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원제 Blood Meridian

코맥 매카시 | 옮김 김시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6월 30일 | ISBN 978-89-374-6378-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84쪽 | 가격 14,000원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 선정상

책소개

매카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묵시록적 세계관’의 시원이 되는 작품

서부 개척 신화에 철저히 가려진 미국 역사의 진실 파헤친 수작

 

날카로운 사실성과 초현실적 문체로 ‘매카시 열풍’ 일으킨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

 

《타임》 선정, 100대 영문소설

《뉴욕 타임스》 선정, 최근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소설

 「글래디에이터」, 「델마와 루이스」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화!

 

 

▶ 『신곡』과 『일리아드』와 『백경』을 합쳐 놓은 듯한…… 비범하고도 숨 막히는 걸작. — 존 밴빌

▶ 현존하는 미국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 — 해럴드 블룸

▶ 지옥 같은 죽음의 세계를 최면을 걸듯 리듬감 있고 고통스럽고 초현실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해 냈다. — 제인 글리슨 화이트

 

편집자 리뷰

“너무나 많은 이들이 파멸하고 만 이곳 사막은 너무도 광대하여

우리 마음을 마구 끌어당기지만 사실상 텅 비어 있지.”

 

미국 서부, 1846년 미국 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쓴 이전 고딕풍 소설들과 결별을 고하는 문제작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의 ‘국경’ 시리즈 4종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핏빛 자오선』은 그중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쓰인 국경 시리즈를 예고하는 첫 작품으로 세계문학전집 378번이다.『핏빛 자오선』을 통해 매카시는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며,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찬사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 코맥 매카시는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과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 역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함께 ‘현대를 대표하는 4대 미국 소설가’ 중 하나로 그를 꼽은 바 있다.

 

‘서부의 묵시록’으로도 불리는 『핏빛 자오선』은 매카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묵시록적 세계관의 시원이자, 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소설 가운데 문체와 분위기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1850년대 미국 서부 국경지대에서 빚어진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잔혹함과 폭력성을 까발리고, 삶과 죽음, 도덕과 전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서부 개척 신화에 철저히 가려진 미국 역사의 진실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이 작품은 바로 매카시 문학의 기조가 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한 소년. 1833년 테네시에서 태어난 소년은 열네 살이 되던 해 가출한다. 세인트루이스, 뉴올리언스를 거쳐, 그 시대 미국의 모든 이주민들이 그러했듯 소년은 정처 없이 방황하며, 약탈과 살인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미국의 서부 지대를 지나간다. 그리고 내커도처스에서 이후 인디언 머리 가죽 사냥꾼으로 같이 있게 될 홀든 판사를 스쳐 지나간다. 머무르는 곳마다 벌어지는 살인, 방화, 탈주. 1850년대 미국 서부는 시체를 실은 수레가 길에서 오가고, 도처에서 인디언 학살극이 벌어지는 곳이다. 소년도 어린 나이에 한 바에서 첫 살인을 경험하고, 이후 소년과 토드빈은 감옥을 나와 글랜턴이라는 사내가 이끄는 한 떠돌이 무리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덩치가 크고 대머리에 알비노라는 독특한 외모를 가진 홀든 판사가 있다. 그는 아이와 동물을 사소하게 죽이는 아주 잔인한 인물로, 무리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다.

 

글랜턴의 무리는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 머리 가죽을 벗겨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인간 사냥꾼들이다.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인디언들을 죽인다고 하지만, 그들이 상대로 하는 것은 비단 인디언들만이 아니다. 탈주자들, 이주민들, 멕시코인들, 심지어 미국인들이 거주하는 마을까지 그들에게는 약탈의 대상이다. 미국인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 그것으로 돈을 받고, 같은 동료 사이에서도 대결과 살인이 벌어진다.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도 알 수 없는 행위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글랜턴의 부대는 콜로라도 강에서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나룻배를 갈취한 후, 사람들을 착취하여 수임료를 챙기기 시작한다. 글랜턴이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으로 요새를 개축해 가던 중, 유마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이들 무리도 끝내 종말을 맞게 된다. 살아남은 이는 소년과 홀든 판사, 둘뿐이다. 그들은 30여 년이 지난 후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소년은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라 마흔 중반의 남자다. 인간 존재 자체가 전쟁과 죽음을 위한 것이라는 판사, 그리고 그 판사의 끝없는 암흑 속으로 영입되지 않았던 단 하나의 존재. 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결은 결말 없이 끝난 듯하지만, 결국 판사는 남자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춤을 춘다.

