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은 소설이나 시는 그것을 읽는 도중에 하나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그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고 난 후에도 그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나지 않는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처럼…
내가 처음 [폭풍의 언덕]을 접한 것은 대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이 책을 읽은 후에는 히스클리프의 악마적인 이미지가 한참을 떠올랐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다시 이 작품을 읽고나서는…
한참을 웨더링 하이츠의 폭풍부는 밤이 연상되고 있다.
내 창문을 열면 황량한 언덕 위에 웨더링 하이츠라는 낡은 건물이 보일 것 같고,
그 곳에서는 나무 가지들을 꺽어버릴 것 같은 강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폭풍과 함께 광기어린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생각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와의 광기어린 사랑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웨더링 하이츠의 주인인 언쇼가 여행때 주어 온 아이였다.
언쇼는 어느 정도 광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히스클리프를 자신의 아들인 힌들리와 딸인 캐서린과 함께 자녀처럼 키웠다.
그러나 언쇼가 죽고, 힌들리가 그 집안의 주인이 되자 히스클리프를 하인처럼 부리고 학대를 한다.
자신의 광기를 히스클리프에게 쏟아낸다.
그럼에도 캐서린과는 히스클리프와 친구처럼 벌펀을 뛰어 놀며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에 둘은 우연히 웨더링 하이츠에서 얼마 떨어진 드러시크로스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린튼가문의 사람을 만난다.
후에 캐더린은 에드거린튼과 결혼하게 된다.
그로인해 히스클리프는 웨더링하이츠를 떠나고 3년 후 돌아 온 그는 광기어린 사랑의 나머지 부분을 복수로 채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기어린 사랑의 고백들이 압권이다.
캐서린은 에드거린튼과 결혼하기로 결정하면서 하녀에게 결혼의 동기를 히스클리프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당신이든 누구든 자기를 넘어선 삶이 있고, 또 는 그런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이 자상만의 것이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내게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작자의 불행을 보고 느겼어.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네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븜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으로서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야.(P136)”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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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이런 광기어린 사랑의 고백이 또 있을까?
기쁨이 아닌 고통과 광기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캐더린…
그러나 히스클리프의 사랑 고백은 더 끔찍하다.
그는 캐더린이 막 죽은 후 그녀에 대한 광기어린 사랑을 고백한다.
“그래 끝까지 거짓말장이였군! 어디로 갔지? 거기는 아니야, 천국이 아니라고, 없더진 것도 아냐, 그러면 어디로 간 거지? 아! 당신은 내 괴로움 같은 건 알 바 아니라고 했지! 난 한 가지만 기도하겠어. 내 혀가 굳어질 때까지 되풀이하겠어, 캐서린 언쇼!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편히 쉬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러면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온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줘.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아! 견딜수 없어! 내 생명인 당신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내 영혼인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단 말이야!(P274)”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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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캐서린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어떤 사람이 죽은 두 명이 웨더링 하이츠를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는 말로서 둘의 광기어린 사랑의 결말을 이야기 한다.
둘의 광기어린 사랑은 어쩌면 타고난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에서 웨더링 하이츠라는 광기의 이미지와 드러시크로스라는 이성의 이미지를 대립시키고 있다.
언쇼집안은 캐서린은 아버지 언쇼부터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아들 힌들리에게 옮겨 간다.
캐서린 역시 아버지와 오빠의 광기를 이어받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어쩌면 드러시크로스의 린튼가를 만났을 때 그들의 차분한 이성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히스클리프를 위해 에드거 린튼과 결혼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자신과 너무도 닮은 광기의 대상인 히스클리프를 떠나 린튼가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히스클리프가 린튼가의 사람들, 캐서린의 남편인 에드거 린튼이나 자신의 아내가 되는 이사벨란 린튼을 그 처럼 경멸한 것도 어쩌면 자신과 다르기에, 그것을 닮고 싶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분노하고 경멸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광기가 어떻게 전염되어 가는지를 보게 된다.
언쇼의 광기를 그의 아들 힌들리가 닮아가는 과정을….
힌들리의 광기가 어떻게 히스클리프를 파괴하고, 그 안의 잠자고 있는 광기를 깨우는지를….
그리고 이들의 광기가 다시금 자녀들인 헤어튼과 케서린언쇼에게 이어지는 과정을…
그러나 이 책에서 최종적인 승리와 사랑을 이루는 사람은 헤어튼과 캐서린 린튼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의 광기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행복했을까?
그들 안에 있는 광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을까?
자녀들에게 자신 안에 있는 광기와 자신들이 당한 학대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자신 안에 있는 광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닐까?
순수한 사랑이 광기의 사랑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행복한 가정에서 광기가 전염되지 않도록…
내 안에서 몰아치는 폭풍의 광기와 싸우는 과정이 아닐까?
그 싸움에서 승리한 자만이 진정한 사랑과 가정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도록 남는 폭풍의 언덕의 이미지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