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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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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다시 스타인키 | 옮김 박소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4월 9일

ISBN: 978-89-374-1754-2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0 · 368쪽

가격: 16,8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완경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완경이라는 현상을 가부장제 아래서 경험한다는 점이 문제다.”

완경 이후 여성의 삶을 총체적으로 탐구하고,
혁명적 시각을 제안하는 대담한 선언서

희망을 가지는 일은 언제나 필수적이다.

나의 생식력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 확장되어 간다. 나는 나이가 들고, 심지어 약간은 부패하는 단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썩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생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읽기, 쓰기, 봉사하기, 가르치기, 시위하기, 돌보기 그리고 사랑하기를 통해서 우리 삶에 필요한 양분을 사냥해 오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가 찾은 결실을 모두에게 나눠 주겠다고 약속한다. -본문에서

『완경 일기』는 대단히 박식하고 영감으로 가득하며 놀랍도록 감동적인 회고록이자 완경의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기꺼이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쉴 새 없이 감탄했다. 우리 모두가 읽어야만 하는 치열하고 중요한 이야기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빅매직』의 저자)

완경에 관한 뜨거운 증언! 다시 스타인키는 양극단을 오가는 호르몬의 조수에 휩쓸리면서도 의연하게 완경의 참된 의미를 찾아냈다. -올리비아 랭(『외로운 도시』의 저자)

완경이야말로 우리가 개척하고 탐험해야 하는 새로운 철학의 영역이다. 다시 스타인키는 그 과업을 완수해 냈다. 우아하고 현명하며 매혹적인 『완경 일기』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매기 넬슨(『블루엣』의 저자)

어쩌면 회고록, 혹은 선언문, 매우 섬세한 생태학적 기록. 『완경 일기』는 이제껏 밝혀진 바 없는 낯선 영토를 질주하는 대담한 모험이다. -제니 오필(『사색의 부서』의 저자)

『완경 일기』는 그동안 가부장제 사회가 무시해 왔던, 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닌 생물학적 변화를 매우 친밀하고 정열적인 어조로 들려준다. 모든 여성들이 직면해 있고, 언젠가 마주해야만 하는 완경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신선하고 초월적인 문제인지 몰랐다. -《뉴욕 타임스》

정말 순식간에 다 읽었다. 『완경 일기』는 새로운 물결이라 할 만하다. 완경은 생식력의 종말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다. 이 책은 완경이 가져다준 창의성의 결실이자 증거다. -《뉴요커》

형이상학적이면서 생물학적 경험인 ‘완경’을 비범하고 심오하게 탐구한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완경을 ‘폐경’이라고 부르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예리하고 도발적인 고발! -《커커스 리뷰》


목차

1 불타는 밤
2 롤리타에게 자유를
3 동물의 굴레에서
4 에덴동산의 바깥으로
5 케머 기간의 데미걸
6 마녀가 된다는 것
7 친숙한 원숭이
8 밤의 사냥꾼
9 내 심장의 구멍
10 고래의 승리
11 새로운 시작

고래에 대한 일러두기
참고 문헌
감사의 말


편집자 리뷰

완경기 여성은 사회적 편견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이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구출될 수 없으므로,
나는 딸과 딸의 세대를 위하여 완경의 경험을 기록한다!

