y읍은 휴전 후 주둔한 미군과 태국군, 그들을 위해 형성된 창녀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직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질적 공간이자,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모의 땅이며 살인과 폭력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이 작품은 전쟁의 상처와 주둔한 외국 군대의 폭력성이라는 다소 민감한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다. 소설 도입부의 연쇄 살인 사건 역시 온몸을 난자당한 채 생명의 성소인 자궁에 군용 손전등이 박혀 죽은 시체라는 엽기적이기까지 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상적인 폭력의 한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반성적 주체에 속하는 주인공 ‘요아킴’마저도 Y읍의 일상화된 폭력과 전혀 무관한 존재는 아니다. 산부인과와 외과 전공의인 그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는 행위 대신, 어렵사리 들어선 생명들을 없애는 일에 매달리거나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기보다는 폭력에 희생당한 시체들에서 살인의 흔적을 찾아내기 바쁘다. 폭력과 죽음의 증거물인 태아의 사체를 받아들인 정원은 기이할 정도로 화려하고 커다란 꽃을 통해 땅의 울음을 토해 내고,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채 죽음과 폭력의 증거물이 넘쳐나는 검은 강과 쓰레기장을 배회하며 자신의 먹을거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소설 전면에 반복되는 이 기괴한 풍경은 전혀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작가는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죽음과 폭력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 찾기에 나선다. 다시 말해 『카인의 정원』은 Y읍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을 계기로 문명의 불안과 불만을 다루는 한편, 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실낙원에서 낙원으로의 회귀를 꾀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전쟁의 잔재를 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폭력을 고스란히 지켜본 들판의 복수 혹은 자연의 복수가 시작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 때문에 소설 속의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고통 받으며 실낙원인 Y읍에서마저 쫓겨나는 등 더 큰 재앙으로 들어선다. 이렇듯 삶의 바닥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자연의, 땅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타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엿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희생당한 소설 속 인물들이 ‘숲의 정령’,  ‘들판의 정령’의 모습으로 요아킴 앞에 다시 나타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은 이렇게 삶의 가장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은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노로 가득 찬 땅의 소리를 듣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작가는 이 소설을 토해 냈다. 그가 말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은 처참할 정도로 잔인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길은 놀랄 만큼 가까이 있다. 작가가 전하는 생명의 메시지는 낙원에 이르는 길에 다름 아니다.
■ 추천의 글
  이 생으로부터 달아날 순 없을까? 막 끝난 전쟁이 검은 태양처럼 천공에 박혀 있는 외인부대의 기지촌. 떠도는 물풀 같은 존재들이 묵시록의 풍경을 온몸으로 체현하며 생을 이어가거나 어이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는 곳. 불과 쇠를 머금은 땅 위, 모든 선의와 따스함과 사소한 기쁨의 기미마저 말라 죽어 버린 이곳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모여 산다. 아슬아슬한 삶을 붙들어 보려고 그들은 늘 자지러지게 울어 댄다. 의사 요아킴은 왜 이 저주받은 장소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기이하리만치 크고 붉은 꽃들이 죄악의 묘비명처럼 피어나는 그의 정원의 비밀은 무엇일까. 잊기 위해서 먼저 기억해야 할 시간이 있다. 그건 그 시대를 견뎌 낸 사람들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우리가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카인의 정원󰡕은 이제 파편화되어 떠도는 그때 그곳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복원해 놓는다. 읽어 나가다 보면, 그가 호명하는 이름 하나하나의 운명이 아교 끓이는 냄새처럼 질기게 감겨든다. 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그는 문학의 사제가 되려 하는 것일까. 이 문학의 고행자는 능숙한 칼잡이처럼 삶을 저며 낸다. 날것의 상상력, 육질의 상상력에서 풍기는 피비린내가 자욱하다. 촘촘한 서사의 그물망 속에서 건져 올린 구원의 언어들을 읽다 보면 여전히 문학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그 무엇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정미경(소설가)
  이 소설을 읽고 며칠이 지났을 때까지도 소설에서 본 장면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나는 이 소설을 ‘재난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생로병사라는 이름의 불치병이 외국인 병사들이 주둔하는 Y읍을 휩쓸고 있다. 주인공 의사 요아킴은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병에 맞서고 있다. 의사 요아킴의 무기가 관장기, 주사기, 자궁경 따위라면 작가의 무기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려는 문체다. 하지만 이 싸움이 백전백패라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일이 지옥도의 풍경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왜 존엄해질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한다. 생로병사 탐진치를 통해. 구원만이 남은 그 어리석음을 통해. 맞선다는 건, 치료한다는 건, 바로 본다는 건 그런 뜻이리라.  ―김연수(소설가)
