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이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예상한 모습과 다른 전개에 약간은 놀랐다. 좀더 강하게 풀어나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한 전개였다. 한 여자가 아내로, 어머니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극단으로 몰고 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나오는 여성들을 보면서 내가 공감을 하면서도 강하게 끌려들어가지 못한 것은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일상을 보면서 내가 만난 수많은 여자들의 삶에 대한 한탄과 고민과 어려움과 열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현실 속 인물이다. 화려한 칙릿의 세계에선 구질구질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처럼 묘사되지만 현실에선 대부분의 아내와 어머니가 이에 해당된다. 남편과의 관계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변하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짜증스럽고 귀찮은 존재가 된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의 삶이 불만스럽고 안타깝고 그리움을 불러온다. 만약 능력이 있다고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런 감정은 더욱 깊은 상실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생활에 치이는 삶이란 언제나 피곤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굳건하게 가정을 지키고, 삶의 무게를 두 다리로 버티면서 살아간다. 소설은 이런 여성들의 하루를 다루면서 현실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학창시절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었던 줄리엣의 하루는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남편과의 만남이 자신의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에선 그녀가 느끼는 삶의 허무함을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미래는 사라지고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변한 그녀가 후배와의 만남으로 느끼게 되는 현실의 힘겨움은 예전부터 많이 다루어져온 소재지만 강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지만 가지 못한 다른 길을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힘겨움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속 한 등장인물 같은 어맨다를 보면 위대한 모성이니 하는 단어를 잊게 된다. 자신의 소파를 더럽혔다고 아이에게 “죽여 버릴 거야.”를 외치는 장면은 섬뜩하다. 냉정하고 인정미가 없어 보이는 그녀가 외친 말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그 외침은 아이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깨끗하고 말끔한 세계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극단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나오는 메이지, 솔리, 크리스틴도 영화 속처럼 멋진 아내들은 아니다. 완벽하게 가정을 가꾸고 돌보는 모습은 없다. 남편의 애정이 자신들의 변한 몸매 때문에 의무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쇼핑몰은 조그마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장소가 된다. 다른 부부를 초대했지만 요리하기는 귀찮고, 요리법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다. 남편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 준다면 집안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은데 그들은 무심하기만 하다. 그래서 당연히 그녀들의 일은 늘어난다.
그녀들의 하루는 특별한 하루가 아닐 것이다. 일상이라는 삶의 고리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하루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느꼈고, 앞으로 얼마나 자주 느낄 것인지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수많은 반복과 지겨움과 힘겨움이 압축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나가 모두는 아니고, 언제나 경험하거나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나 아내라면 더 많이 공감할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