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생각 사는 핑계

이소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10월 30일 | ISBN 978-89-374-1961-4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08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나는 내 책을 열심히 팔 거야.

나는 이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한 편의 시가 한 명의 독자에게 가닿는 먼 길 위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택한 어느 시인의

치밀하게 쓰고, 주저함 없이 팔고, 홀린 듯이 사는 나날

편집자 리뷰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부터 수많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시인 이소호의 산문집 『쓰는 생각 사는 핑계』가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이소호는 가장 내밀한 공간의 폭력을 고발했던 첫 시집 『캣콜링』 이후, 가상의 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던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한 권의 잔혹한 우화집과도 같았던 『홈 스위트 홈』 등 시집마다 얼굴을 바꾸며 시 세계의 지평을 넓혀 왔다.

『쓰는 생각 사는 핑계』는 이토록 많은 시적 표정을 지닌 한 시인을 살게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 낸 하루 동안 그가 써낸 것이 무엇인지 가감 없이 펼쳐 보인다. 시인의 관심은 오직 시, 그리고 시가 존재하도록 돕는 것에 쏠려 있다. 좀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인 이소호는 종일 백화점을 산책하고, 힘겹게 써낸 시를 발표한 뒤에는 같은 옷을 네 벌씩 산다. 시집 한 권이 완성된 뒤에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궁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기, 쓰기, 팔기, 살기는 시인 이소호의 시간 안에서 섞이고, 충돌하고, 전복되며 한 시인의 삶을,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 각자의 쇼핑백을 마음에 품고 『쓰는 생각 사는 핑계』를 펼쳐 보자. 시인의 분투에는 무언가를 오래도록 바라고 원해 온 자를 위한 물건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다. 읽기를 마친 뒤 쇼핑백 안에는 시인만의 쇼핑 팁도 사은품처럼 담겨 있을 것이다.

 

■ ‘살기’ 위한 ‘쓰기’

이소호 시인은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엄마의 손을 잡고 쇼핑에 눈을 뜨게 되었다. 쇼핑은 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도와줄 무기가 된다는 것을, 엄마의 뒤를 따르던 어린 시인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멀끔한 모습으로 학교에 가자 전날까지 사나웠던 아이들의 눈빛이 왠지 부드러워졌고, 그때 시인은 확신했다. 쇼핑은 나를 살게 한다. 이후 좋아하는 곳을 오래도록 걷는 운동부터 시작해 보라는 의사의 조언에 백화점 산책을 일과로 삼고, 시에 대한 진심을 다치는 하루를 보낸 날에는 퇴근 후 절대 쓸 것 같지 않은 새빨간 립스틱을 사는 등 이소호 시인의 ‘오늘의 쇼핑으로 다가올 내일들을 살아 내 보기’는 계속되었다.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긴 만큼, 쇼핑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도 새로 산 물건들처럼 쌓여 갔다. ‘뉴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사자마자 단종이 되는 물품의 목록이나, 늘 짝수로만 물건을 구입하는 버릇 탓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따로 보관해 두는 리빙박스, 초심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라이브 커머스’의 은어들까지. 이소호 시인의 사는 행위가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 이상의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것이 이소호 시인의 삶 곳곳에 절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그 동아줄 같은 경험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 떠올려 보게 된다.

 

■ ‘쓰기’ 위한 ‘팔기’

이소호 시인은 책 한 권을 써낸 후 그 책이 판매되어 독자에게 가닿는 과정까지 애쓰는 사람이다. 만지는 즉시 구매 당시의 풍광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의 힘을 믿기에, 그는 파는 위치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솔직하고 전심으로 임한다. 시집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행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좋은 시집을 만드는 일이다. 이 책에는 ‘쓰다 만 시’ 폴더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시, 잠들어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고쳐져 세상에 나온 시, 사랑을 생각하며 쓴 시, 공간을 상상하며 쓴 시, 거짓말로부터 출발한 시 등,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시편들의 시작법이 담겨 있다. 첫 시집 『캣콜링』을 시작으로 이소호 시인의 시를 사랑해 온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반갑게 책장을 넘길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시집이 출간된 뒤 시인은 늘 자신만의 굿즈를 제작해 왔다. 키링, 엽서, 책갈피, 선물박스 등 직접 제작한 굿즈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시집을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그리고 시인은 그 바람을 숨길 생각이 없다. 숨기기는커녕 자신의 시집이 “여기저기 나보다 더 멀리 떠나서 사진이라도 많이 찍혔으면 좋겠다”거나 “앞으로 모든 친구 선물은 내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읽히고자 하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시인이 이토록 자신의 시집을 알리는 데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시 곁에 보다 오래 머물기 위해, 많이 사고 열심히 팔고 다시 치열하게 쓰는 그의 이야기로부터 누구든지 꼭 필요한 만큼의 용기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

