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짐 자무쉬의 영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목만 같다고 생각했는데 목차를 펼치니 각 장의 제목들이 상당히 낯익다. 이 목차의 제목도 모두 영화 제목이기 때문이다. ‘전부’가 아니라 ‘상당히’란 표현을 쓴 것은 몇몇은 내가 모르거나 알쏭달쏭했기 때문이다. 한때 누구나처럼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감독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작품을 찾아서 보던 시절이 지나간 탓에 더 그렇다. 만약 요즘 누군가가 나에게 짐 자무쉬의 영화를 보라고 하면 거의 보지도 않을 것이지만 본다고 해도 졸고 있을 것 같다.
제목과 함께 옆에 사람 성이 같이 표기되어 있다. 정, 김, 최. 이들이 바로 각 장의 화자다. 이들은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같은 순서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순서가 한 번 바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찾게 된다면 이 세 남녀의 시작과 끝을 ‘정’이 맡고, 이들이 숨겨놓은 감정과 사실을 정리하는 역할이라고 할까. 개인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는 소설에서 서로 겹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때 이 바뀐 순서가 그들의 심리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각자의 기억 속에 스스로 왜곡하고 편집했던 기억들이 겹쳐지고 제3자의 시선으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낯설고 건조하고 황량한 분위기다. 세 명이 한 차를 타고 움직이지만 그들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다. 친구 A가 죽어 문상을 가는 길이다. 이 세 명에게 A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다.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응원단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기억이 모두 불명확하다. 이런 분명하지 않음이 이 소설 전체에 가득하다. 물론 나중에 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숨겨둔 속내와 감정들을 솔직하게 토해낸다. 이때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의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이다. 영화 제목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보지 않은 영화가 더 많아 잘 모르겠다. 봤다고 더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평범한 로드 무비 같았던 이야기가 중간에 바뀐다.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고, 낯선 장소가 나오고, 이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을 볼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스티븐 킹이다. 일상에서 낯설고 공포스러운 세계로의 전환을 다룬 그의 소설이다. 반복되는 단어와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은 앞에 정이 느낀 이질감을 돌아보게 만든다. 깊고 길고 어두운 터널이 반복적으로 나온 뉴스와 결합해서 나중에 새로운 이미지와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안팎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라질 수 있다.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네 명이지만 ‘염’은 마지막 장만 맡았다. 이 때문에 앞에 나온 모든 이야기가 현실과 분리된다. 시간과 공간이 일반적 물리법칙을 벗어나고 이야기 속에서 변주를 불러온다. 마지막 장면을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A의 영화와의 연관성을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 만약 두 시간과 공간이 차원을 다르게 표현된 것이라면 겹치는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고, 현실과 비현실로 인식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뉠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다. 염이 본 뉴스가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 뉴스가 비현실이라면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