 

 

국경 삼부작의 시원, ‘매카시 열풍’을 이어갈 또 하나의 대표작

   작가에게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화제작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알려지면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보였던 매카시는, 여름이 시작되면서 『로드』로 본격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성서에 비견되는 상징성과 묵직한 감동으로 평단과 독자를 뒤흔든 것이다. 하지만 국내와 달리 전 세계적인 ‘매카시 열풍’은 매카시가 1985년에 발표한 『핏빛 자오선』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출간 당시 “『신곡』과 『일리아드』와 『백경』을 합쳐놓은 듯한…… 비범하고도 숨 막히는 걸작이다.”(존 밴빌) 또는 “폭력을 통한 거듭남을 다룬 미국의 고전. 매카시는 멜빌이나 포크너와 같은 거장과만 견줄 수 있으며, 『핏빛 자오선』은 단연 걸작이다.”(마이클 허)와 같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핏빛 자오선』은) 현존하는 미국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해럴드 블룸의 평가가 뒷받침하듯, 매카시는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평단뿐 아니라 대중들까지 매혹시켰다. 이 작품은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속하며, 《뉴욕 타임스》가 뽑은 최근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소설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의 원작소설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코맥 매카시의 초기 작품들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고딕풍 소설들이다. 그런데 미국 서부 텍사스 주 엘패소로 이주한 후, 그의 작품 성향은 바뀌었다. 『핏빛 자오선』을 시작으로 ‘국경 3부작’을 거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에 이르기까지 이때부터 매카시의 작품은 모두 지독하게 스산한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폭력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본성에 대해 파고든다. 그중에서 『핏빛 자오선』이야말로 매카시 문학의 시원에 해당하는 수작이다.『핏빛 자오선』에서 작가가 그려내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폭력의 세계는 감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산 자나 죽은 자나 가릴 것 없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두개골에 칼날을 박아 피투성이 머리 가죽을 하늘 높이 쳐들고”, “벌거벗은 몸을 조각조각 썰어 팔다리와 머리를 떼어 내”거나 “벌거벗은 아기 발꿈치를 차례로 쥐고 머리를 돌덩이로 짓이겨…… 아기의 정수리 숨구멍으로 시뻘건 구토물 같은 뇌수가 콸콸 쏟아”지게 하는 등 작품이 보여 주는 살육과 폭력은 “마치 1999년 코소보의 폭력에 대한 유엔 보고서와도 같다.”

 

놀라운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학살이 과장된 허구가 아니라, 1846년 미국 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영토 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일부 미국의 불법 군대들은 전쟁에서 멕시코를 정복하지 못한 것에 분이 안 풀려 황무지를 몰려다니며 폭력을 휘둘렀다. 다른 일부 미국인 용병들은 멕시코 정부에 고용되어 아파치 머리 가죽을 벗겨 내어 현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용병들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머리 가죽을 벗겨 멕시코 정부의 돈을 뜯어 가곤 했다. 이렇게 두 무리의 무법 행위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주인공 소년이 합류했던 글랜턴 원정대도 실재했던 팀이고, 소설 속에서 악을 지배하는 인물인 홀든 판사는 물론 그린 목사, 화이트 대위도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피로 얼룩진 인류 역사의 비극을 그린 “세기의 정전”

  국경 삼부작과 함께 매카시가 완성해 간 핏빛 국경 시리즈

 

