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12월 9일
ISBN: 978-89-374-2909-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144쪽
가격: 8,800원
시리즈: 쏜살문고
“그렇다면……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나쓰메 소세키
일본 근대의 명암을 가장 먼저 간파했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
새로운 시대에 맞서 치열하게 고뇌했던 한 영혼의 내면 풍경
유리문 안에서
입사의 말
작가의 생활
이상한 소리
옮긴이의 말
나의 명상은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붓을 들어 쓰려고 하면 쓸거리는 무진장 있는 것 같고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머뭇거리다 보면 더 이상 무얼 쓰건 시시하다는 태평스러운 생각도 일었다. 잠시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이번엔 지금껏 써 온 것들이 전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어째서 그런 걸 썼을까, 하는 모순이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내 신경은 차분했다. 이 조롱 위에 올라타고 두둥실 높다란 명상의 영토로 올라가는 것이 내겐 무척 유쾌했다. 자신의 멍청한 기질을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어 주고 싶어진 나는, 스스로 자신을 경멸하는 기분에 흔들린 채 요람에서 잠든 아기에 불과했다. —『유리문 안에서』에서
『유리문 안에서』에 나오는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라는 한마디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우리에게 전하고 했던 모든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강상중
나쓰메 소세키만큼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다양성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새로운 시대의 불안과 우울을 몸소 감당해야 했던 한 영혼의 내면 풍경
나는 이 글이, 바쁜 사람들 눈에 얼마나 시시하게 비칠까 염려스럽다. 나는 전차 안에서 주머니의 신문을 꺼내 큼직한 활자에만 눈길을 쏟는 구독자 앞에, 내가 쓴 한가로운 문장을 늘어놓아 지면을 채워 보여 주는 걸 부끄러운 일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대개 사람들은 화재나 도둑, 살인 같은 그날그날의 모든 사건 가운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 혹은 자신의 신경을 상당히 자극할 수 있는 신랄한 기사 외에는 신문을 손에 쥐어야 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까.—『유리문 안에서』에서
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점이자 ‘국민 작가’,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 에세이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이 ‘작가 서거 100주기(1916년 12월 9일)’를 기념하며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전근대적 체제가 무너지며 격변하던 메이지 시대와 일본이 열강으로서 자리를 잡아 가던 다이쇼 시대에 걸쳐 활동했던 나쓰메 소세키는,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처럼 “전 세계를 막론하고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보여 준 작가”였다.
1867년, 나쓰메 소세키는 조부의 낭비벽 탓에 기울어 가던 집안에서 여덟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부친의 친구에게 양자로 보내졌으나 여러 어수선한 사정 때문에 친부모와 양부모 슬하를 오가며 산란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문재(文才)를 발휘한 나쓰메 소세키는 마침내 도쿄 제국 대학에 입학하였고, 스승과 주변 사람에게도 큰 기대를 받는다. 하지만 이때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일본과 서구, 전통과 근대 등의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한 나쓰메는 점차 염세주의에 빠지며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인다. 그 후 가족들이 잇따라 사망하고, 영국 유학을 다녀오며 얻은 충격(일본은 서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는 자각과 인종 차별적 경험 등)으로 “나쓰메 소세키가 미쳤다.”라는 소문이 나돌 만큼 그는 피폐해지고 만다. 귀국하고 나서 차츰 정신을 수습한 나쓰메 소세키는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한다. 당시 유행하던 자연주의 문학과 큰 대조를 보인 이 작품으로 평단과 대중한테 호평을 받은 그는 계속 새로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인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결국 교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 나와, 아사히 신문사의 전업 작가로 취직한 나쓰메는 끊임없이 주제와 문체를 실험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신경 쇠약과 위궤양, 당뇨병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끝내 유작이 된 장편 소설 『명암』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한다.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의 표제작 『유리문 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가 전업 작가로서 생활하며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서른아홉 편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특별한 주제 없이 작가의 삶과 내면 풍경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 낸 이 작품에는 좀처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데에 늘 주저해 왔던 작가의 ‘진심’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근대적 자아’와 ‘전근대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근대화가 불러들인 ‘타자’의 존재, 서구 열강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가 불러일으킨 참상과 그에 따른 파국을 누구보다 명확히 꿰뚫어 봤던 나쓰메 소세키는 불안과 우울, 신경 쇠약에 시달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는 세인들에게 ‘여유파(삶을 관조하며 여유를 즐기는 태도)’라고 불릴 정도로, 세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판단하는 데에 항상 조심했다. 심지어 자기 인생을 직시하는 일도, 세속적 성공을 희구하거나 삶에 집착하는 일도 멀리해 왔다. 그런 나쓰메 소세키가 마침내 입을 연 것이다. 이를테면 『유리문 안에서』에는 사경을 헤맬 만큼 극심한 병환을 몇 차례 앓고 나서, 즉 만년의 정점에서 그동안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했던 ‘진심’에 다가서기로 한 작가의 결심이 바로 오롯이 녹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구석구석에 자리한 순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형제의 죽음, 출세와 생계 문제로부터 초탈한 듯한 태도가 지닌 자기기만, 자신의 필명(『진서』에 나오는 ‘漱石枕流’에서 따온 ‘漱石’라는 필명은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라는 뜻처럼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나 ‘고집불통’, ‘괴짜’ 등을 의미한다.)처럼 너그럽지 못한 마음가짐 등이 작가 본인의 문장으로 세세히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유리문 안에서』에는, 이제껏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염세적 태도를 견지해 오던 나쓰메 소세키가 순순히 삶을 긍정하는 대목, 즉 그가 힘주어 언급하는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라는 한마디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강상중)가 담겨 있다.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은 나쓰메 소세키를 줄곧 사랑해 온 독자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새로이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뜻깊은 책이다.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그리고 우리 세계의 명암을 깊이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숙고하는 일 자체가 점차 사라져 가는 오늘날 ‘고민’과 ‘공감’의 힘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권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번민했던
문호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 편의 에세이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에는 『유리문 안에서』뿐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작가 생활과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 병실 체험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세 편의 에세이가 함께 수록돼 있다.
「입사의 말」과 「작가의 생활」에는 누구보다 앞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길을 걸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탈한 심경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촉망받는 교사로서 장차 대학 교수의 지위가 보장된 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속세’로 나온 작가는, 주변 사람들의 거듭된 질문(어째서 그 좋은 기회를 버렸느냐?)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이 글들을 발표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인 ‘즉천거사(則天去私, 작은 자아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를 이루고, 평생 꿈꿔 온 ‘명창정궤(明窓淨机, 밝은 창에 깨끗한 책상이라는 뜻으로, 검소하고 깨끗하게 꾸민 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를 얻는 데에 이만한 일(전업 작가의 길)도 없다며 담담히 토로한다. 더불어 나쓰메 소세키는 대학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온갖 고충에 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작가(예술가)와 독자에게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고민거리다. 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인세와 원고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상을 흥미진진하게 그려 내는 이 에세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쓰메 소세키가 지닌 유머러스하고 담백한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에는 평생 동안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던 작가의 사생관(死生觀)과 고뇌가 절절히 담겨 있다. 마치 한 편의 미스터리 작품을 읽는 듯한 긴장감 속에 펼쳐지는 이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세 편의 에세이와 『유리문 안에서』는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 더없이 귀중한 작품들일 뿐 아니라, 그가 지닌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