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시험에서 1등을 해도 9천 위안을 내야 다닐 수 있어
사람들은 이곳을 ‘9천 반’이라 불렀다.”
살인적인 경쟁률의 ‘가오카오’를 향해 달리는
중국 명문 학교의 아이들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커다란 대자보가 발견되고
학교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시험’을 둘러싼 어른들의 비밀
그리고 우리가 목격한 모든 것
중국 현대 작가 솽쉐타오의 소설집 『9천 반의 아이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솽쉐타오는 2012년 전업 작가로 변신한 그해 ‘타이베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불과 5년 만인 2017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모옌과 함께 ‘왕쩡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 문단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신예 작가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9천 반의 아이들』과 ‘백화 문학상’ 수상작 『평원의 모세』를 포함해 열 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십 대부터 이십 대의 화자가 등장하는 각 이야기는 90년대 국영 기업의 몰락과 경기 침체, 입시 경쟁, 세대 간의 갈등 등 중국의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청년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소외와 낙오의 문제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특히 ‘중국판 SKY캐슬’이라고 불리는 『9천 반의 아이들』은 명문 학교에서 내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정과 폭로, 이로 인해 달라진 두 친구의 운명을 그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이끌어 낸다.
∎ 경쟁 사회의 축소판, 시험에 울고 웃는 청춘의 초상
“이미 내 핏속에는 성적도 안 좋고 내성적인 학생이 매일 견뎌야 하는 모욕과 충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수치심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면역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칠판이 안 보인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보인다 해도 안 보이는 거나 매한가지였다.” ―『9천 반의 아이들』
여기 한 학교가 있다.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해도 9천 위안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야 들어올 수 있어 사람들은 이곳을 ‘9천 반’이라고 부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은 다시 갑, 을, 병, 정 네 반으로 나뉘고, 성적에 따라 ‘학교 안의 학교’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정(丁) 반의 맨 뒷자리, 문제아로 낙인찍힌 ‘나’와 안더례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채 공부와 담을 쌓는다. 부모님이 여기저기 긁어모은 9천 위안으로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 역시 한 집안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점점 도태되자 하루 종일 축구를 하거나 이성을 향한 감정을 키우며 불안감을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한 학생에게 해외 연수 특전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남몰래 희망을 품는다.
∎ 공정, 탁월함, 유머 청년 세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들
“뭘로 때렸는데?”
“걔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로. 걔가 반칙을 했어.”
“반칙?”
“난 그 앨 볼 수 없었고, 그 앤 날 볼 수 있었어. 가림막 두 겹 사이로 걔는 날 볼 수 있었다고. 처음에는 내가 운이 안 좋은 줄 알았어. 게임에서도 난 운이 안 좋구나, 싶었어. 그러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그런 소프트웨어가 있더라고. 몇 위안이면 살 수 있었어.” ―『기습』
학교에서 벌어진 내신 부정을 목격하고 피해자를 위해 대자보를 쓰는 소년(『9천 반의 아이들』), 온라인 게임에서 반칙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유저를 오프라인 현실에서 응징하는 대학생(『기습』)의 모습은 요즘 청년 세대가 얼마나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 준다.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공정한 경쟁을 무너뜨리는 반칙 행위에 대해 즉각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회적인 감수성은 청년 세대를 설명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또한 소설 속에는 한 우물만 파는 ‘덕력’으로 탁월한 경지에 이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시험 도중 새로운 증명을 시도하는 수학 괴짜 안더례와 (『9천 반의 아이들』), 평생 장기만 두다 폐인이 되었지만 절대 내기 장기는 두지 않았던 아버지가(『대사』) 그 예다. 하지만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그들의 노력은 생산성 없는 잔재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과 유머로 무장한 채 현실을 돌파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니고서는 희망을 품을 수 없는 현실을 보여 주듯 국경을 뛰어넘어 ‘웃픈’ 동질감을 형성한다.
■ 그럼에도 ‘무언가가 되는 중인’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서로 상대를 설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 우리는 여전히 함께 축구를 했고, 식당에 가서 맥주 몇 병을 마셨으며, 그는 그의 신념을, 나는 내 생활을 이야기했다. 마치 또 다른 나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9천 반의 아이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십년지기 친구인 ‘안더례’를 다시 만난다. 학창시절 ‘나’와 안더례는 자타 공인 문제아였지만, 그는 ‘나’에 대해 호감과 신뢰를 보여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다시 한번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한 것도, ‘나’의 성적을 듣고 펄쩍 뛰어올라 소리를 지른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을 사건이 벌어졌고 그곳엔 교장, 담임,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있었다.
이 소설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그러나 결코 냉혹하지만은 않은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무조건적인 호혜와 믿음이 바탕이 되었던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직업과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 어른이 되었을 때조차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시의 문턱에서 서로의 손을 영영 놓쳐 버린 것은 아닐까 문득 서늘해지곤 한다.
■ 차례
9천 반의 아이들 7
평원의 모세 64
대사(大师) 153
절뚝발이 184
긴 잠 203
건달 235
기습 262
큰길 284
그라드를 나오다 301
자유 낙하 324
작가의 말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