소설과 에세이 등 여덟 권의 책을 발표한 작가, 프린스턴과 컬럼비아, 바너드 등 유명 대학교에서 연구원이자 교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시 스타인키의 『완경 일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여자, 작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오래도록 여성의 삶과 조건을 고민하고, 가부장제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을 고발해 온 저자는 56세, 마침내 완경을 몸소 경험하고 자기 인생을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는 시기에 이르러, 우리 사회가 ‘완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폄하하고, 그럼으로써 여성들에게 얼마큼 잔혹한 낙인을 찍는지, 새삼 목도한다.
먼저 완경은 생물학적이고 동물적 고통으로 엄습해 온다. 저자는 하루하루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드는 뜨거운 열감에 시달리며, 옷을 흥건하게 적시는 땀과 머릿속을 아연하게 뒤흔들어 놓는 착란, 요동치는 감정과 지긋지긋한 불면의 나날을 보낸다.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초경과 완경이 하나라는 점을, 먼 훗날 다달이 복부를 쥐어짜는 월경이 멎게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겪어 내야만 하는, 자기 경험으로서의 완경은 상식과 통념, 심지어 상상을 초월하는 ‘무엇’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숨통을 조여 오는 열감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저자 다시 스타인키는 완전한 타자이자 오롯한 자아인 ‘완경’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서재의 책을 들여다보고, 텔레비전과 유튜브, SNS를 분주하게 오가며 ‘폐경’이라고 불리는 완경의 모습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소녀에서 여성이 되는 초경의 순간과, 여성에서 어머니가 되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쳐 날 뿐 아니라, 하나같이 찬사와 경탄을 쏟아 낸다. 그렇다면 완경은? 여성이 생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 시기는 기나긴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 기껏해야 땀을 뻘뻘 흘리며 우스꽝스럽게 부산을 떠는 여자, 극심한 감정 기복에 휩쓸려서 발광하는 여자, 매력은커녕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마저 박탈당한 여자…… 이른바 ‘폐경기 여성’의 초상은 잔인하고 험악할 따름이다. 폐경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막히고, 닫히고, 끝장났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 다시 스타인키는 완경 이후 오래도록 이어지는 여성의 삶을 벌써 망가지고 실패하고, 혹은 복구하거나 정상화해야만 하는 영역으로 치부해 버리는 가부장제 문화에 맹렬히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지평을 찾아 나선다.
지구에 존재하는 포유류 중에서 온전히 ‘완경 이후의 삶’을 누리는 동물은 인간과 고래뿐이다. 완경을 통해 (초경과 다른 의미의) 육체적 변화, 즉 인간의 필멸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한 저자는 자기 존재가 떠안고 있는 동물성의 무게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크 데리다가 지적하였듯이 “동물의 응시”로부터 새로운 “사유를 시작”하게 된 다시 스타인키는 인간과 함께 완경을 겪는 고래에게 깊이 매료된다. 남성의 필요와 쾌락을 기준으로 구성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식력을 잃은, 이를테면 완경기 여성은 쓸모없고, 무가치하고, 마녀나 악마로 규정되어 왔다. 오늘날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칼집’에서 기원했고, 문학과 예술은 물론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생물학과 의학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신체와 경험은 가부장제 시각을 통해 끊임없이 재단되었다. 그런데 고래는 달랐다. 완경 이후에도 장수하며 무리를 통솔하는 모계 고래 가장들은, 완경을 늦추기 위해 약을 복용하지도 않고 지독한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신화적 여성성을 보전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생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생을 광범위하고 궁극적인 차원에서 드높이 실현하고 있었다.
인간과 더불어 완경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계 가장 고래들의 삶으로부터 저자는 이제 어머니(혹은 어머니 세대)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분노와 자기혐오, 수치심과 후회, 우울과 절망의 실체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완경에 이르러 가까스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어머니, 아니 (모든 가능성과 꿈과 발언권을 빼앗긴) 한 여성이 자기 존재를 비웃고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 무슨 수로 항거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폐경 여성’의 하찮은 변덕이나 심술이 아니었다. 한평생 가부장제가 약탈하고 억압해 왔던 여성의 목소리이자 참담할 만큼 절실한 절규였다.
저자 다시 스타인키는 선언한다. 완경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다만 완경을 폐경이라고 낙인찍는 가부장제 사회가 문제일 따름이라고. 여성은 완경을 통해 보다 폭넓은 시야와 식견, 감정(공감 능력)과 섹슈얼리티, 창조성과 열정을 얻을 수 있다. 이제껏 남성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던 인문학, 사회 과학, 생물학, 의학 등 모든 학문 분과가 완경의 진면목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내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희망을 가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모하고 실낱같아 보이던 위대한 시도들이 폐경을 완경으로 고쳐 말하게 하고, 여성의 삶을 무한한 영감과 가능성으로 넘쳐 나게끔 확장시켜 주었다. 끝으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딸과 딸의 세대를 위하여 완경의 기록을 남겼노라”고.

