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문학 선집 6 :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 1980년대
시리즈 한국 여성문학 선집 6 | 분야 한국 문학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
■ 6권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사이에서 교차하는 문학
1980년대는 여성이 공적 영역의 주체로 성장하고 이를 글쓰기로 재현한 시기로 여성문학도 민족·민중문학의 큰 흐름 속에서 창작되었다. 운동권 여학생, 여성 노동자, 중산층 여성 등 다양한 여성 주체의 문학적 재현이 이루어졌고, 노동 수기, 마당굿 등 노동현장과 연결된 민중 여성들의 발화가 문학장으로 나오며 다양한 장르의 확산이 이루어진 점이 이 시기의 성과다. 페미니즘 대중 장르의 유행과 소설, 연극에서 여성 독자와 관객의 증가도 두드러진 문학 현상이었다. 페미니즘 문학의 대흥행은 가부장제에서 탈출구를 찾던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 장르로 비껴 나 있었던 여성들의 가부장제 비판은 1990년대로 이어지면서 여성문학의 중심 흐름을 이끌게 된다.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한 모임으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성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우리에게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전복적인 여성문학사, 『노튼 여성문학 앤솔러지』 같은 여성문학 선집이 없는가?”라는 한 가지 명확한 의문과 강렬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문학사 서술은 여성주의 운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탈구축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사 탈구축 작업은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문학사에 깃든 국민·국가, 남성·엘리트, 문학중심주의 등을 걷어내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을 문학사에 반영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문학사 탈구축 작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문학사 서술은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서술이 굳건하게 형성되어 오는 동안, 여성문학사는 서술을 시작할 텍스트 선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문학은 그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 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은 의심받았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오늘 등장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한국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에 없던 여성의 기준과 관점으로 근현대 한국 여성문학의 계보를 집대성하고, 제도 문학 중심의 구분에서 벗어나 장르 제한 없이 여성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업이다.
‘최초’는 ‘다음’을 약속한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 이후 본격문학과 국민문학을 넘어 대중문학과 퀴어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을 포괄하고 해외 학회와 협업한 다양한 선집을 후속 과제로 남겨 두었음을 밝히며, 시대마다 문학 공동체마다 다시, 그리고 새롭게 쓰일 새로운 문학사의 탄생을 예고한다.
■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문학사는 가장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고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문학 교육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문학사 교육’이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 이유로 과거 국가 권력은 문학사를 ‘민족’과 ‘시민’을 양성하는 첫 번째 도구로 삼았으며, 또한 같은 이유로 문학사는 민주화 이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로부터 시작해 2000년대 한국 사회에도 민족과 이념 중심의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새로 쓰는 ‘문학사 탈구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미약했다. 새로운 문학사 서술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문학사는 문학 연구와 교육 모두에서 ‘죽은 지식’으로 외면당해 왔다. 그 역사 끝에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등장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를 떠받친 문학, 역사, 학문을 둘러싼 오랜 기준들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의심하고 새로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시작이다.
■ 시대가 만들고, 시대를 만든 작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최초’라는 단어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한 책이다. ‘여성문학의 진일보를 이룬 작품을 집대성한다.’는 목적과 학술적·역사적 근거와 의미를 가진 작품을 장르 구분 없이 발굴하고 소개한다는 대원칙 아래, 책에 대한 다른 원칙들이 세워졌다. 작품뿐 아니라 ‘학술’과 ‘역사’까지도 여성적 관점으로 다시 보고,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공기까지도 충실히 담을 것이라는 규칙들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 한국 여성해방 100년의 기록
기존 문학사에서는 나혜석의 「경희」가 《여자계》에 발표된 1918년을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다면,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본다. 이 글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신문에 투고해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이 글을 “근대 매체인 신문을 통해 공적 담론인 ‘선언문’의 형식으로 페미니스트 집합 의식을 발표한 최초의 글”(1권, 시대 개관)이라 평가하며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짚는다. 「여학교설시통문」을 발표한 이듬해 이 글의 저자들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인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한국 여성문학이 만들어 온 여성해방의 방향성과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여성의 글쓰기와 삶은 앞선 여성의 글을 읽고 다음 여성의 삶을 상상하는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공명하고 움직이며 이루어졌다. 시대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그에 따라 순응하고 저항하며 만들어간 여성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고민하고 열망한 ‘자유’, 여성해방의 과정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통해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백과사전식 구성과 글로 만들어졌다. ‘시대 개관’은 각 권을 여는 글로, 다루는 작품과 시대 전반을 설명하며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다. ‘작가 소개’ 글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문학사적 성취와 의미를 보여 주는 글로, 해당 작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엄정한 사실 검증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우선해 수록했다. 이 선집이 지닌 ‘최초’의 의미와 자료적·교육적 가치를 고려해 세운 기준이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수록했다.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까지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본문에서
내가 최초로 만난 대처는 크다기보다는 눈부셨다. 빛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토담과 초가지붕에 흡수되어 부드럽고 따스함으로 변하는 빛만 보던 눈에 기와지붕과 네모난 이층집 유리창에서 박살나는 한낮의 햇빛은 무수한 화살처럼 적의(敵意)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 1」에서
온천장. 왜정 때부터 삶의 질을 부패시켜 온 유흥지였다던가. 권력과 향락의 찌꺼기가 발효하는가 하면 또 각기 다른 호흡기로 숨을 쉬는 곳. (…) 기생놀이와 요리집, 고급 숙박업소, 날마다 번성하는 외제 상점들, 시장통을 낀 허름한 갈보집들, 새 동네라 불리는 기생들의 양옥촌, 그 너머 변두리 초가집과 미나리꽝과 논과 밭들…… 그것들이 집을 지어 나간 바둑알모양 서로 방해하거나 화해를 하면서 하나의 자본 사회로 얽혀 있었다.
