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디자인이야

연령 13세 이상 | 출간일 2014년 4월 4일

생각없이 애플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여기에 이런 기능을 넣을 생각을 했지?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세심함과, 나에게 아무 필요없는 제품이지만 갖고 싶게 만드는 제품이 애플이다. 이쯤되면 또 잡스의 ‘인문학’을 들먹이는 게 아닌가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엔 잡스가 아니라 ‘조너선 아이브’다.

 

변기 디자인에 실패하다

 

조너선 아이브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 하게 할 때 존 스컬리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 위해 당시 펩시 부사장으로 있던 존 스컬리에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까?” 결국 1983년 존 스컬리는 애플에 합류한다. if, 조너선 아이브가 변기 디자인 하던 중소 업체의 이름 없는 능력자였으면 더 신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잡스가 “평생 남의 엉덩이만 보고 살겠습니까. 미래를 함께 그리겠습니까?”라고 했다면 더 극적이었을텐데.

 

물론 이야기는 이렇게 흐르지 않고 아이브가 속한 회사 텐저린이 아이디얼 스탠더드로부터 변기와 비데, 세면대 디자인을 의뢰 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아이브는 해양 생물학 관련 서적으로부터 자연의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하지만, 회사 CEO는 그들에게 호된 비판을 쏟아 부으며 ‘제품화 하기 용이한’ 디자인을 요구한다. 이 사건은 아이브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며, 외부컨설팅 회사의 한계는 결국 고객의 입맛에 맞게 원하는 대로 만드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음을 다시한번 절감한다.

 

산업디자인이냐 프로덕트 디자인이냐

 

아이브가 애플의 디자인 팀으로 옮기게 된 이유중에 하나가 그 팀이 내부 컨설팅 스튜디오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는데 우선은 내부에 있지만 별도의 팀이기 때문에 회사의 종속을 덜 받고, 기업 외부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자기주장이 가능하다. 이것은 앞의 변기 사건에 알 수 있듯이, 디자인을 하는 이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단순히 제품의 외향만 채우는 디자인이 아니라 흐름을 이끌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 그것만이 아이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디자인 팀은 엔지니어에 집중되어 있던 무게중심을 자기네 쪽으로 옮겨오고 싶어했다.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아이맥과 아이북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애플의 중심 권력은 산업디자인 팀이 되었다. 디자인 팀은 그저 완성품의 케이스를 만들어 내는 팀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창조하고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고, 프로덕트 디자인 팀은 기술적 역량을 총동원 해서 디자인대로 제품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마저리 안드레센은 이렇게 회상한다. 

 

산업디자인 팀과 일할 때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들에게 ‘노’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였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보이든 불합리해 보이든 불가능해 보이든 그들이 원하는 그대로 따라야 했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이원하는 바를 구현해줘야 했습니다. (p.209)

 

이 말의 의미는 전에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전기 설계)과 프로덕트 디자인(기계 공학)이 주도하던 디자인 과정을 산업디자인 팀에서 주도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전에는 기술적인 제약을 감안해서 디자인 하던 것을, 디자인에 맞춰 기술적 역량을 맞춰가는 식이 됐다는 의미이다. 사실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디자인이야 뭐 어짜피 예쁘게 팔기 위해서라고 정도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조너선 아이브는 분명히 ‘stupid’라고 했을 법 싶다.‘바보야, 문제는 디자인이야.’

 

 

 

엔지니어들은 현재 시점에서 가능한 조건들에 얽매이게 마련이지요. 반면에 산업 디자이너들은 내일 혹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능해질 수도 있는 조건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p.178)

 

애플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1990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애플의 산업디자인 책임자로 합류한 브러너는 이런 조건을 내세웠다. 자체적인 디자인 팀을 만들기를 바라지만, 대기업에서 흔히 보이는 관료적인 조직이 아닌 그룹 내 소규모 디자인 팀을 만들어 주길 바랐다. 사실 애플이 디자인 팀에 특별한 재량을 주고, 자체적으로 느슨한 관리 시스템을 확보한 것은 지금의 애플을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아이브의 졸업 작품을 보고 그의 재능에 감탄한 바 있는 브러너는 팀이 꾸려지자 아이브를 영입했다.

 

아이브는 애플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몇가지 디자인을 했지만 역시나 외부업체에서 컨설팅하는 수준을 못벗어나는 관료적인 조직에 실망한다. 1997년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잡스는 디자인 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으며, 그들의 상상력이 실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1998년 드디어 ‘아이맥’이 그 베일을 벗었다. 이는 애플의 기사회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첫 제품이었다.

 

 

 

 

역시, 사람이다

 

1997년 9월 잡스가 구상한 NC 사양을 반영한 디자인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브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술적인 문제부터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람’에서 시작했지요. 우리는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 이 제품은 사람들 마음의 어떤 부분에 가닿을 것인가? (p.164)

 

‘애플’과 다른 기업간의 차이점을 찾을 때 분기 순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판매량에 열을 올린다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그들은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닌, 역사에 남을 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기업이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은 수익 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어본 애플의 제품은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걸 느끼게 해주었다.

 

조너선 아이브 체제

 

2008년 애플의한 행사에서 아이브는 특별한 발표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니보디’ 프로세스였다. 이는 기존의 노트북이 용접과 나사로 강화판을 결합해 튼튼하지만 조금은 조잡한 노트북을 만들었던 단점을 해결한 방법이다. 유니보디는 알루미늄판을 통째로 잘라서 거기에서 나사가 들어갈 부분 키보드나 접합부분을 남기고 갉아내는 형식이다. 이로 인해 비슷한 제품에서 서른 부분이나 생기던 연결부위가 다섯군데로 줄어들었으며, 디자인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은 것이다.

애플은 지난 6월 운영체제의 새로운 버전 ios7을 내놨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전에는 하드웨어 디자인에만 관여하던 조너선 아이브가 마침내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주관했던 스콧 포스톨이 물러나고 아이브가 영향력을 확장한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이전 버전까지 적용되던 스큐어모피즘(실제 사물의 형태와 개념을 모방)을 버리고, 아이브가 항상 추구하던 미니멀리즘(특징을 살리되, 최소한의 표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미니멀리즘은 조너선 아이브가 1980년대 중반의 과다 표현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던 디자인 철학이다.

 

잡스가 사라진 애플에게 가장 붙이기 쉬운 말은 ‘혁신이 사라졌다’이다. 그런데 잼있는 사실은 아이폰 발표때마다 그런 언론기사가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잡스가 없으니 그런 기사는 더욱 힘을 얻는다. 하지만, 애플에는 아직 잡스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이들이 많이 남았다. 그 중에 한 명이 조너선 아이브다. 나는 혁신이 사라졌다는 애플에서 여전히 그의 열정에 기대를 걸어본다.

 

p.s 이 책에 다만 아쉬웠던 점은 삽화가 한 장씩 껴들어 있다면 그때 그때 제품을 검색해 보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점이다. 책의 중간에 사진이 몇 장 들어있긴 하지만 제품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나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