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날아가다

원제 Flying Home

랠프 엘리슨 | 옮김 왕은철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10월 4일 | ISBN 978-89-374-6446-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9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그런데 자네는 왜 하늘을 날고 싶었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당신과 나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죠.”

 

 

인종 차별과 갈등의 한계를 극복해 새로운 예술의 차원을 연 랠프 엘리슨

고통과 불신을 마주하고 형제애와 자유를 노래하는 여러 갈래의 목소리

 

 

▶ 랠프 엘리슨의 단편들은 체호프의 단순한 우아함을 계승하고 있다. ─ 《워싱턴 포스트》

▶ 미국 정체성의 ‘복잡한 운명’과 ‘아름다운 부조리’를 향한 엘리슨의 평생의 매혹을 잘 보여주는 초기 탐구. ─ 존 F. 캘러핸

편집자 리뷰

20세기 흑인 문학의 초석을 닦은 랠프 엘리슨의 단편집 『집으로 날아가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엘리슨은 1952년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보이지 않는 인간』을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되었다. 인종 차별이 ‘정상’으로 여겨지던 미국에서 대공황, 2차 세계 대전 등을 겪은 소수자를 대변하고 당대의 현실을 충실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53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고 작가, 비평가, 편집자들이 선정한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엘리슨은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 뉴욕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등 미국 전역에서 문학 강의를 하는 한편 흑인 문화에 관한 에세이, 서평 등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엘리슨이 오랜 기간 준비 중이던 두 번째 장편 소설은 안타깝게도 화재로 인해 상당 부분 소실되었고, 그는 1994년 여든한 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존 F. 캘러핸이 사후 출간된 단편과 미공개 단편을 모두 모아 정리하고 편집해 단편집 『집으로 날아가다』를 발행했다. 이 단편집은 엘리슨이 젊은 작가로 1930년대에 갖고 있던 가능성과 『보이지 않는 인간』을 구상했던 1940년대의 성숙 과정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오십오 년 넘게 작가로 살면서 탐구했던 미국인의 정체성을 놀라울 만큼 일관되게 보여 준다.

 

 

■ 「광장의 파티」- 자연 재해에 가까운, 피할 수 없이 당연한 린치

 

「광장의 파티」는 앨라배마의 한 광장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흑인을 바라보며 주변 상황을 묘사하는 어린아이가 화자다. 흑인 희생자를 제외하면, 참여자들과 구경꾼들은 ‘베이코트 검둥이’를 서서히 고통스럽게 고문하는 행위를 보면서 흥분하는, 가깝고 먼 곳에서 온 백인들이다. 화자는 무슨 범죄나 모욕으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 단서도 주지 않는다. 엘리슨은 어린 백인 화자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 그의 입장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흑인이 불에 타는 동안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관찰자인 소년의 언어로만 표현된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검둥이’라는 단어는 소년이 느낀 존경심, 놀라움, 혐오감 등의 다채로운 감정과 대비된다. 엘리슨은 미국 문학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인적인 도덕적 책임 의식’이라는 주제를 다시 환기하는 동시에 언제나 제삼자에 의해 평가받는 흑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구경꾼들은 불타는 흑인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갑자기 비행기로 인해 아래로 늘어진 전선에 감전된 여성의 살이 타는 냄새에 오싹함을 느낀다. 그것은 비행기 조종사가 사이클론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린치를 위해 피워 놓은 불을 비행장의 신호등으로 착각해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린치를 가하는 자들의 혐오감은 잠시뿐이다. 그들은 세상이 끝나야만 흑인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일에서 그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듯, 그들이 하던 일로 돌아간다. 엘리슨은 인간에 의한 린치와 사이클론에 의한 자연적인 잔혹함 사이의 두드러진 대비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일단락되고 소년은 “바람이 사흘 동안 불었다.”라고 말하며 살해된 남자의 강인함을 모호하게 거듭 증언한다. 엘리슨의 능숙한 솜씨는 독자에게, 일어난 일이 자연적인 태풍이나 인간이 일으킨 태풍이 지나가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 「미스터 투잔」「오후」「나에게 날개가 있다면」「두피가 벗겨진 두 인디언」- 버스터, 라일리 연작

 

버스터와 라일리, 두 흑인 소년이 등장하는 연작에서 엘리슨은 소년기에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남부에서 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엘리슨은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호텔 웨이터, ‘버스 보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림을 거들어야 했다. 두 소년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만 제한하는 가족이라는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에서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은 욕망에서, 엘리슨이 ‘다면적이고 다양한 역할들의 수행’이라고 일컬은 것을 실행해 간다.

「미스터 투잔」에서 버스터와 라일리는 문답식으로 투생 루베르튀르의 영웅적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간다. 그들은 언어라는 상징적 행위를 하면서 대담해지고 결국에는 로건이라는 백인이 접근을 금지한 체리를 몰래 따 먹을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오후」에서도 소년들은 무료할 뿐만 아니라 인종 문제로 더 복잡해진 어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들이 처한 교착 상태에 반발한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에서 소년들은 자연의 제한에 맞서 그들의 호기심과 야심을 시험해 본다. 그러나 병아리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다가 결국 케이트 이모에게 호되게 혼이 난다. 「두피가 벗겨진 두 인디언」은 경험에 긴박감과 회상의 속성을 부여하는 서술 방식으로 통과 의례를 묘사한다. 옛날부터 ‘금지 구역’으로 일컬어졌던 숲속 오두막에서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늙은 여자와 조우한 버스터는 저항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스스로의 감정에 놀라 달아난다. ‘어른’의 세계에 한 발짝 디뎌 본 버스터에게 이 경험은 유년 시절의 마지막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집으로 날아가다」- 검은 이카로스의 날개

