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뛰어넘어 눈물겨운 인정과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중국판 ‘천일야화’!

유세명언1

원제 喩世明言

풍몽룡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12월 28일 | ISBN 978-89-374-2032-0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9x209 · 496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명나라 시대, 고전소설의 가치를 최초로 드높인 중국 소설의 아버지, 풍몽룡

국내 최초 완역된 일생일대의 작품 <유세명언>

편집자 리뷰

‘남송 때 고종 황제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태상황의 지위를 누리며 남은 생애를 보냈는데, 한가할 때마다 이야기책을 즐겨 읽었다. 환관에게 명하여 하루에 한 권씩 책을 바치게 하고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값을 후히 쳐서 보답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환관들은 기이한 행적을 담은 옛날이야기나 시중에 떠도는 신기한 이야기를 널리 찾아다녔다.’
_‘푸른 하늘 서재 주인의 서문’에서

고대의 문장을 기록한 고문(古文)만 존재하던 시절, 중국의 문학은 오로지 왕후장상과 배운 자, 가진 자를 위한 것이었다. 당나라에 이르러 입말로만 존재하던 백화(白話)가 글로 기록되기 시작하고, 이것이 정착하면서 중국에는 대중 소설과 희곡 문학이 꽃피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장편소설 사대기서 중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가 모두 백화로 창작되었고, 명나라에 이르면 백화로 출간된 소설이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천하게 여겨지던 ‘시정잡배’의 이야기, 단편소설의 위치를 제왕의 자리로 승격시킨 소설의 아버지 풍몽룡. 민음사에서 국내 최초로 완역된 풍몽룡의 대표작 <유세명언>은 그가 듣고, 적고, 편찬한 찬란한 중국 옛이야기이자 단편소설의 본질적 매력을 전한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갈망을 충족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과 사랑을 선사하다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됐어?” 어린 시절,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 끝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또 들려달라고 조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특히 이야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각별했는데, 고대로부터 중국에는 찻집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 이야기꾼들이 있었고, 이를 무대에서 상연했으며, 그 이야기를 수집하여 듣거나 읽는 세력가 독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남긴 자취 덕분에 중국의 옛이야기들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어느 시기에 문자로 정착되어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이렇게 고대인과 우리가 똑같이 가슴 두근거리며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장편이 아닌 ‘단편’이었다. 그 내용은 대개 사랑이나 우정, 신비한 경험, 괴담 등 장르도 다양하다. 출판 시장이 흥하면서 <삼국지연의> <서유기> 등의 고전 장편소설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런 단편 이야기들이 먼저 존재했지만, 그것이 본격 출판을 통해 ‘단편소설집’이라는 어엿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명나라 무렵이다. 그전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한가할 때의 소일거리, 시정잡배들의 천한 이야기 취급을 당했는데, 풍몽룡은 이 같은 옛이야기, 혹은 단편소설이 지닌 근원적 매력과 힘을 처음으로 중국 문학사에 인지시킨 작가이자 선구자이다.

 
중국 고전 이야기문학을 대표하는 ‘삼언(三言)’
그 중 첫 권인 <유세명언>을 최초로 만나다

중국 고전 문학에서 단편소설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삼언’은 단편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이야기를 풍몽룡이 완결된 형식의 소설집으로 엮은 <유세명언>(1621), <경세통언(警世通言)>(1624), <성세항언(醒世恒言)>(1627) 세 권을 가리킨다. 명나라 백화 단편소설의 두 기둥이 있으니, 하나는 풍몽룡의 ‘삼언’이고, 나머지 하나는 능몽초(凌濛草)의 소설집인 ‘이박(二拍)’이며, 이 둘을 가리켜 중국인들은 예부터 ‘삼언이박(三言二拍)’ 또는 ‘삼언양박’이라고 불러왔다.
엄밀히 말해 삼언이박의 저자들은 오리지널 창작자라기보다는 편찬자, 편집자에 가깝다. 하지만 서양 고전 음악가들이 예로부터 전해오던 음악적 모티프를 각자 해석하여 재탄생시켰듯이, 세간을 떠돌며 잊힐 운명이었던 옛이야기에 적절한 완결성과 구조, 더불어 문학적 가치가 높은 문장을 더한 풍몽룡과 능몽초의 역할은 편찬자 그 이상이다.

