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 바로크

박슬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11월 3일 | ISBN 978-89-374-1227-1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96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누보 바로크: 우리 시대 시 쓰기에 대한 새롭고 끈질긴 호명

구원의 가능성을 잃어버린 시대,
구원을 거부하며 쓰인 한국 시를 위하여

편집자 리뷰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박슬기의 첫 번째 평론집 『누보 바로크』가 ‘민음의 비평’ 시리즈의 여섯 번째 도서로 출간되었다. ‘민음의 비평’은 한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당대 문학을 비평하는 테마 비평집 시리즈다.

등단 이래 박슬기는 현장과 연구를 오가는 비평 작업을 통해 시와 철학, 시와 정치의 목적과 가능성에 대해 물어 왔다. 첫 번째 평론집 『누보 바로크』에서 그는 우리 시의 시대를 ‘바로크적’이라고 정의하고, 우리 시대의 시에 드러난 우울과 알레고리, 파국에 대한 사유를 읽어 낸다.

 

■누보 바로크, ‘거부의 양식’으로 시 쓰기

평론집을 관통하는 박슬기의 테마는 ‘바로크 비애극’에서 출발한다. 이전 시대의 비극과 달리 바로크 비애극은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종말에 대한 사유을 담고 있으며, 박슬기는 2000년대 이후의 시에서 이와 유사하게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바로크 비애극이 구원을 거부했듯 우리 시대의 시 역시 손쉬운 화해나 미적 완성을 거부하는 태도로써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의 바로크가 전쟁과 같은 명시적인 파국을 맞이한 시대에서 탄생했던 반면, 우리 시대의 바로크는 파국 이후 끝없이 이어지는 무기력과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탄생한다. ‘누보 바로크’라는 새로운 명명은 이처럼 닮고도 다른 시대를 겹쳐 놓는 박슬기의 비평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박슬기에게 시인이란 무너진 시대의 잔해를 뒤로 하고 황황히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잔해더미를 바라보는 이들이다.

시인들이 폭력으로 깨져 버린 땅에서 시를 써내면, 박슬기는 시가 쓰인 지점으로 돌아가 골똘히 그 자리를 들여다본다. 구원에 대한 기대 없이 고통의 경험을 담고 있는 시에서 희미한 빛을 찾는 일. 그것이 평론가 박슬기가 하려는 비평 작업이다. 그는 우울하고 병적인, 언뜻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시들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읽어 낸다. 시인들이 짊어지게 된 새로운 고통의 경험. 그것이 우리 시대의 시 쓰기이자 새로운 시 쓰기, ‘누보 바로크’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진보한 세계가 결국에는 전면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을 때,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바로크 시대를 보았던 것이다. 바로크 비애극은 독일의 30년 전쟁이 야기한 기나긴 폐허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현재의 삶이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애극이 비극의 숭고함에 이르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구원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대전이라는 그리고 그 이후의 파국으로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끝났다. 시대는 파시즘으로 이행하고 있었다. 진보의 역사는 다만 잔해에 잔해를 거듭 쌓아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였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구원을 찾았을 것인가.

그러므로 바로크는 근대의 원천이자, 근대 그 자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원천이자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유일한 거부의 양식이다. 벤야민의 시대에 예술이 그러했듯, 우리 시대의 시는 바로크적이다. 나는 우울, 알레고리, 파국에 대한 사유 같은 것들을 우리 시대의 시들에서 발견했다. 손쉬운 화해를 거부하고, 미적인 혹은 상징적 완성을 거부하는 것. 우리의 시는 표현주의 예술만큼이나 바로크 비애극과 닮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나 테크닉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인식의 차원에서 그렇다.

