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애나 캐번 | 옮김 박소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2월 3일 | ISBN 978-89-374-2757-2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400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가 선보인 슬립스트림 문학의 절정을
성취한 작가 애나 캐번의 최고 걸작

어슐러 르 귄, 커트 보니것, J. G. 밸러드, 차이나 미에빌을 사로잡은
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정전(正典)!

편집자 리뷰

악몽 같은 상상력
질주하는 몽환
파국의 로맨스

내가 살던 세상 대신에 이제 곧 얼음, 눈, 고요, 죽음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폭력도 전쟁도 피해자도 더는 없으며 얼어붙은 침묵, 생명의 부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류의 궁극적 성취는 자기 파괴뿐만 아니라, 나아가 모든 생명의 파멸이리라. 생동하던 세계가 죽음의 행성으로 변화하는 것 말이다. -본문에서

“캐번이 쓴 얼어붙어 가는 세계는 곧 침략이다. 얼음이 당신을 향해 다가오고, 당신을 포위하고, 당신을 침략하고, 당신을 그 속에 사로잡는다. 적도의 열대 지방으로 비행기를 타고 달아나도 안도감은 일시적일 뿐, 얼음이 결국 당신을 따라잡는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유일무이한 작품!” -도리스 레싱(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늘날 가장 신비한 작가 애나 캐번은 『아이스』를 통해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해 냈다. 캐번의 강렬한 작품 세계와 겨룰 수 있는 현대 작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J. G. 밸러드
“진실로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작가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애나 캐번을 선택하겠다.” -패티 스미스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작가.” -《가디언》
“애나 캐번은 예언자였다. 『아이스』의 비전, 이를테면 기후 변화와 전쟁 위기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뉴요커》

애나 캐번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작가이지만 현대 소설의 독특한 흐름을 이룬 ‘슬립스트림 문학(SF 작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정의에 따르자면 “독자들에게 낯선 관점에서 익숙한 광경이나 사물을 마주한 듯 ‘타자성’을 유발하는 작품”을 일컫는다.)’의 예언자이자 완성자이고, 실험적 기법과 독창적 시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물론 공연 예술, 음악과 미술 등 광범위한 영역에 현저한 영향을 끼친 우리 시대의 거장이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사망하기 일 년 전에 발표한 유작 『아이스』는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최고 걸작이자 현대 SF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결정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SF 문학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시작되었고, 애나 캐번의 『아이스』를 통해 또 다른 정점에 다다랐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스』를 그 무엇으로도 분류할 수 없다.” -브라이언 올디스(휴고상, 네뷸러상 수상자)

애나 캐번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을 비롯해 진 리스, 아나이스 닌, J. G. 밸러드,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어슐러 르 귄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에게 일제히 상찬받았을 뿐 아니라, 초현실적이고 서사 파괴적이며 대담하도록 실험적인 글쓰기를 통해 카프카, 보르헤스, 칼비노 등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선뵌 대문호에 비견되기도 했다. 또한 『아이스』는 ‘슬립스트림 문학’이라는 용어가 미처 문단에 자리 잡기도 전에, 전대미문의 기상천외한 글쓰기를 성취함으로써 훗날 J. G. 밸러드의 ‘지구 종말 시리즈( 『크리스털 세계』 등)’,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 등 페미니즘 SF, 우리에게도 익숙한 무라카미 하루키와 폴 오스터,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존 말코비치 되기」)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공명(共鳴)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아이스』를 필두로, 애나 캐번의 경이로운 작품들은 단지 예술적 창작물에 그치지 않고, 그의 불행과 고통, 절규로 가득한 삶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자살)와 어머니의 외면, 좌절당한 꿈과 강요된 혼인(어머니의 전 애인과 결혼해야만 했다.), 억압적인 결혼 생활, 지옥의 밑바닥처럼 아득한 우울과 치명적인 약물 중독은 애나 캐번의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본명으로 발표한 (보다 자전적인) 초기 작품들뿐 아니라, 대표작 『정신 병동에서』와 『아이스』에서도 이러한 어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굉장한 여행가(세계 일주를 할 정도였다.)이자 속도광(자동차 경주 애호가였다.), 심도 있는 정신 분석학 경험자(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 루트비히 빈스방거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로서 다채로운 모티브, 착란적 서사, 거침없이 내달리는 문장을 완성한 애나 캐번은 주제와 기법, 모든 면에서 삶을 예술로 승화해 냈다. 도리스 레싱의 찬사대로 “유일무이한 작품”인 『아이스』는 이제껏 그 누구도 가닿지 못한 기이하고 불길하며 불가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더불어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이 대두하기에 앞서 여성의 왜곡된 섹슈얼리티, 가정 폭력 문제, 가부장제의 성 착취 구조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으며, 기후 위기와 세계 대전의 출현을 경고함으로써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아니 더욱 절실한 문제의식과 비전(vision)을 고취했다.

