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 열정을 알게 되었다.

한 남자가 마약에 취해 운전하다 사고를 낸다. 그 사고로 그는 전신 화상을 입는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포르노 배우이자 제작자였던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졌다. 전신 화상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그는 퇴원하면 자살을 할 계획이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온다. 이름은 마리안네다. 그녀가 뱉은 첫말은 그가 세 번째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무려 700년 전의 이야기다. 여기서부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과거 속 사랑이야기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는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반면에 화자인 주인공은 윤회를 거듭한 것 같다. 마리안네가 세 번째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부분은 그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생각하면 나의 상식에선 조금 이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역사의 상식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이것은 그녀가 남긴 유산에 대한 연구와 설명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기보다 독자에게 떠넘겨버린다. 정확한 정체를 단서와 유산으로 해석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화자가 중간에 계속 이야기하는 정신분열증 때문인지 헛갈린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아서 어떤지 잘 모른다. 만약 로맨스 소설이 이 소설처럼만 쓰여 있다면 아마 가끔 찾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나오는 보통의 로맨스 소설과는 다르다고 하니 이 소설만 특별할 것이다. 화려한 광고문구와 책에 대한 이력은 분명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이니 당연히 쉽게 읽힐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렇게 쉽게 읽히진 않았다. 세부 묘사가 치밀하고,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고, 세밀한 심리 묘사가 속도를 충분히 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바쁜 나의 일상과 피곤함도 큰 작용을 하였다.

 

이 책은 사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풀어내려고 마음먹고 천천히 분석하면 할 이야기가 많다. 두 주인공의 과거와 관련된 부분부터 다른 연인들의 정사(情死)나 작가가 본 일본의 모습 등 상당히 많다. 단테의 지옥편을 패러디 했다는 내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어떤 부분이 과연 다른 작가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평을 받는지도 분석의 대상이다.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오히려 복잡해서 적을 것이 없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정리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남긴 사랑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많은 이야기와 해석이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던 평범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당신은 열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239쪽) 너무 평범한 문장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가슴속에 와 닿았다. 타고난 외모로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은 그가 하나의 사랑을 찾는 순간이 추악한 외모를 가진 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도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마리안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의 허물을 벗고 진실한 자신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그를 나타내주는 이 문장이 있기에 그 사랑이 더 가슴으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