-5~6쪽에서

 

그는 “만일 어떤 구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적인 구원 계획이 완수된다는 데에 존재하기보다는 오히려 바로 이 암담한 운명 자체의 심층에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폐허와 잔해에 집중하는 것, 그것들에 대한 깊은 천착을 통해 이 세계를 죽음의 운명에서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벤야민은 ‘인간에게 불충성하고 피조물의 운명에 충성’하는 ‘궁신’의 형상에서, 그리고 사물을 맥락에서 떼어 내어 재배치하는 수집가의 형상에서 이러한 우울가의 형상을 본다. 그들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오직 흔적으로만 남은 것들, ‘죽은 사물들’에 천착한다.

우울한 자의 시선의 끝에는 폐허가 있다. 거기에는 이미 죽어서 사라진 세계가 있고, 그 흔적만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적 존재이자 피조물로서의 자신이기도 하다. 이 흔적을 구원하려는 절망적인 노력, 그것은 곧 모든 죽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 우울가의 시선의 끝에서 “그 침잠의 밑바닥으로부터 희미하게 되비쳐 오는 어

떤 먼 빛의 반조”의 인도로 인해 세계는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100~101쪽에서

목차

■차례

 

책머리에

[프롤로그] 시, 불가능한 말들의 자오선 ─ 시 쓰기의 사명

보론 1: 익명성에의 헌신과 시 쓰기의 운명 ─ 서동욱론

보론 2: 시 쓰기의 기원, 텅 빈 중심으로의 귀환 ─ 김언 『모두가 움직인다』

 

1부 새로운 코기토

 

‘바깥’과의 조우, 위험하고 사랑스러운 ─ 몰락하는 얼굴들의 존재 형식

서정의 제3 전선 ─ 전환사 코기토의 탄생

새로운 화자(話者)의 탄생 ─ 혀에서 손으로 ─ 박성준 『몰아 쓴 일기』

보론 1: 김혜순이라는 거울, 살아 있는 언어들의 핼러윈 ─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보론 2: 고독한 존재의 밤, 빛나는 폴라리스 ─ 하재연 「폴라리스」

보론 3: 영시(zero hour)의 카프카 ─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2부 상실과 우울

 

우울한 그대, 사랑하는 자 ─ 멜랑콜릭 알레고리

병적인 웃음, 미친 시들의 멜랑콜리

덤핑 그라운드 로맨티시즘

보론 1: 말이 잃어버린 음악과 시 ─ 숨결과 모음에 대한 단상

보론 2: 밤의 몽상과 노래 ─ 권민경 「또, 내일」

보론 3: 우울한 소녀의 키스 ─ 유계영 『온갖 것들의 낮』

 

3부 알레고리, 말들의 고백

 

우울한 언어의 연금술사들 ─ 현란한 감각의 윤리를 위하여

장광설과 침묵, 시인의 존재론 ─ 김언 『소설을 쓰자』, 신해욱 『생물성』

보론 1: 밤의 분명한 악몽, 모그 y 씨의 뒤집기 놀이 ─ 진수미 『밤의 분명한 사실들』

보론 2: 잃어버린 단어들의 여행지, 아프리카 ─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4부 지금 가능한 정치 시

 

폴리에틱스, 잉여들의 시 ─ 정치 혹은

들끓는 마음의 윤리 ─ 총력전 시대의 정치 시

말하지 ‘않는’ 말들의 공동체 ─ 다시, 시의 정치성에 부쳐

보론 1: 혁명적 센티멘털리즘의 언어들 ─ 박정대 『삶이라는 직업』

보론 2: 오함마를 든 천사, 최종 병기 시인 ─ 조인호 『방독면』

 

5부 사랑의 방식들

 

연애시의 두 형식, 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

묵시록적 포르노그래피 ─ 인간의 멸망과 짐승의 탄생 신화

춤추는 클리나멘, 무연함의 공동체

보론 1: 사랑, 젖은 말〔言〕들의 별자리 ─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에필로그] 불가능함으로써만 가능한 소통 ─ 고독한 언어와 시적 경

험의 공동체

보론: 귀신의 성서, 죽은 신의 시 쓰기 ─ 조연호 『암흑향』

작가 소개

박슬기

1978년 거제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율의 이념』이 있다. 현재 한림대학교 인문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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