이 세상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새하얀 무엇인가가 덤불 울타리 위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울타리 중간이 어슴푸레하게 비어 있는 곳을 지나쳤고, 그 틈새를 흘끗 들여다보았다. 한순간이었지만 내가 내쏘는 불빛은 마치 탐조등처럼 고정된 채 그 여자의 나신을 밝혔다. 아이처럼 가냘프고, 생기 없이 쌓인 눈의 희뿌연 색과 대비되는 환한 상앗빛 몸. 그 여자의 머리카락은 넓게 펼쳐진 유리처럼 밝게 빛났다. 그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여자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장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처럼 단단하고, 반짝이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그 장벽의 중심에 그 여자가 있었다. -본문에서

공포는 그 여자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였다. 타인의 진심 어린 친절을 그녀가 알았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 터다. 나무들은 고의적인 악의를 가지고 그 여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듯 보였다. 평생토록 그 여자는 스스로를 아무에게도 구원받지 못할 희생자로 여겨 왔는데, 이제 이 숲마저 사악한 힘으로 그녀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본문에서

그 여자에게 내재된 무언가가 틀림없이 부당한 폭력과 공포를 요구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 꿈을 망쳐 놓으면서 내가 감히 발을 내디딜 생각조차 못 했던 어두운 장소에까지 나를 데려갔던 것이다. 이제 우리 중 누가 피해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른다. -본문에서

그동안 무의미하게 방랑했음을 생각하니, 저 눈보라와 똑같은 광기의 열병이 내 안에서도 타올랐다. 광란의 춤을 추는 눈의 결정체는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그 여자의 이미지 또한 그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수은처럼 흘러내리는 은빛 머리카락도 순식간에 그 광란에 휩쓸려 갔다. 그 환상적인 춤의 섬망 속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자와 폭력의 희생자를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무용수가 공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빙빙 도는 죽음의 무도에서 두 존재의 구별은 실상 무의미했다. -본문에서

『아이스』는 돌연 시작한다.(“나는 길을 잃었다.”) 시대와 장소, 심지어 등장인물의 성별과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로 불길한 추위 속에서 첫 장면이 펼쳐진다.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정체 불명의 화자인 ‘나’는 군인이거나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 혹은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긴 해외 생활을 마친 뒤, 때아닌 추위가 엄습해 오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굳이 이곳까지 찾아온 까닭은 단지 임무나 연구를 마쳤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다. 그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고, 지독한 강박에 시달리게 하는 한 가지 이유, 바로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당도했다. 그 여자를 언제 만났던가? 이야기는 느닷없이 매서운 얼음에 서서히 잠식당해 가는 달빛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그 여자의 모습을 그려 내며, 더 먼 과거로, 마치 점프컷을 하듯 거침없이 뛰어 들어간다. 그 여자에게는 한 남자가, 교도소장이기도 하고 독재자이기도 하며 그 여자의 목숨을 멋대로 쥐고 흔드는 악령이기도 한 남자가 있다. 주인공은 그들 부부를 만났고, 그들의 기형적인 관계를 목격했으며, 그리고 그 여자에게 사정없이 빠져들었다. 공회전하는 세 사람의 대화는 또다시 단절되고, 무시무시한 얼음의 습격이 이어진다. 화자는 사나운 칼바람을 뚫고, 얼어붙은 바다를 가로지르고, 온갖 역경과 고초를 불사하며 오로지 그 여자를 추적한다. 하지만 여자는 악독한 용에게 사로잡힌 중세의 고귀한 여왕처럼, 남편과 그의 부하들에게 완전히 감금당한 채 우물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여자를 만날 수 없고, 교도소장 혹은 적대적인 남편의 폭력과 권위에서 결코 놓여나지 못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혼란, 무절제한 환각처럼 주인공의 추격은 자꾸만 뒤엉켜 가고, 그사이 전 지구적 전쟁과 파멸적인 얼음의 침식이 숨통을 조여 온다. 여자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 산산이 부서진 기억의 편린, 얽히고설킨 부조리한 현실 탓에 급기야 주인공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차차 자아를 잃어 가고, 심지어 여성의 남편, 즉 교도소장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추위와 시퍼런 얼음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끊임없이, 그리고 무심하게 파괴해 나간다. 이 불가피하고 절대적인 절멸의 순간 앞에서 세 사람은 계속 운명의 주사위 놀이를 이어 갈 따름이다······.