■ 작품 해설 중에서
『카인의 정원』은 Y읍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을 계기로 문명의 불안과 불만(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폭력적인 근대적 규율과 그것에 순응하는 신체들의 탄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불안과 불만의 문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제시하는 바, 이것으로 인해 보다 낯선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카인의 정원』은 실낙원에서 낙원을 꿈꾼다. 아니, 바로 지금이 실낙원이기에 낙원을 향한 행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 본문 중에서
  퍼런 실핏줄이 드러난 유방 사이에 깊은 자상이 나 있었고 음부에는 ㄱ자형 군용 손전등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하복부에서 사타구니에 이르는 불두덩이 위에 예리하게 베인 자상이 있었다. 음부에서 항문으로 이어진 음모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배꼽 주변도 예리하게 도려져 있었다. 복부에는 제왕 절개한 것으로 보이는 수술 자국이 쭈글쭈글한 주름과 겹쳐 있었다. 흉부엔 군데군데 사반이 눈에 띄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푸르뎅뎅하게 변색되고 있었다. 음부와 항문에서 나온 누런 진물이 조리대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음의 순간에 거칠게 반항했음을 증언하듯 꽉 움켜쥔 손가락 끝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피와 그을음으로 눅눅해진 공기 때문에 속이 메슥거렸다. -19쪽
  처음에는 닭 볏만 한 붉은 꽃대를 내밀고 있던 맨드라미가 일주일쯤 지나면 어른 머리 크기로 불쑥 자라 있었다. 마치 머리 가죽을 벗겨낸 사람의 두뇌처럼 꼬불꼬불한 각질에 둘러싸인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맨드라미뿐만 아니라 정원에 피어 있는 모든 꽃들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듯 너무 크게 벌어져 있었다. 동전만 한 크기여야 할 빨간 분꽃도 접시만큼이나 활짝 만개했는가 하면 나팔꽃도 어찌나 큰지 주먹 하나가 고스란히 들어갈 정도였다. 작약이며 앵초며 붓꽃이며 개망초도 다른 것에 비해 두 배나 크게 벌어져 있었다. 뜰은 예전의 정원이 아니었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가 그의 농화에 짓밟혀 붉은 즙을 토해 냈다. 수술실에서 도랑으로 흘러간 핏물이 다시 역류하는 것만 같았다. 썩은 과일처럼 부패한 시체를 해부해야 하는 공의라는 직업에 혐오감이 느껴졌다. 영혼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가슴을 메스로 절개해 열어젖힌 뒤, 내부를 헤집고 들여다본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영혼이 곧바로 하늘로 승천하지 않고 죽은 몸뚱이에 갇힌 채 최후의 심판 날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 마구 헤쳐진 몸에서 과연 구원될 수 있단 말인가. -91쪽
  땅이 복수를 하는 겁니다. 전쟁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민들레 벌판이 복수를 하는 것이죠.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민간인이든 유엔군이든, 죽어 간 사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민들레 들판이 그 비애를 토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죽음의 들판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불탄 트럭과 구멍 뚫린 철모 그리고 일그러진 포탄 껍데기들을 어루만지듯 민들레는 들판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죠. 민들레뿐이겠어요? 억새나 마타리, 구절초 같은 야생식물도 지천으로 피어나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죠. -249쪽
■ 줄거리
  이북에서 의전을 졸업하고 홀로 월남해 군의관으로 전역한 요아킴은 휴전선에서 가까운 최북단의 Y읍에 개원한다. 본업은 산부인과와 외과이며 읍내의 하나뿐인 병원이라 사체를 부검하는 공의를 겸하고 있지만, 미군과 태국군이 주둔한 탓에 형성된 창녀촌 덕분에 중절수술을 깔끔하게 하는 것으로 이름을 얻는다.   전쟁의 포화를 고스란히 떠안은 땅이 내뿜는 열기에 온 읍내가 지글지글 타오르던 여름, 요아킴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벌집으로 달려간다. 처참한 살인의 흔적은 화재사고로 위장된 1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지만 미군이 점령한 읍내의 역학 구도상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한다.   그러던 중 미군 훈련 캠프 주위에 마련된 임시 창녀촌에서는 또 하나의 살인과 화재가 발생하고, 연이어 미군의 사체가 발견된다. 범인을 찾기 위한 미군의 합동수색이 시작된 가운데 읍내 사람들과 미군들 사이에선 원인 모를 질병이 발생해 희생자가 속출하고, 미군 측에서는 요아킴에게 역학조사를 의뢰한다. 광활한 비무장지대의 노랗게 핀 민들레를 보며 요아킴은 드디어 침묵하던 땅의 복수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하는데…….

목차

부검의사 요아킴산부의 죽음종부성사불길자애원두꺼비와 맨드라미검은 방죽가평댁한탄강내부의 적살인자 스티브정원의 종소리종마 검진고해외팔이 조씨합동 수색땅 그림자들판의 복수소개 작전이주촌 
작가의 말 작품 해설 | 순응하는 신체와 벌거벗은 생명_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작가 소개

정철훈

195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을 수료하고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백야’ 외 5편의 시를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살고 싶은 아침』『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개 같은 신념』을 펴냈으며, 『김 알렉산드라 평전』『옐친과 21세기 러시아』『소련은 살아 있다』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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