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가 만들어졌다. 철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필히 한 권씩 읽어야 할 것 같다. 설명서를 읽고 철수를 대한다면 철수를 잘 이해할 수 있게된다. 아주 뛰어난 사용자는 설명서를 능가하여 철수를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설명서를 읽지 않는데에 있다. 그러니 설명서가 있다고 한들 읽지 않는다면 사용자는 철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핸드폰, MP3 등을 사면 두꺼운 사용설명서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주 작은 설명서가 들어있을 뿐이다.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 인터넷이 낯선 사람들은 컴퓨터-인터넷 설명서부터 읽어야한다. 그래야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련 설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서 따위는 귀찮아하며 다루면 있는 기능도 못쓰고 없는 기능을 탓하며 기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간소화된 설명서는 사람들이 ‘줘도 읽지 않더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어서 두껍게 해서 줬더니 읽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설명서를 읽으면 그 제품을 다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명서는 단지 참고자료다.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새 핸드폰들을 보면 ‘인터넷정도는 되야 핸드폰이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 핸드폰에 인터넷 연결이 필수가 되었고 DMB가 필수가 되었을까? 핸드폰은 전화가 원래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인터넷도 안되고 DMB도 볼 수 없는 핸드폰들은 전화가 잘되고 있지만 폐기처분되고 있다. EBS ‘하나뿐인 지구’에서 전자 쓰레기 편을 본 적이 있다. 아주 멀쩡한 TV들이 HD시대가 열리면서 폐기처분되고 있었다. 그로인해 엄청난 양의 전자쓰레기들이 쏟아지고 지구는 오염되고 있다. 핸드폰, 냉장고 등등등 본래의 기능은 하지만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고장나서가 아니다. 그냥 내 기준에서 별로라고 생각되면 버리는 것이다. 폐기사유 ‘내 맘에 안든다. 생각과 다르다’ 그러니 물론 철수가 고장은 아니다. 철수는 철수일 뿐이다. 철수는 뭐도 뭐도 아니고 그냥 철수다. 고장이라는 것은 정의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면 고장이라고 한다면 철수가 해야하는 제대로 된 기능이 무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오빠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배낭여행정도는 가 줘야지’ 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배낭여행을 안가면 대학생이 아니라거나, 아무 목적없이 단지 대학생이라서 배낭여행을 가야한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자- 드라마에서 간혹 자주 보는 ‘너 답지 않아!’ 그러면 ‘나다운게 뭔데?’ 라며 울먹울먹하는 장면. 나 다운것은 뭘까. 나 답지 않으면 고장일까. 나라고 했을 때 당연히 해야하는 뭔가가 있을까?
철수 사용 설명서에서는 제품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날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고장을 의심하고 사용자의 부주의를 탓하기도 한다. 솔직히말해 철수는 너무 답답했다. 한 번도 자신이 이렇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용설명서를 만들어놓고 역시나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철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설명서를 주며 저는 이렇습니다. 라고 할 것인가 싶기도 하다.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 전에 무어라도 해봤다면 좋았을 것을 철수는 그렇지 않았다. 내용에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수 많은 비교, 탓, 좌절 등이 더 자주 보였다는 생각이다. 이게 우리 사회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슬프고 억울해서 이 설명서를 만든 철수가 곱지 않아 보인다. 흑,, 나쁜 철수! (이걸 보는 철수가 또 한동안 왜 내가 나쁘다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설명서를 만들었는데도 욕먹다니 하지 않을까;)
수영을 못하는 철수 라는 것을 보고 수영장에 가지 말아야지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수영을 못하게 되었을까. 철수는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애당초 물이 싫었던 것일까? 물에 빠져 죽을뻔한 기억때문일까. 철수가 지금은 수영을 해 보고 싶어할까? 등등등등 이를 바탕으로 철수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다면 사용 설명서는 제 기능을 한 것이다.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철수가 좀 더 자신감 있는 철수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