세 작품집의 제목이 모두 ‘언’자로 끝나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인 ‘삼언’의 <유세명언>, <경세통언>, <성세항언>은 각각 40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체 이야기는 총 120편이다. 그중 첫 권인 <유세명언>은 1621년에 중국 출판사인 천허재(天許齋)에서 최초로 출간되었고, 이 때의 원 제목이 <고금소설유세명언>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금소설’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언은 중국에서만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전해졌는데, 실제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1621년 초판본은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된 것으로, 이것이 지금 현대에 이르러 유통되고 있는 판본의 시초이다. 또한 삼언 중 한 단편은 1735년에 최초로 선교사에 의해 서양에 번역되었고, 이후 꾸준히 확장되어 프랑스어와 영어로 일부 번역되어 오다가 현재는 영미권에 120편 전권이 완역된 상태다.
중국 고전 단편소설집의 제왕으로 꼽히는 삼언 중 처음으로 국내에 완역 출간되는 <유세명언>은 이처럼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동서양의 고전 문학 연구자들과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었고, 이제야 한국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됨은 다소 늦은 바 없지 않다.

 
기나긴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전해진
우정과 사랑, 인연과 인과응보의 신비로운 이야기

<유세명언> 1~3권에 수록된 40편의 이야기는 각각 테마별로 한 쌍씩 묶인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인과 부부의 운명을 다룬 흡사한 이야기가 두 편, 지기와의 생사를 넘어선 우정을 그린 작품이 두 편. 이렇게 이야기가 구성 및 배치되어 하나의 테마를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작가 풍몽룡이 직접 취한 구성으로, 그는 옛이야기를 단순히 옮겨 적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묘를 살리는 편집자 역할까지 수행한 셈이다. 1권에 이어 향후 출간될 2,3권까지 민음사가 펴내는 <유세명언>은 이 구성을 그대로 살려 원전 그대로 배치했고, 1권에 총 14편, 2권에 14편, 3권에 12편이 수록돼 있다.

이야기의 테마도 다양하다. 불륜와 화해, 욕망과 그것이 빚은 결말, 속이는 자와 속는 자, 귀인을 만난 풍운아, 풍류와 지조의 갈림길 등 예로부터 동아시아인의 의식을 형성해 온 원형적 이야기들이 유교 불교 도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빚어져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눈으로 옛이야기의 매력을 접하게 한다.

속임수로 정혼자를 잃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한 현명한 어사 이야기(「진 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꼼꼼하게 조사하다」,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만난 연인들의 운명적 결말(「완삼이 한운암에서 전생의 사랑 빚을 갚다」), 자신을 알아 준 사람을 위해 십 년의 세월을 희생한 남자(「오보안이 가정을 희생하여 친구를 살리다」), 유산상속을 둘러싼 그림 한 점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관리(「등대윤이 유산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해주다」), 장원급제를 하고도 황제와 입씨름을 하여 낙방했던 수재가 다시 황제의 은총을 되찾는 이야기(「조백승이 찻집에서 인종을 만나다」) 등 기나긴 세월을 뛰어넘고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우정과 사랑, 인연과 인과응보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안적 삶의 버팀목, ‘이야기’

우리는 풍몽룡의 이중적 자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솔직한 방랑자 풍몽룡과 학자이자 지식인으로 과거를 준비하고 명왕조의 끝자락을 끝내 놓지 않았던 정통 문인으로서의 풍몽룡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 그는 한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나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지녔던 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열망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안적 삶을 하나쯤 마련하지 않고서는 이 힘든 세상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였던 사람이다. 이런 인생관 덕분에 그의 자아는 분열되지 않을 수 있었다. _김진곤(옮긴이)

저자인 풍몽룡은 유복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문재를 날렸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과거에 전력을 다할 경제적 기반을 잃었다. 그는 다른 과거 지망생을 가르치고, 수험서를 집필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과거시험도 준비하는 1인 다역의 고단한 삶을 살면서 이야기를 썼다. 위의 인용문처럼 그는 학자이자 지식인, 관료의 세계에 속하고자 했지만, 현대의 입시제도보다 훨씬 좁은 과거 제도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뜻을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알았으리라. 쉰 살이 한참 넘어서 지방 관현에 자리를 얻기까지 삶의 강퍅함을 견디기 위해 그가 눈 돌린 곳이 바로 문학이었고, 그것은 그의 대안적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인인 우리에게도 이 같은 삶의 고단함은 다르지 않다. 아직도 옛이야기가 우리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본문에서

 
남송 때 고종 황제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태상황의 지위를 누리며 남은 생애를 보냈는데 한가할 때마다 이야기책을 즐겨 읽었다. 환관에게 명하여 하루에 한 권씩 책을 바치게 하고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값을 후히 쳐서 보답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환관들은 기이한 행적을 담은 옛날이야기나 시중에 떠도는 신기한 이야기를 널리 찾아다녔다.(「푸른 하늘 서재 주인의 서문」, 8쪽)

