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 마담 보바리

유부녀의 간통이라는 너무나 통속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공중도덕 및 종교에 대한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가 변호사 쥘 세나르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고는 더 유명해졌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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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즘이라는 신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쥘 드 고티에에 의하면 보바리즘이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을 말하고,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한듯 한데. 보바리즘 인간 2022년 한국에도 각종 SNS에 오조오억명 있습니다 플로베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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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에사르의 당데르빌리에 후작의 초대로 경험한 화려한 파티가 아니었더라도 엠마 보바리는 언제든 신경증을 일으키며 간통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게 그녀의 기질이고, 그냥 운명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영특하고 똑똑했지만 그 반면 예민하고 허영심이 많고 절약을 몰랐으며, 플로르는 취향이라는게 없는 남자였으니까. 취향 없고 자아 없고 아내만 사랑하는 전문직 남편이라니. 엠마는 그런 플로르를 지겨워하고 경멸했지만, 2022년 한국에선 최고의 남편으로 추켜세워질 거라는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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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55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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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95

그렇다면 이제 나날들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수도 없이, 이렇게 열을 지어 지나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아무리 평범해도 적어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기회는 있다. 때로는 우연한 일이 실마리가 되어 무한한 변화가 일어나고 주변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인 것이다! 미래는 일종의 캄캄한 복도였고, 그 끝에 나 있는 문은 꽉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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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6

그는 이런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엠마는 세상의 모든 정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새로움의 매력은 의복처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져 버리고 언제나 같은 모양 같은 말뿐인 정열의 영원한 단조로움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실제 경험이 풍부한 이 사내도 같은 표현들의 배후에 깔려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의 차이는 분간할 줄 몰랐다. 이미 바람둥이거나 혹은 돈에 팔린 숱한 입술들이 그에게 똑같은 말들을 속삭였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순진성을 거의 신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별것도 아닌 애정을 감추고 있는 과장된 말들은 적당히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영혼에 가득 찬 생각이 때로는 가장 어설픈 비유로서 표현되기도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누구도 결코 자기의 욕망, 자기의 관념, 자기의 고통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보이지는 못하는 법이고 사람의 말이란 깨진 냄비나 마찬가지여서 마음 같아서는 그걸 두드려서 별이라도 감동시키고 싶지만 실제는 곰이나 겨우 춤추게 만들 정도의 멜로디밖에 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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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0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지고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아!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회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