― 윤정모, 소설 「고삐 1」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삼인조 강도에 의한 성범죄에 대해서 나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 이 사건의 경우 범인이 주저 없이 능글맞게 순순히 자백을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절대로 시인하지 않으리라는 신뢰 때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인은 경찰을 불신하고 경찰은 범죄자를 믿지 않는데 범죄자는 피해자를 철석같이 믿으니까요.
― 정복근, 희곡 「덫에 걸린 집」에서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맞추는 냄새
― 문정희, 시 「작은 부엌 노래」에서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 고정희, 시 「우리 동네 구자명씨―여성사 연구 5」에서
엄마가 알고 있는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남이 그럴싸하게 여기는 박사 학위를 얻는 것인가요. 그따위 학위가 보장해 줄지도 모르는 안락한 삶인가요. 엄마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못 본 척하는 것일까요. 딸의 쨍쨍한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영옥 씨는 그만 방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옷장에 채 걸리지 못한 남편의 웃옷과 함께.
― 김향숙, 소설 「종이로 만든 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중된 삶을 사는 것, 자기 몸의 피란 피는 모조리 뽑아 투명한 시험관에 넣고 마치 중세 암흑시대의 연금술사가 했듯이 부글부글 마술의 불을 지펴 끓여 거기에서 형형색색의 비현실의 비약(祕藥)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시바의 딸들의 자연스런 소망일 것이다.
― 김승희, 산문 「불의 딸과 태양숭배」에서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 최승자, 시 「Y를 위하여」에서
청천벽력.
정전. 암흑천지.
순간 모든 거울들 내 앞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며
깨어지며 한 어머니를 토해내니
흰 옷 입은 사람 여럿이 장갑 낀 손으로
거울 조각들을 치우며 피 묻고 눈 감은
모든 내 어머니들의 어머니
조그만 어머니를 들어올리며
말하길 손가락이 열 개 달린 공주요!
― 김혜순, 시 「딸을 낳던 날의 기억 ― 판소리 사설조로」에서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 황인숙,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에서
누가 알까
초봄은 언제나 겨울보다 춥고
무료함으로 면도칼을 씹어 뱉는 거친 여자애들
어떻게든 적의를 드러내고파 하는 마음을
(…)
역사수업 말고 사랑얘기 해주세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가출한 엄마
지겨운 가난이 빚어낸 사랑얘기밖에는 우린 몰라요,
― 김경미, 시 「야간여고 수업」에서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갈 집이 없는 나는
모두의 집을 찾아 나섭니다
밤별에는 집이 없어요
구름 무지개 꽃잎에는 우리의
집이 없어요 나는 아버지가 돌아간
집에는 살 수 없는 것
세월이 가슴에 깊은 웅덩이로 엉겨 있듯
당연한 것입니다
― 허수경, 시 「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에서
반(反)여성적인 문학 상황은 단지 여성 문제의 불철저한 인식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의 부족, 진보적 세계관의 미비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문학작품 속에서 올바른 여성의 삶을 그려 내는 작업은 여성 문제의 해결이라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여는 것과 직결되는 작업이다.
― 정은희 외, 비평 「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의 현실」, 《여성》에서
여성해방문학은 올바른 여성해방의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아가 여성들이 처하게 된 억압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고 변혁 주체로서 역사 발전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노동문학과 더불어 여성해방문학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작가들에게 주어진 역사의 문학적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 《여성운동과 문학》 창간사에서
■ 차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운동으로서의 글쓰기와 여성 의식 — 민중 · 민족 · 젠더의 교차 16
박완서 34
엄마의 말뚝 1 37
엄마의 말뚝 2 98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158
홍희담 179
깃발 181
김채원 183
겨울의 환 185
윤정모 251
고삐 1 253
정복근 262
덫에 걸린 집 264
문정희 321
황진이의 노래 1 323
작은 부엌 노래 325
고정희 327
상한 영혼을 위하여 329
우리 동네 구자명씨― 여성사 연구 5 331
이경자 333
둘남이 335
강석경 363
밤과 요람 365
김향숙 429
종이로 만든 집 431
김승희 495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497
불의 딸과 태양숭배 500
최승자 516
일찌기 나는 518
Y를 위하여 520
김혜순 522
기어다니는 나비 524
딸을 낳던 날의 기억 ― 판소리 사설조로 526
양귀자 528
원미동 시인 530
차정미 555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10 ― ‘정신대’를 생각한다 556
최명자 559
코 561
정명자 563
잊지 못할 1978년 2월 21일 565
황인숙 569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571
김경미 573
야간여고 수업 575
허수경 577
폐병쟁이 내 사내 579
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580
여성평우회 582
여성문화 큰잔치 연희마당 584
또 하나의 문화 648
좌담 ‘또 하나의 문화’를 펴내며 650
여성 673
『여성』 1집을 내면서 674
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문학의 현실 678
여성운동과 문학 747
책을 내면서 748
엮은이 소개 752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