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를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박경리와 박완서를 말하곤 한다. 이 책은 박완서의 단편집으로 특히 <도둑맞은 가난>이란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방세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젊은 여자(주인공)이 어떤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 계획을 세우지만, 그 동거하던 남자가 알고 보니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세상공부 좀 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빈손으로 지냈던 것이다. 인물들의 배경과 상황은 신데렐라 스토리와 유사하지만,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 주인공 여자의 반응은 그와 다르다. 여자의 총명함을 인지한 남자의 소개로 여자는 장학금 제안을 받게 되지만, 여자의 상황을 깔보고 무시하는 남자의 말에 분노한다. 자신이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인 자신의 셋방과 세간을 무시하는 남자의 행동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 책의 핵심은 마지막 여자의 내면 묘사에 있다. 부자인 남자의 무시하는 말에 그 전까지는 번듯하고 그럴듯하게 보였던 자신의 살림살이가 시궁창에 빠진 쓰레기더미처럼 보인다는 내면의 묘사, 그로 인해 ‘가난’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추하고 악한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의 심리 설명은 오늘날 우리도 매일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30여 년 전의 소설이지만 지금도 충분히 공감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