■ 본문에서

내가 굿즈를 만드는 이유는, 출판사가 내 굿즈를 만들어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부지런해서도 아니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무언가를 사는 행위에 중독돼 있었던 나는 물건이 가진 고유의 힘을 믿는다. 아니 맹신한다. 물건에 깃든 순간을 믿는다. 그 물건이 소환해 줄 단단한 추억을 믿는다. 대전에서 튀김소보로를 사고, 제주에서 감귤초콜릿을 사는 것처럼. 해외에서 도시의 이름이 박힌 마그넷을 사는 것처럼. 냉장고에 붙어 있는 것 말고는 도통 쓸모가 없지만, 가끔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그 물건을 골랐을 때의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힘.

-「덤이지만 완전한 하나」에서, 27~28쪽

 

지금 생각해 보면 아홉 살의 경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을 저지르지 않으면 재미있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고 수습하자. 뻔뻔하게 살자. 공약을 어기고도 시장 상인들에게 악수하러 다니는 정치인처럼. 어차피 인간은 하루에 평균 세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 나의 다짐과 선언이 하루에 몇 번 하는 가벼운 거짓이 된다 해도, 생각해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진짜로 만들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예언이 된다.

-「진실한 구라」에서, 52~53쪽

 

뉴아이패드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금 전설이 되어 있다. 최초로 레티나를 넣어서가 아니다. 6개월 만에 애플이 단종시킨 최초의 제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것에는 아이패드와 토사구팽을 합친 멸칭, 일명 토사구패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비극적인 건, 그 토사구패드를 산 게 나라는 사실이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내 주변에는 내 추천으로 토사구패드를 산 친구들이 무려 세 명이나 되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미안해.”

“아니야…… 나 잘 쓰고 있어.”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지금도 새로운 아이패드가 출시될 때마다 테크 유튜버들은 설명한다.

“여러분 토사구패드가 될까 봐 걱정되시죠?”

나의 뉴 아이패드는 이렇게 매년 애플의 신제품 출시 때마다 조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가졌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진다」에서, 82~83쪽

 

작가로서 쓰면서 느끼는 게 있다면,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 글들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 ‘쓰다 만 글’이라고 해서, 실패작들이 모여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미지의 걸작’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중에 나처럼 풀리지 않는 글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이 글들은 반드시 무언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희망을 걸자. 시작한 것이 나였으니, 분명 멋진 끝맺음도 내 두 손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이 글들은 모두 내 두 손에서 독자의 두 손으로 옮겨 갈 거라고, 나는 확신에 확신을 더하여 당신에게 감히 나의 ‘실패’를 전하고 싶다.

「폴더 이름 쓰다 만 글」에서, 112~113쪽

 

그렇게 나는 마음고생을 할 때마다 나를 위한 선물을 사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놈의 마음고생을 매일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나를 위한 선물을 많이 샀는지 나중에는 12월이면 소멸 예정이라는 포인트로 한 매장에서만 4만 원짜리 파우치 선물을 받기도 했다. 어리고, 별다른 취미도 없었던 나는 불행히도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로지 소비밖에는. 그때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글쓰기가 일이 되어 버리면서, 소비는 유일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쉼터가 되었다. 비록 내 삶에는, 통장에는, 구멍이 나기 일쑤였지만.

-「백세권에 산다는 것은」에서, 120~121쪽

목차

들어가며 9

 

1부 내가 갖고 싶은 것

덤이지만 완전한 하나 15

홀수는 외로워 31

진실한 구라 42

‘나’답게 나대기 54

에드거 앨런 포 스트리트에는 에드거 앨런 포 카페가 없다 67

가졌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진다 79

 

2부 나를 쓰게 하는 것

폴더 이름 쓰다 만 글 93

백세권에 산다는 것은 114

네가 감히 나의 시가 된다면? 130

나의 라이브 커머스 입문기 144

살말과 쓸말 157

 

3부 이어질 이야기

좋아하는 물건에다 이야기라는 단추를 꿰매 보기 173

그 많던 국가대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82

무제로 살아남기 190

 

나가며 199

 

작가 소개

이소호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2014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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