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속 ‘인간 실격’

‘인간관계’란 참 묘하다. 본인의 마음을 드러내도, 혹은 숨겨도 어딘가에선 그의 이름이 대화 속에 오르내린다. 결국엔 그 대화를 나누는 이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다만, 일생 동안 수천, 수만 명 심지어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때마다 다른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카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카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p.93)

 

집 밖을 나와 다양한 ‘가르침’을 받으며 사람과의 관계는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주위에 있는 여섯 살 남짓의 아이들조차 성향이 비슷한 아이들과 무리를 형성하며 즐거워한다.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아이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공통점을 찾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어린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인간관계’를 위한 사람의 본능이라고 판단해도 이상치 않을 것이다. 단적인 예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 아빠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모두들 말하던데”

그건 속고 있기 때문이야. 이 아파트 사람들 전부가 나한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남들은 나를 좋아해주고, 남들이 나를 좋아해주면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이 불행한 제 기벽을 시게코한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노력이었습니다. (p.91)

 

굳이 책의 단점을 찾자면 ‘우울한 분위기’이다. 다만, 그 단점은 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울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그 본성을 이겨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서술하고 있다. 사람은 때때로 우울에 빠질 때가 있다. 결국 작가는 본인의 떨어진 자존감으로 우울한 결말을 이끈다. 그러나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통해 독자들을 되려 위로하고 있다.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한 작가가 각박한 세상에 지친 독자들을 위해 손을 뻗은 것처럼, 독자들도 어딘가 구석에서 홀로 있는 사람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책 속의 밑줄]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p.62)

 

넙치의 말투에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투에는 이처럼 까다롭고 어딘지 애매모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에 있어서, 거의 무익하게 생각되는 이런 엄중한 경계와 무수한 성가신 술책에 저는 언제나 당혹하고 에이 귀찮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기분이 되어 농담으로 돌리거나 무언으로 수긍하고,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p.78)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p.134)

 

자네의 쓸쓸함은 알고 있어. 그러나 그렇게 항상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안 되지. 쓸쓸할 때 쓸쓸한 얼굴을 하는 것은 위선자가 하는 짓일세. 쓸쓸하다는 것을 남이 알아줬으면 하고 일부러 표정을 꾸는 것일 뿐이야. …(중략)… 쓸쓸함은 누구한테나 있는 거라네. (p.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