■ 본문에서

아무도 이를 드러내 놓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완경은 어떤 ‘상실에 대한 사건’이다. 그것은 떠나 버림에 관한 것이다. 열감은 매번 내가 물리적 육체를 지닌 존재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필멸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열감이 나를 휩쓸고 가는 순간마다 정신은 스스로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깨닫도록 내몰린다. 내가 필멸하리라는 사실! 그것은 공포의 감각이다. 동시에 좀처럼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공포를 차분히 직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한계에 대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

뜨거운 열감과 불면이 얽혀 만들어 내는, 착잡하고 건조한 피로감은 어떤 진실을 느끼게 해 준다. 더 광범위한 감정을 포괄하는 흐름을 통해 이 세상을 더 큰 인지력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자아에 대해서도 더욱 첨예한 인식을 갖게 된다.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 설치된 ‘여성과 젠더 연구소(Center for Research on Women and Gender)’의 폴린 마키(Pauline Maki) 박사는 뜨거운 열감 현상의 예기하지 못한 부가 효과는 관대한 공감 능력의 확대라고 말했다. “뜨거운 열감은 당신 자신도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옵니다. 당신은 자신의 육체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점은 여성들로 하여금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감정 이입하게 해 줍니다.”

[완경의] 열감은 화학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며, 과거와 현재의 좌절감을 한꺼번에 포괄한다. 그것은 또한 억눌린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그리어는 저서 『변화(e Change)』에서 완경기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의 일부는 “여성의 분노 표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무지의 결과”라고 언급한다. 완경기를 겪는 여성들은 유례없이, 이전까지 계속 유지해 오던 정신적 자제력을 꺾고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 낸다.

자유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육아와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끊임없이 아름다워 보이기 위한 노력으로부터의 자유, 불쾌하게 힐끔대는 남성적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위험한 탈선을 부추기는 성적 욕구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우선 내 육체가 진화해야만 한다. 여자로서 나는 피와 살이 격동하는 변화를 겪는 데에 익숙하다. 사춘기를 지나오며 피부는 기름져졌고, 가슴은 앞으로 튀어나왔으며, 나 자신이 봐도 놀라울 만큼 팔다리 사이에서 검은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임신 마지막 달 동안 내 안의 생명체는 배 속 장기들 사이로 제 발가락 하나를 자주 밀어 넣고, 부풀어 오른 뱃가죽의 둥근 표면 위로 발바닥 형태가 도드라질 정도로 질질 끌기도 했다. 사춘기와 임신기라는 두 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종종 혼란스럽고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을 잘 견뎌 내면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적 욕구는 월경과 함께 일어나고, 육체적 쾌락, 친밀감, 낭만적인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엉뚱한 변덕들이 이를 따른다. 출산은 모성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다준다. 우리 뇌는 새로 등장한 자그마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요구 사항으로 자기 삶을 재배치한다.
인생에 온전히 매진하게 하는 뚜렷한 지시 사항 없이 도래하는 것은 오직 완경뿐이다. 새로운 대상에 대한 집착과 책임감 따위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부정적인 감정만이 차오를 따름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나이 든 여성들에게는 거의 공간을 내주지 않는 강압적 가부장제 문화가 만들어 낸 공허함이다.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실로 무수한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는 압도적으로 냉소적이며 허무하다. 당신은 이제 쓸모없으니, 이만 옆으로 물러나 달라고. 내적 공허함에 더해서 외적 투명화, 비가시화에도 맞서 싸워야만 한다. 한 여자는 50세가 되고 나니, 날마다 조금씩 더욱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내게 말했다.

