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무감으로 펼쳤지만 쿤데라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끌어당기는 맛이 상당하다.
뭔말인지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목적지를 모르고 탑승한 버스처럼 살짝쿵 겁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쿤데라의 글에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예전 책들도 그랬지만 쿤데라의 책은 늘 넘기 힘들어 보이는 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잊게 할 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탁월한 심리 묘사. 정치적 색이 짙으면서도 인간 본성을 관통하는 묘사로 그 무거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그리고 거장의 격이 다른 농담까지.
이 책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전작들에 비하여 너무 짧다.
짧은 글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다. 원래 태생이 단편이라면 모르겠지만 명색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은 이야기들은 금방 읽어내는 반면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이야기 속에 동화되고 몰입할 충분한 시간이 없이 막을 내리는 아쉬움이란…
난 이제서야 비로소 시작하고 싶은데 이미 사라진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처량함이란…
# 웃자고 이야기한 농담과 비열하고 역겨운 거짓말, 제대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그 한끝차이 일란성 쌍둥이.
일상의 무의미한 것들에서 더욱 깊고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기분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메며 소진하는 삶.
농담과 무의미와 축제. 아 지금 내게 필요한 3대 영양소를 만난 것 같은 느낌?
나를 `무의미의 축제` 그 한복판으로 이끈 채 유유히 사라져간 네명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조물주 쿤데라. 그리고 축제로의 초대장을 건넨 도라지. 이 발칙한 것들.
그래도 책장을 덮은지 한참 뒤인 지금까지도 자꾸만 베시시 웃음이 나는 것이 기분 꽤나 괜챦다.
축제를 한번만 즐기기는 부족하여 조만간 다시금 펼쳐들 날이 있을 것 같다.
# 소설은 언제나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행위로 인해 완성되는 또 하나의 세상, 결국 수백만 독자로 인해 수백만 세상을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작가의 의도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작가, 그 한 사람을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어째서인지… 쿤데라는 자신의 책에 평론가들의 분석이나 서평을 담지 않도록 하는 것에 유명하다. 프로필도 가능한 싣지 않도록 한다. 이런 모습에서도 작가의 카리스마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