매카시 문학의 시원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필두로, 매카시는 『모두 다 예쁜 말들』(1992), 『국경을 넘어』(1994), 『평원의 도시들』(1998)을 포함한 ‘국경 삼부작’을 완성한다. 대중소설이라 치부했던 미국 특유의 서부 장르 소설에 문학성을 부여하여 이전 서부 장르 소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소설을 탄생시킨 매카시는 『모두 다 예쁜 말들』에 이어 『국경을 넘어』와 『평원의 도시들』을 발표하였고, 미국 서부와 멕시코의 접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국경 3부작’을 완성하였다. ‘미국의 고전’으로 칭해지는 그의 대표작 ‘국경 3부작’은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평론가와 대중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 세 작품은 카우보이 소년들이 겪는 피비린내 나는 모험과 잔혹한 생존 게임 그리고 그들의 쓰디쓴 성장을 담고 있다.

 

각 작품은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모든 이야기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첫 번째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의 주인공들이 세 번째 작품에서 만난다는 독특한 연결 고리를 가진다.(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국경을 넘어』, 『모두 다 예쁜 말들』, 『평원의 도시들』이다.) 인간의 잔혹함과 세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매카시 특유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보여 주는 이 작품들은 시적이고도 매혹적인 문체로 삶과 죽음, 신과 운명에 대한 문제를 묵직하게 던지며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카우보이로 대표되는 한 고독한 인간이 국경이라는 경계를 넘어 세상을 만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깨달아 가는 여정이 때로는 말을 사랑하는 카우보이 소년의 쓸쓸한 낭만으로(『모두 다 예쁜 말들』), 때로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세상을 향한 비탄으로(『국경을 넘어』), 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신화적 숭고함으로(『평원의 도시들』)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중 첫 번째 작품인 『모두 다 예쁜 말들』은 흥미진진한 서부 장르 소설인 동시에, 인생의 비극을 가로지르는 한 카우보이 소년의 가슴 아픈 성장소설이다.

 

 

영혼을 압도하는 매혹적인 문체와 분위기로 말하는 작가

   서부 장르 소설의 비극성, 핏빛으로 물든 소년의 삶

 

소설은 열네 살의 이름 없는 소년이 인디언이 도륙당하고 그 머리 가죽이 성황리에 팔리는 지옥 같은 세계로 들어가서 겪은 30여 년의 삶을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시종일관 소년의 시선을 따라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잔혹함과 폭력성을 까발리고, 삶과 죽음, 선과 악, 도덕과 전쟁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 홀든 판사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의 고비마다 전쟁이 도덕을 누르고 폭력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 존재는 그 자체로 전쟁과 죽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아파치 머리 가죽을 벗겨 내던 소년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이르러 홀든 판사에게 대적할 정도로 성숙하게 된다. 소년은 끝까지 홀든 판사가 지배하는 끝없는 암흑 속으로 편입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매카시는 이 작품을 통해 서부 개척의 신화는 결국 피로 얻어낸 백인들만의 승리였음을 보여 줌으로써, 스스로 숭고하다고 자부하는 미국인들의 역사를 처절하게 뒤엎어 버린다. 그리고 희미하나마 인류의 한 줄기 희망을 상징하던 주인공마저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는 죽여 버림으로써, 세상의 본질은 결국 죽음과 악에 다름 아니고,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핏빛 자오선』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최악의 악몽 같은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 냈을 뿐 아니라, “최면을 걸듯 리듬감 있는 초현실적인 문장들”로 대단히 시적으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문체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미묘함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고어, 은어, 조어가 만들어 내는 시적이면서 미묘한 상징성을 통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해설서까지 여럿 나와 있다. 거의 초현실에 가까운 듯 보이는 살육과 폭력의 세계는 때로는 쉼 없이 줄줄 이어지는 만연체로, 때로는 감정이 최대한 절제되고 강력한 건조체로 그려진다. 주로 피로 물든 사막의 풍경이나 살육의 묘사가 만연체이고, 인물들의 대화는 건조체이다. 그러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문체는 ‘문장부호의 생략’이라는 매카시 특유의 스타일을 통해 잘 어우러지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문장부호 없는 대화들로 인해 마치 소설 전체가 한 내레이터의 독백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구체적인 서사가 없는 데다가 살육과 폭력이 자행되는 유사한 장면들이 계속 반복됨으로써 소설의 몽환적인 느낌과 묵시록적 분위기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짙어진다.

