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는 한국사 시리즈로 [민음 한국사]를 출간하기 시작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시대인 조선 시대의 역사부터, ‘100년’을 하나의 시대로 한 독특한 방식의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5, 16, 17, 18세기, 총 네 시대의 시리즈를 출간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일견 이해가 되는 것이, 조선 건국이 1392년,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종료가 1598년, 정조의 승하가 1800년 등 조선 시대는 주요한 시대에 대한 맺고 끊음이 세기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예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하튼, 첫 시리즈인 [민음 한국사: 조선 01-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은 세종대왕 시기를 중심으로 왕조 초기에 활짝 피어버린 조선 시대의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는 역사상 최고의 암군 – 연산군 – 을 시작으로 하여 네 번의 사화를 거쳐 왜의 침략으로 세기말을 맞이하는 16세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민음 한국사]를 읽으면서, 특히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사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술 자체가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별 방식이라든지, 인물/사건별 방식이 아니라, 주제별 방식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보아오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이기 때문에,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어느정도 머릿 속에 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16세기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처음이라면 당시 시대를 머릿 속에 하나의 선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사건별/인물별 줄기 위에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첨언하는 형태의 역사 서술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국가 경영에 적용하면서 왕이라고 하는 절대 권력 조차도 성리학 속에 묶어두려는 성리학자들의 분투와 좌절, 4전 5기의 과정을 다루면서, 중국 같으면 왕조가 교체될 수도 있었을 사건이 ‘반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서 조선왕조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조와 중종, 두 명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위한 장치로써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척신 세력이, 다른 방식으로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던 – 그러면서 왕 또한 이상 속에 포섭하려고 했던 – 사림 세력과 부딪치면서 사림 세력을 배척하게 되었는지 – 네 번의 사화 -, 그러면서 다섯 번째로 재기에 성공한 사림 세력이 결국 선조 연간에 완전한 성리학 중심의 정권을 확립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붕당을 구성하게 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이 삼사가 그 가운데 역할한 것을 자세하게 부연하고 있으며, 정암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그 좌절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종 연간에 벌어진 조선왕조의 쇠퇴와 척신 정치의 마지막 불꽃, 그리고 그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닥친 일본의 급변하는 정세와 그로 인한 임진왜란의 추이 또한 자세하게 살피면서 16세기에 대한 서술을 종료하고 있습니다.
책은 관련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건과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확연하게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역사의 해석에는 견해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겠지요. 그러나 이 정도의 논거를 가지고 펼치는 견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는, 저자들의 견해를 맞게 이해하였다면, 때이른 르네상스 뒤에 찾아온 쇠퇴를, 성리학이라는 이상을 통하여 어떻게든 늦추어가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 사이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더 나았을 것을, 조선왕조는 희대의 명군주를 왕조 초기에 너무 몰아서 가져버린 탓에, 길고 지루한 중후기를 보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생명줄을 연장시킨 것은, 아마도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되겠지요. 어떤 분들의 평가대로, 조선 왕조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앞과 뒤가 전혀 다른 왕조인 듯 보이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책의 미덕은, 16세기 당시 세계사적 흐름을 책의 첫머리에 밝힘으로써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일반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사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서술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그러한 요소가 정치적으로, 경제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시대 전체를 분절이 아닌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을 볼 때보다 더 밀도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올 시리즈를 기대하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