동물이 된다는 것. 이것은 내가 야만적이거나 저열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별로 복잡한 얘기가 아니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 모두는 하루에도 수없이 동물이 된다. 성관계를 하거나 배변을 하거나 아기에게 수유를 하거나, 뛰고, 헤엄치고 먹고 혹은 완경기의 열감을 느낄 때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동물적 자아와 함께 공허함 속에 고요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몇 분마다 전화기를 들여다보거나 모닝커피에 넣을 두유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거나, 페이스북(Facebook)에 올린 고양이 사진을 몇 사람이나 좋아해 주었는지 보고 싶었다.

고속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군데군데 너부러진 동물 사체를 볼 때가 있다. 칠흑 같은 피 웅덩이 속의 털 뭉치를 보노라면 동물들의 죽음이 더욱 실감 나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완경은 속박된 인간의 조건과 죽음에 대한 감각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며, 내가 오랫동안 부인하려고 애써 왔던 내면의 깊은 두려움을 폭로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난소 안에 든 난자의 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낮아지면 완경 증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애당초 특정 시점에서 난자의 성숙이 갑자기 중단되고 호르몬 수치가 줄어드는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호르몬이 없어지면서 내 신체는 다시 변화를 겪는다. 넘쳐흐르는 에스트로겐 속에서 초경을 했던 예전 사춘기 때처럼 말이다. 여성의 월경 또는 정혈이 우리 문화권 내에서 여전히 다소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월경 중인 여성은 ‘성질이 나 있다’거나 급격한 호르몬 변동 탓에 ‘불안정한 상태’로 간주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임기는 여성의 일생 중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시기로 인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완경은 무가치하다고 폄하되며, 심지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여자의 일생에서 유년기, 사춘기, 혹은 성인기를 없애 버려야 한다고 제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완경만이 의료적 치료의 대상, 혹은 마땅히 정상화되어야 하는 문제, 완벽하게 폐기되어야 하는 시기로 생각된다.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의 원인은, 호르몬 요법 자체보다 저자들의 어조나 방향성에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깨닫게 되었다. 각각의 책은, 어느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개가 배를 까뒤집고 강하고 우월한 인간에게 급소까지 내보이는 상황을 각자의 관점으로 풀어낸 격이었다. 우리 문화가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순응적이고 나긋나긋하며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여성성의 다양한 변주에 홀딱 넘어간 채, 이 저자들은 육체성과 창의성의 가치가 오직 젊음을 통해서만 유효하게 판단되고 있음을 재고하려 하지 않는다. 또 우리 전 생애에 포함된 모든 변화의 단계 속 성장의 책임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함구되어 왔던 주제에 대해 침묵을 깨고 혁명적 진리를 제시하는 양 가장하지만, 실상 특정 기업의 관계자들에게 주된 이득을 돌리면서 여성의 생식 가능한 시기만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다른 무엇보다 ‘에스트로겐 대체 호르몬 산업’ 자체를 위한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들은 중학교 시절에 숱하게 마주치던 여자 동급생 같은 인상을 준다. 당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기 어색해함을 뻔히 알면서도, 당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기는커녕 화장법이나 머리를 손질하고, 살 빼는 방법 따위를 일러 주며, 여성성이라는 뻣뻣한 굴레로 들어오라고 부추기는 사람 말이다.

완경기의 육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잔혹해진다. 말라비틀어진 보지, 쭈그렁 할망구 같은 저열한 표현도 심심찮게 오간다. 윌슨이나 슈워츠처럼 호르몬 요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양 엄포를 놓는 의사들은 우리를 거세된 사람들, 중성화된 인류, 노상 변사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터넷은 완경기 증상들을 가장 악의적인 방식으로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축 처지는 피부, 시들어 쭈글쭈글해진 질 내벽, 낡아 빠진 난소들. 이 목록은 허물없이 친근하면서도 냉담하기 이를 데 없는 어조로 쓰여 있는데, 마치 점점 나이 들어 가는 생명체를 관찰하고 기록해 두는 과학자의 일지 같다. 이처럼 제기되는 증상들을 솔직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내게 일어나는 증상들을 감춰 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다. 나도 눈이 있으니까. 내가 봐도 몸에는 전에 없던 뱃살이 생겼고, 허벅지에 군살이 붙어서 무거워졌고, 음모에도 회색 가닥이 돋아나 있다. 입가에 잡히는 주름들은 더 깊어졌고, 완전히 피곤할 때만 생기던 눈두덩의 어두운 그늘도 항상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언제나 조금씩 피로에 지쳐 있고, 약간 거친 태도를 드러낸다. 나는 물론 진실을 원한다. 그러나 이처럼 부정적인 것들만 무한히 추가되어 가는 목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기운을 북돋워 주지도 못한다.

