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

이번 민음북클럽 선택 도서로 고른 라쇼몬.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읽기 시작했는데 참 시기를 잘 골라 읽었다고 느껴진 책이었다. 서늘한 느낌이 느껴지는 단편들은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렸다. 한 작품씩 읽고 나면 ‘그래서 뭐였지?’라는 정체불명의 불쾌감이 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아도 문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늘함이 왜인지 더 더 하고 글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모든 단편들이 다 흥미롭고, 인상 깊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지옥변>이었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광기는 어디까지 향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듯한 그 작품은 제 3자의 시선에서 한 그림에 얽힌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타죽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림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할 수 있다는 희열에 둘러싸인 모습에서 아버지의 사랑조차도 예술을 향한 광기를 넘어설 수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 부분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는 한편, 흥미가 돋는다. 예술이라는 것은 부모 자식간의 정 마저 넘어설 수 있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끝내 딸을 뒤따라 가는 화가의 모습에서 의문은 남는다.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집념과 광기가 사라져버려 잠시 뒤로 밀려나 있던 부정이 솟아오르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 광기가 부정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백성들에게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대신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작품을 읽다 보면 아름다운 것도 추하게 그리고, 독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화가가 악의 축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끝내 죄를 물어 화형 시키는 대신을 보면 인간의 악한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본 것만 그린다는 화가의 말은 결국 지옥은 현세에 존재함을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