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예쁜 것.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들어본 건 많지만 제대로 읽은 건 거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걸 제대로 읽어본 사람도 많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전이라는 건, 제목만 들어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작품들 투성이 아닌가.) 교양 상식 부족이라고 해도 할말은 없지만, 나는 이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것도 몰랐다. 서양 고전 극은 대체로 재미없다는 막연함이 있었기 때문에 손댈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그건 굉장히 손해보는 행동이었는 걸 인정하고 싶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우는 반역도 맥도날드를 죽이고 돌아가는 도중, 마녀 세명을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코오더의 영주와 왕이 되고, 뱅코우는 자식이 왕이 될거라고 예언한다. 맥베스는 실제로 코오더의 영주가 되었고, 첫번째 예언이 들어맞자 두번째 예언도 실현시키겠다는 야망을 품고 아내와 계획을 짠다. 맥베스의 아내는 맥베스보다 더 잔혹하고 무서운 여자로, 국왕인 당컨왕을 맥베스가 살해하는 것도 거의 아내의 지시에 따른 것이나 다름없다. 국왕이 죽고 왕자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 자연스럽게 맥베스가 왕위에 올랐다. 맥베스는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예언을 같이 들었던 뱅코우가 당컨왕을 살해한 것이 자신인 것을 알고 밝힐까봐 자객을 시켜 뱅코우도 살해한다. 죄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나중에는 잔인함을 보여줬던 아내가 오히려 죄책감으로 자살하고, 맥베스는 이미 많은 피를 손에 묻히고 ,왕의 충복이었던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한다.

 

중간 중간 다른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고 예언에 관련된 역설적이고 비극적인 내용들이 있지만,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서 다 적으려면 꽤 수고스럽다.. 자세한 줄거리는 따로 검색하는 것이 더 정확할테니 굳이 리뷰에서 구구절절이 다루지 않겠다. (무엇보다도 인물들 이름과 사건 순서가 헷갈린다;)

 

대강의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맥베스>는 재미와 감동은 없어도 교훈은 확실하다. 과욕의 최후, 진리의 상대성, 권선징악.

뻔해보이는 줄거리에는 의외로 다의적인 주제가 담겨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진리의 상대성이다. 인물들은 처음의 위치와 나중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다. 인간적인 정이 있었던 맥베스는, 마녀들이 했던 명언인 “예쁜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예쁜 것”이 상징하는 것처럼, ‘예쁜 것’인 권력을 가지기 위해 ‘추한 것’인 살인을 필연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욕심은 점점 커지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세상을 속이려면, 세상사람들과 같은 얼굴을 하세요”라고 말했던 냉정한 성격의 아내는 나중에 오히려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는 것도 나름의 반전으로 보여진다.

 

마녀의 예언 또한 불확실한 것으로,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순전히 맥베스의 몫이었다. 그 말에 따라 정말로 왕좌를 전복해버린 맥베스의 선택은 비극의 결말을 만들어냈다. 사건의 시작이었던 예언조차 상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왕좌를 선택했던 맥베스에게 남아있는 건 회복될 수 없는 인간관계와 삶의 허무함밖에 없었다. 극에서는 왕권찬탈이라는 거대한 ‘예쁜 것’을 논했지만, 실제 우리 인간사에서도 크고 작은 ‘예쁜 것’에 눈이멀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중에 후회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내옆에 남아있는 건 이름뿐인 위치와 그에 따른 물질적이고 허무한 그 무언가일 것이다.

 

내일이 오고, 또 내일이 오고, 또 내일이 와서, 하루하루는 기록된 최후의 순간까지 일보일보 기어들고, 우리의 어제라는 날은 모두 어리석은 자들이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춰 준다. 꺼져라, 단명한 촛불아!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자기가 맡은 시간만은 장한 듯이 떠들지만, 그것이 지나면 잊어버림을 받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하다. 그것은 바보의 지껄이는 소리, 소리높이 시끄럽게 떠들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맥베스의 이 고독에 찬 외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살면서 겪게되는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주의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