 

 

『핏빛 자오선』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

 

『핏빛 자오선』은 현존하는 미국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해럴드 블룸, 《뉴욕 옵서버》

 

『신곡』과 『일리아드』와 『백경』을 합쳐놓은 듯한…… 비범하고도 숨 막히는 걸작이다.— 존 밴빌, 《런던 인디펜던트》

 

매카시의 새로운 성서적 수사법과 약동하며 끓어오르는 듯한 문체와 영혼을 사로잡는 어휘는 오늘날의 그 어느 미국 작가도 감히 견줄 수 없다. — 앨런 쇠즈, 《USA 투데이》

 

코맥 매카시의 폭력적이면서 서정적인 걸작 『핏빛 자오선』은 웅장한 언어를 통해 도덕을 초월하는 묵시록 차원에 도달했다. 이는 목적 없는 지옥의 대장정이다. — 아일린 배터스비

 

폭력을 통한 거듭남을 다룬 미국의 고전. 매카시는 멜빌이나 포크너와 같은 거장과만 견줄 수 있으며, 『핏빛 자오선』은 단연 걸작이다. — 마이클 허

 

지옥 같은 죽음의 세계를 최면을 걸듯 리듬감 있고 고통스럽고 초현실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해 냈다. — 제인 글리슨 화이트

 

매카시는 읽고, 찬미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해야 마땅한 작가이다. — 랠프 엘리슨

 

매카시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한 줄 한 줄 날카로운 사실성을 품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 로버트 펜 워런

 

코맥 매카시는 남부 출신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문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가히 포크너의 후예라 할 만하다. ……비극의 중심부에는 이성적인 블랙 유머가 깃들어 있다. — 《뉴 리퍼블릭》

 

매카시는 서정시와 같은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간결함을 놓치지 않으며, 그의 비극적 감각은 적확하기 이를 데 없다. — 《런던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핏빛 자오선』을 읽은 독자의 후기

 

“셰익스피어 레어 버전. 피가 뚝뚝 떨어지는게 진미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에 유린당하는 영혼들의 피비린내 나는 서사시”

 

“현대의 묵시록, 진정 암흑의 핵심”

 

“입안까지 느껴지는 멕시코의 사막 모래 맛. 정말 거칠다.”

 

 

본문 중에서

 

하느님께서 인류의 타락을 막으려 하셨다면 벌써 막지 않았을까? 늑대는 열등한 늑대를 스스로 도태시키네. 다른 동물은 또 어떤가? 한데 인류는 예전보다 더욱더 탐욕스럽지 않은가? 본디 세상은 싹이 트고 꽃이 피면 시들어 죽게 마련이야. 하지만 인간은 쇠락이라는 것을 모르지. 인간은 한밤중에도 정오의 한낮이라는 깃발을 올리네. 인간의 영혼은 성취의 정점에서 고갈되지. 인간의 정오가 일단 어두워지면 이제 낮은 어둠으로 바뀌네. 인간이 게임을 좋아한다고? 그래, 맘껏 도박하게 해. 여기를 보라고. 야만인 부족이 폐허를 보고 경탄하는 일이 미래에는 또 없을 것 같나? 전혀, 있고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후손들이 그런 일을 겪겠지.(212쪽)

 