많은 여자들처럼, 나는 완경기 이전의 삶 대부분을 분노보다는 슬픔 속에서 보냈다. 나는 분노를 꾹 눌러 압축하면서, 내게는 그런 감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속으로 분노를 짓눌렀다. 자신을 쪼개고 또 쪼개서, 얇고 투명해서 속이 다 비치는 존재가 될 때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높은 곳에서 무심하게 세상만사를 내려다보는 초월적 존재인 양 상정하고, 개별적 자아가 없는 듯 행동하는 것과 비슷했다. 유령처럼, 무게감 없이 몽롱하게 부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 “여자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려면,” 심리 치료사 메리 밸런티스(Mary Valentis)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자는 모든 감정에 무감각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여성의 분노 표출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화내는 행동은 숙녀답지 않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는지, 분노가 얼마나 비여성적이며 심지어 여성을 비인간적 존재로 치부하게 하는지, 불평등한 관점을 강조한다. 분노하는 여자들은 대단히 위협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역사적으로 분노한 여자들은 악마에게 홀렸다는 비난을 받고 처형당했다. 화가 난 남자는 그냥 남자일 뿐이다. 반면 화가 난 여자는 낙인찍히고 편견 어린 관념으로 정형화된다. 강짜를 부리는 아내, 미치광이 전 여자 친구, 페미나치. 나는 분노의 감정을 스스로 두려워한 나머지, 표출 여부뿐 아니라 그런 감정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까지도 억지로 통제하려는 여성들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완경이, 바로 진정성에 대한 요구를 환기해 준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성생활부터 뒤흔들고 재정비하면서, 삶의 기만적인 부분들을 근절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나이 든 여자는,”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자신이 성적으로 물화되는 것이 중단되는 순간을 아주 잘 감지해 낸다. 자신의 육체에 더는 남자들을 위한 신선한 포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경험이 어떻게든 그를 에로틱한 사물이 아닌 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싸워 왔고, 사랑했고, 의지를 다졌고, 고통받았고, 즐거움을 발견했다. 여성이 쟁취하는 이러한 독립성은 남성과 그 사회에 어마어마하게 위협적이다.”

회의장에 모인 의사들은 이른바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무엇이 내게 최선임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들을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질에 장애가 있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그래서 즉각적인 약물 치료와 레이저 시술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화의 결정에 의해 생식 기간이 끝났고, 따라서 내 몸은 변화하고 있다.—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사실 자체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의료계는 내 몸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고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나는 허벅지의 늘어진 피부와, 손에 잡히는 뱃살과, 정맥이 울퉁불퉁하게 도드라진 발을 내려다봤다. 그들은 내가 나이 들어 가는 몸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노력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자기 신체에 대한 혐오감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했는지? “나는 하나의 몸이었다,” 록산 게이는 저서 『헝거(Hunger)』에서 이렇게 쓴다. “언제나 수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몸이었는데, 사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전적으로 인간적인 몸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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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타인키

1962년 미국 뉴욕주 오나이다에서 태어났다. 회고록 『부활절은 어디에나(Easter Everywhere)』와 『밀크(Milk)』, 『예수께서 구원하시니(Jesus Saves)』, 『수어사이드 블론드(Suicide Blonde)』 등 여러 소설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10여 가지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보그》, 《가디언》 등 유수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 헨리 호인스 학회(Henry Hoyns Fellow), 스테그너 학회(Stegner Fellow)의 연구원이자 미시시피 대학교 상주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바너드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등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현재 남편, 딸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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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옮김

성균관대학교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 시를 공부했다. 현재 전문 통역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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