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166 | 일연 | 옮김 김원중
출간일 2008년 1월 2일

삼국유사라면 삼국사기와 세트로 비교된다. 삼국사기가 중국을 중심으로 두는 사고에 입각한 역사서라면 삼국유사는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설화 모음 느낌이다. 몇 년 전부터 삼국유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어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왕과 국가의 탄생설화와 역사와 전국의 귀감이 되는 이야기와 신비한 이야기들을 모은 것으로 역사이면서도 훌륭한 문학이다. 중고등학생 때 입시 때문에 접하게 되었다면 여전히 읽기 싫은 것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과거의 기억을 깨부순다면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삼국유사였다. 삼국유사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을 어떤 과학적 사관이나 역사적 실존성에만 의존한다면 허튼소리일 수밖에 없다. 성경과 마찬가지다. 그 안에 들어있는 은유적인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재밌고 신기하다는 것이다. 이 좁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삶과 목적을 가지고 살았고 이웃 나라로 퍼져갈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를 집필했고 조선 초까지 널리 간행되어 읽혔다. 한 왕조의 말은 언제나 혼돈을 불러온다. 그 혼돈 속에서 일연은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유구한 역사와 힘을 가진 독자적이고 특별한 민족임을 일깨워 하나로 뭉치고 개개인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스님이라는 신분덕분에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연의 집필의도를 생각하면 삼국유사는 과거보다 현재 더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한국은 더 나빠질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간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사람들 간의 소통을 부르짖지만 더욱 단절되어가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내 몸과 같이 남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런 대의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부모를 공경하고 배우자를 염려하고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사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나 과거를 돌아보면 그 시대 나름으로는 신의가 바닥에 떨어졌다라고 말한다. 지금에 와서는 그런 말을 하기도 힘든데 과연 신의가 제대로 작동된 적이 있냐는 물음 때문이다. 신의가 떨어졌다라고 말하려면 그 신의가 지켜지던 때를 살았어야 한다. 21세기 한국은 과연 신의를 지키던 때가 있을까. 이런 것은 국가 지도자가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이편에 나오는 많은 왕과 장군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화를 남긴 것이다. 미추왕의 일화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신념을 보여준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라를 지키려 뛰어들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그렇기에 5권 중의 많은 부분을 기이편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신의는 가장 작은 사회단위인 가족 안에서도 존재해야 한다. 5권의 효선편에서 ‘손순이 아이를 묻다’,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는 감동을 준다. 부모는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워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의 보호 아래 목숨을 부지하고 어른으로 자라나면 자식은 그 부모를 잘 봉양해야 한다. 이것은 가치관이 달라져도 이어져야 할 일종의 믿음 문제이다. 그럼 손순은 부모를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려 했으니 자식의 도리는 하되 부모의 도리는 못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 정도로 부모를 위한다면 하늘이 도와 부모와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불교철학과 미술에 관심이 있어 3, 4권이 흥미로웠다. 불교가 전파되어 국교로 지정되면서는 마을의 중심, 대로변에 절이 있어 모이기 쉬웠는데 후에 불교박해를 피해 산으로 들어가 현재처럼 산 속 깊이 절이 자리하게 된 것에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많은 부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절이나 탑의 건축과정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삼국유사가 단지 역사와 설화기록이 아닌 문학, 미술, 종교, 철학의 다양한 부분의 중요한 사료가 된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값진 책이 우리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알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을 읽는다는 의미보다 책을 통해서 이런 역사 속을 이어온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 기억해야 할 것들, 추구해야 할 것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그 어느 철학 사상서보다 중요하게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