머리 가죽을 돌바닥에 늘어놓는 동안 구경꾼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머스킷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군중을 밀어내고, 젊은 아가씨들은 커다란 검은 눈으로 미국인을 응시하고, 남자아이들은 소름 끼치는 전리품을 만져 보고 싶어 열심히 기어들었다. 모두 128개의 머리 가죽과 여덟 개의 머리가 있었다. 주지사의 부관과 수행원들이 마당으로 나와 그들을 환영하고 전리품에 감탄했다. 그날 저녁 리들앤스티븐스 호텔에서 열릴 축하연에서 수고비를 전부 황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에 용병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고는 다시 말에 올랐다. 검은 스카프를 두른 할머니들이 달려와 그들의 악취 나는 셔츠 자락에 키스를 하고는, 볕에 탄 자그마한 손을 올려 그들을 축복했다. 용병들은 수척한 말 머리를 돌려 열광하는 군중 틈을 비집고 거리로 나왔다.(239쪽)

 

판사는 숙영지 주변의 검은 숲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수집한 표본을 향해 고갯짓했다. 이 이름 없는 것들은 이 세상에 하등 무용한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가 우리를 삼켜 버릴 수도 있다네. 인간이 알지 못한 채 이 바위 아래 숨어 있는 아주 작은 존재가 말이야. 오직 자연만이 인간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만큼, 그 마지막 존재를 인간이 오롯이 드러낸다면 인간은 이 지구의 종주가 되는 거네.

종주가 뭔데요?

주인 말일세. 혹은 군주라고도 하지.

그러면 처음부터 쉽게 주인이라고 말을 하지.

그냥 주인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주인이거든. 종주는 심지어 다른 제후도 다스리지. 종주의 권위는 지방 법원의 판결도 취소시킬 수 있어.

토드빈은 침을 뱉었다.

판사가 두 손을 땅에 뻗었다. 그리고 질문한 자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나의 땅이네. 하지만 이 땅 위에는 어디에나 자치적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지. 자치적으로 말이야. 이 땅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나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해.

토드빈은 발을 엇갈려 앉아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가 말했다.

판사가 거대한 머리를 갸웃했다. 세상의 비밀을 영원히 풀 수 없다고 믿는 자는 두려움과 신비 속에서 살아가지. 결국 미신에 질질 끌려 다녀. 인생에 대한 통제력은 빗방울에 모두 침식당하고서 말이야. 하지만 태피스트리에서 이치(理致)의 실을 뽑아내기로 결심한 사람은 그 결심만으로도 세상을 다스리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운명조차 바꾸어 놓는다네.

그게 새를 잡는 거랑 대관절 무슨 상관이죠?

새의 자유는 곧 나의 모독이지. 새는 모조리 동물원에 가둬 놓아야 해.(280~281쪽)

 

이곳 지구에는 온갖 기묘한 것이 있지. 태어나 평생을 살아도 지구 전부를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기묘함을 목격하네. 약장수의 모자 마술이나 열기 어린 꿈이나 전무후무한 환상으로 넘쳐나는 황홀이나 유랑하는 카니발이나 수많은 흙바닥에 수많은 천막을 세워야 할 절대적 운명의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겪는 순회 서커스단이나 다 마찬가지야.(344쪽)

 

너는 암살자도 게릴라도 아니야. 판사가 외쳤다. 네 마음 한구석에는 흠집이 나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너만이 내 뜻을 거역했지. 너만이 네 영혼 한켠에 천국에나 어울릴 만한 온화함을 갖고 있었어.(416쪽)

 

미친 것은 바로 당신이오. 소년이 말했다.

판사가 빙그레 웃었다. 아니, 나야 늘 제정신이지. 그나저나 왜 어둠 속에 숨어 있나? 밖으로 나와 우리 둘이서 진지하게 얘기해 보세. (……)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은 빵의 공유가 아니라 적

의 공유야. 하지만 내가 자네 적이라면 누가 자네 편에 설 것 같은가? 누가? 신부가? 그는 지금 어디 있지? 날 보라고. 우리의 증오는 우리 둘이 만나기 전부터도 이미 존재하고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아직은 바꿀 기회가 자네한테 있네.(425~426쪽)

 