목차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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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애나 캐번

애나 캐번은 1901년 프랑스 칸에서 부유한 영국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고, 본명은 헬렌 우즈(Helen Woods)다.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아이를 얻은 어머니는 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고, 게다가 열 살 때 아버지가 자살하면서 캐번은 더욱 고립된다. 그 뒤 기숙 학교에서 외롭게 성장한 캐번은 옥스퍼드에 진학하기를 바랐으나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 연인이었던 도널드 퍼거슨과 결혼하기를 강요한다. 결국 캐번은 열두 살 연상의 퍼거슨과 결혼한 뒤 철도 기술자인 그를 따라 버마(미얀마)로 이주했고, 거기서 아들 브라이언을 낳는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집필한 소설 『나를 내버려 둬(Let Me Alone)』(1930)와 『여전히 낯선 사람(A Stranger Still)』(1935)은 당시 본명이었던 헬렌 퍼거슨(Helen Ferguson)으로 출간되었고, 캐번의 낯설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 년 만에 남편을 등지고 아들과 함께 유럽으로 돌아온 캐번은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화가 스튜어트 에드먼즈를 만나서 새로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에드먼즈와의 사이에서 딸 머거릿을 얻지만 태어나자마자 죽고, 두 사람의 관계도 차츰 휘청이다가 1938년 이혼에 이르고 만다. 이때부터 캐번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헤로인을 투약하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면서 끝내 스위스의 정신 요양원을 드나들게 된다. 하지만 캐번은 작가로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맞서기로 다짐한다. 그러면서 ‘헬렌 퍼거슨’으로 발표했던 소설 속 등장인물인 ‘애나 캐번’으로 개명하고,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찬란한 금빛으로 염색한다. 홀로 전 세계를 여행하던 캐번은 2차 세계 대전 무렵 영국으로 귀국해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면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편집 업무를 맡기도 한다. 1944년 아들 브라이언이 전사하면서 큰 충격을 받지만 정신과 치료(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인 루트비히 빈스방거에게 직접 진료받기도 한다.)와 작품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 간다. 『정신 병동에서(Asylum Piece)』(1940)를 필두로 『나는 라자루스(I Am Lazarus)』(1945), 『말의 이야기(The Horse’s Tale)』(1949), 『당신은 누구?(Who Are You?)』(1963) 등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비평계와 동시대 작가들의 주목을 받지만 대중적으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당대에 캐번은 주나 반스,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에 비견되었으며 작가 아나이스 닌, J. G. 밸러드 등 수많은 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1968년 캐번은 켄싱턴의 자택에서 심장 부전으로 사망하지만 그가 별세하기 한 해 전에 발표한 유작 『아이스(Ice)』(1967)는 비로소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사후 캐번은 앤절라 카터, 폴 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선보인 슬립스트림 문학의 선구자이자 꿈과 약물 중독, 환각, 실존적 불안과 소외를 구현하는 ‘야행성 언어(nocturnal language)’의 창시자로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며 매우 중요히 평가받고 있다.

박소현 옮김

성균관대학교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 시를 공부했다. 현재 전문 통역사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 나오미 앨더만의 『불복종』, 익명인의 『산소 도둑의 일기』, 조지프 버고의 『수치심』, 하닙 압두라킵의 『재즈가 된 힙합』, 캐서린 맨스필드의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다시 스타인키의 『완경 일기』,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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