 

단편집의 표제작인 「집으로 날아가다」는 가장 높은 곳까지 이르려다가 추락한 흑인 조종사의 이야기다. 이카로스의 문학적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토드는 터스키기의 조종 학교에 등록한 최초의 흑인 조종사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고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앨라배마의 시골에 추락한다. 신화 속의 이카로스와 다르게, 그는 흑인 노인 제퍼슨에게 구조된다. 제퍼슨이 들려주는 민간 설화와 행동은 토드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에 있고, 누구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그는 늙은 흑인 농부와 그의 아들을 따라 미로 같은 앨라배마 계곡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발을 디디고 사는 현실로 돌아온다. 토드는 땅에 누운 채로 비행기 모형을 보고 가슴이 부풀었던 소년 시절을 회상한다. 하늘에 떠 가는 비행기를 모형으로 착각해 손으로 붙들어 보려고 담장 위로 올라가 팔을 뻗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토드의 원동력이 되었다. 엘리슨은 라이어널 햄프턴이 작곡한 대표적인 빠른 박자의 재즈 곡 「Flying Home」(1957) 에서 영감을 받아 이 단편을 썼다. 화려한 비상에 대한 예언적인 이미지, 형재애적이고 민주적인 낙관주의를 꿈꿨던 엘리슨의 바람이 작품 속에 은은하게 깔려 있다.

 

 

 

■ 본문 중에서

 

 

“집을 찾으려면 집을 떠나야 한다.” 몇 년 후 엘리슨은 집필 중이었던 소설의 페이지 여백에 이렇게 써 놓았다.

(11쪽, 「서문」)

 

 

나는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바비큐를 먹을 때마다 그 검둥이를 떠올릴 것이다. 그의 등은 바비큐를 한 돼지 같았다. 그의 등뼈에서 시작해 아래로 구부러지는 갈비뼈의 형태가 보였다.

(53쪽, 「광장의 파티」)

 

그는 어머니가 왜 울었는지 궁금했다. 아빠가 없다고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것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크면 그것을 죽일 거야. 엄마를 울게 만든 것과 똑같이 울게 만들 거야!

(67쪽, 「기차를 탄 소년」)

 

 

“버스터, 누군가 너랑 나한테 나는 법을 가르쳐 주면 좋지 않겠니?”

(114쪽,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고맙네. 우리는 아주 기쁘다네. 그 애가 몹시 보고 싶네. 우리는 돈이 있을 때는 아들을 잃었고, 이제 돈이 없어지니 아들이 우리한테 돌아오네. 우리는 아주 기쁘다네.”

(158쪽,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 그는 공을 갖고 놀 것이었다. 가엾은 아이는 질릴 때까지 놀게 될 것이었다. 그래, 오래된 공놀이.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에게 규칙들에 대해 말해 주기 시작할 터였다.

(190쪽, 「검은 공」)

 

 

“살아 줘!” 그가 소리쳤다.

청중이 거대한 선풍기가 꺼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로라, 살아 줘. 내가 이제 이것을 잡았어. 여보, 살아 줘!”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신 말고는 나한테 아무도 없어!”

(203쪽, 「빙고 게임의 왕」)

 

 

그것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눈이 따끔거렸다. 죄의식의 물결이 그를 흔들었다. 뒤를 이어 안도의 감정이 터지듯 몰려왔다. 그는 몽롱한 놀라움을 느끼며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노랫말에서 아이러니가 안 느껴지는구나.

(219~220쪽, 「이상한 나라에서」)

 

 

“그런데 자네는 왜 하늘을 날고 싶었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당신과 나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죠.

(240쪽, 「집으로 날아가다」)

 

목차

서문 7

 

광장의 파티 45

기차를 탄 소년 57

미스터 투잔 69

오후 82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97

두피가 벗겨진 두 인디언 120

하이미의 경찰 143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151

보조를 맞추느라 힘들었다 160

검은 공 176

빙고 게임의 왕 191

이상한 나라에서 208

거대한 폭설 221

집으로 날아가다 232

 

작품 해설 265

작가 연보 275

 

작가 소개

랠프 엘리슨

Ralph Ellison
1913년 3월 1일 미국 남부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엘리슨은 인종 차별과 가난이란 이중고를 겪었다. 터스키기 대학교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하면서 재즈와 문학에 심취했다. 1936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으나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고 할렘에 체류하면서 사진 촬영, 서류 정리, 공장 노동 등 잡다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엘리슨은 흑인 문학계의 거장인 랭스턴 휴스를 만나고 그를 통해 리처드 라이트를 소개받았다. 당시 《뉴 챌린지》의 편집장이던 라이트의 권유로 엘리슨은 첫 단편 「하이미의 경찰」을 발표했다. 1952년 첫 장편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엘리슨이 생전에 발표한 유일한 장편 소설로, 인간 존재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실험적인 시도로 20세기 미국 흑인 소설들 가운데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3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며 흑인 최초의 주요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 후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 활동을 했으며, 1964년 문학적 통찰력을 담은 비평집 『그림자와 행동』을 출판했다. 1969년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상했다. 여든한 살이 되던 해인 1994년 4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친구이자 문학 편집자였던 존 F. 캘러핸이 엮은 두 번째 장편 소설 『준틴스』, 단편집 『집으로 날아가다』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왕은철 옮김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이며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문학평론가. 유영번역상, 전숙희문학상,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생명의 신비상,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번역가상, 전북대 학술상, 전북대 동문대상 등을 수상했다. 『애도예찬』,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 『환대예찬』, 『따뜻함을 찾아서』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추락』, 『피의 꽃잎들』, 『연을 쫓는 아이』 등 오십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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