아랫사람들에게 소임을 맡긴 장흥가가 아내 삼교아에게 말했다.
“여보, 조금만 참고 지내시구려. 동네에 불량한 자들이 많다고 하더군. 당신 미모가 출중하니 괜히 바깥출입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마시오.”
“서방님,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서 돌아오세요.”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다. (「장흥가가 진주 적삼을 다시 찾다」, 21쪽)

“지금 네 아버지가 노씨 댁을 찾아가서 어서 혼례를 올리자고 할 것이다. 혹여 혼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된다면 파혼을 할 것이라 하니 너는 가만히 지켜보기나 해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만약 그 댁이 혼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된다면 차라리 평생 수절을 할지언정, 저는 결코 다른 혼처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전옥련은 강물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킴으로써 만고에 그 이름을 드날렸습니다. 아버님이 이렇게 몰아가신다면 저는 목숨을 버리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진 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꼼꼼하게 조사하다」, 93쪽)

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그 승려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오산이 애처롭게 소리를 질렀다.
“스님, 저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렇게 저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겁니까?”
“소승은 색계를 범하여 저세상으로 떠난 뒤 구천을 맴돌면서 귀신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나리가 백주대낮에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일시에 또 마음이 동하여 나리를 제 귀신 세계의 동반자로 삼고자 했습니다.”(「새다리장터에서 한오가 춘정을 팔다」, 171쪽)

“어디 손을 내밀어 봐. 맥이라도 한번 짚어 보세.”
완삼은 체념한 듯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완삼이 내미는 손을 잡고 진맥하려던 장원의 눈에 금가락지 하나가 들어왔다.
‘어허, 환자가 금가락지를 끼고 있다니. 더구나 이 가락지는 여자 건데. 아마도 완삼이 아픈 것이 이 금가락지하고도 관련이 있으렷다.’(「완삼이 한운암에서 전생의 사랑 빚을 갚다」, 185쪽)

목차

푸른 하늘 서재 주인의 서문 7

장흥가가 진주 적삼을 다시 찾다 11

진 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꼼꼼하게 조사하다 81

새다리장터에서 한오가 춘정을 팔다 137

완삼이 한운암에서 전생의 사랑 빚을 갚다 175

가난뱅이 마주가 떡 파는 여인을 만나다 207

갈령공이 농주아를 억지로 돌려보내다 229

양각애가 목숨을 바쳐 우정을 지키다 251

오보안이 가정을 희생하여 친구를 살리다 271

배 진공이 여인을 원래 짝에게 돌려보내다 303

등대윤이 유산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해주다 329

조백승이 찻집에서 인종을 만나다 375

봄바람 불 제 이름난 기생들이 유칠을 애도하다 403

장도릉이 조승을 일곱 번 시험하다 433

진희이가 조정의 부름을 네 차례 거절하다 469

작가 소개

풍몽룡

풍몽룡

1574년에 태어나 1646년에 세상을 떠난 명나라 때 문인이자 관리. 자는 유룡(猶龍), 호는 용자유(龍子猶), 고곡산인(顧曲散人) 등이다. 강소성 소주(蘇州)의 지주 가문 출신으로, 형 몽계(夢桂), 아우 몽웅(夢熊)과 더불어 삼형제가 문학적 재주를 뽐내 근동에 이름을 날렸다. 청년기에 가세가 기울어 궁핍해졌고 스물한 살에 생원이 되었으나 과거를 볼 경제적 여력이 없어 호구지책으로 다른 과거 지망생을 가르치거나 수험서를 쓰면서 중년까지 생활을 이어갔다.
1618년부터 향시를 치르러 강소성 남경(南京)을 찾아 시험 교사, 출판인, 문학가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각 40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이른바 대표작 ‘삼언(三言)’인 <유세명언>, <경세통언(警世通言)>(1624), <성세항언(醒世恒言)>(1627)을 출간했다.
나이 쉰여덟 살에 말단 관직을 얻은 후, 1646년 숨을 거둘 때까지 팔 년 동안 명왕조의 몰락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남은 인생을 명 왕조의 재건을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그것을 기록하는 데 바쳤고, 명나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644년에 명나라의 몰락을 담은 <중흥실록中興實錄>을 편찬한 뒤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다.
명나라 때까지 중국 문단은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중히 여기지 않았다. 풍몽룡이 설화, 민요 등에서 모으고 편찬한 소설 ‘삼언’과 <평요전(平妖傳)>, <열국지(列國志)> 등이 읽히며 비로소 오늘날에 이르는 중국 고전소설과 희곡의 문학적 가치가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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