새하얀 텅 빈 방에서 그는 맞춤 양복을 입고 손에 모자를 들고 눈썹 없는 자그마한 돼지 눈으로 아래를 응시했다. 지상에서 겨우 16년을 산 소년은 인간의 법에 대고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결정을 그의 눈에서 읽었고, 다른 곳에는 결코 새겨질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이 이미 그 두 눈에 새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소년은 옛 지도나 노인네의 말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지역의 여행자가 된 것이다.(430쪽)

 

이는 모두 무엇인가를 위한 오케스트라라네. 바로 춤을 위한 것이지. 참가자들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역할을 통지받지. 지금으로서는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중요한 것은 춤이고, 순서와 역사와 끝이 춤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면 춤을 추는 사람이 그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지. 어떤 역사든 그것은 각 개인의 역사도, 각 개인의 역사의 합도 아니라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

거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어찌 알겠나. 오히려 자신은 여기 없을 수도 있었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것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네.(455쪽)

 

이것 하나는 알지. 전쟁이 불명예가 되고 전쟁의 고귀함이 의문시된다면 피의 신성함을 아는 명예로운 이들은 무도회에서 쫓겨날 거네. 춤이야말로 전사의 권리이기에 결국 무도회는 가짜 무도회가 되고, 춤을 추는 이도 가짜가 되는 거지. 하지만 언제나 진정한 춤을 추는 이가 한 명 정도는 있다네. 누군지 아나?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오.

그 말은 자네가 아는 것보다 더욱 진실하다네. 하지만 이 말을 해주고 싶군. 전쟁의 피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친 사람만이,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 생생한 공포를 맛보고 급기야 참된 영혼으로 공포와 이야기 나누는 법을 배운 자만이 진정한 춤을 출 수 있네.

머저리 짐승도 춤을 출 수 있소.

판사가 술병을 바에 내려놓았다. 내 말 새겨듣게. 무대에는 오직 짐승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 있네. 공간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는 그 하룻밤 동안 이름은 없되 목숨을 이어갈 운명이지.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지. 춤추는 곰이 있고 춤추지 않는 곰이 있어.(458~459쪽)

목차

핏빛 자오선 11

 

작품 해설 467

작가 연보 471

작가 소개

코맥 매카시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

 

윌리엄 포크너, 허먼 멜빌,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함께 코맥 매카시를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대 미국 소설가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매카시는 193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났다.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전공했고 공군에서 4년 동안 복무했다. 시카고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쓴 첫 번째 장편소설 『과수원지기(The Orchard Keeper)』(1965)로 포크너 상을 받았다. 이후 『바깥의 어둠(Outer Dark)』(1968), 『신의 아들(Child of God)』(1974), 가장 자전적 내용의 『서트리(Suttree)』(1978)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1976년 텍사스 주 엘패소로 이주한 후 발표한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1985)은 초기 고딕풍 소설에서 묵시록적 분위기가 배어 있는 서부 장르 소설로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수작이자 매카시에게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이다.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 소설’로도 선정되었다.

『모두 다 예쁜 말들(All the Pretty Horses)』(1992)은 평론가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전미 도서상과 전미 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또한 처음 여섯 달 동안 20만 부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다른 두 작품 『국경을 넘어(The Crossing)』(1994)와 『평원의 도시들(Cities of the Plain)』(1998)을 포함한 ‘국경 3부작’은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찬사와 함께, 매카시의 작품 중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들이다.

그 밖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2005), 『로드(The Road)』(2006) 등이 있으며 2007년에 『로드』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카운슬러(The Counselor)』는 매카시가 쓴 첫 번째 시나리오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12년 영화화했다.

김시현 옮김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캐나다의 비영리법인에서 자원 봉사활동을 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코맥 매카시의 『평원의 도시들』, 『핏빛 자오선』,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카운슬러』 외에 『인생 수정』, 『우먼 인 블랙』, 『리시 이야기』, 『이중구속』, 『심문』, 『비밀의 계곡』, 『약탈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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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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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누구나 아픈 역사가 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또 어떻게 살아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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