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르 클레지오는 나에겐 어려운 작가다. 나의 내공이 그가 보여주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부족하다. 몇 권의 책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적응하려고 하였다. 나의 독법을 조금 바꾸고, 좀더 세밀하게 읽으려고 했다. 그래도 아직 그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소설로 그에 대해 한 발짝 더 다가 간 것은 사실이다.
아담 폴로, 그는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의 결합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글들은 신화적 글쓰기란 평을 얻고 있다. 이런 기본 지식을 가지고 책 내용에 접근했다면 좀더 이해하기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읽기 전에 가진 정보라고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 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정도뿐이었다. 이것은 책 마지막에 가서 그가 정신병원에서 젊은 수련의들과 토론하는 장면과 퇴행하는 모습을 통해 조금은 단서를 드러내지만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어증을 가지고 자궁 속으로 퇴행하는 환상은 책 전반에 깔려 있는 그의 행동과 상상을 매조 짓는 역할을 한다.
아담을 이방인의 뫼르소와 많이 비교하는데 사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담의 행동과 환상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한 발 더 다가갈 수밖에 없다. 또 그와 미셀의 관계도 어떻게 풀어야할지 의문사항이다. 처음엔 단순히 아담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등장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하자 여동생이 그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실존하는 인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녀와 그가 만난 그 사실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그녀를 강간했다고 신고한 이야기와 그와의 만남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에 나온 신문 기사에서 강간 사실만 나오면서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왜 이 사실에 집중할까? 그것은 아담의 이야기 대상이 대부분 미셀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상상의 벽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아담은 상상하고 몰입하면서 동화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가 동물원을 방문하여 상상 속에서 동화되면서 나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표범을 향해 손을 내민다. 이때 표범이 달려든다. 만약 이 동화가 사실이라면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포감을 느낀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 정도다. 이 사건으로 그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환상은 단순한 상상력의 발현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그가 떠돌이 개를 뒤따르는 장면이나 익사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도 머릿속에서 많은 부분 구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을까? 이 의문은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도 알 수 없다. 처음에 탈영병인 것처럼 도망 다니는 장면에선 보통의 사람처럼 보인다. 경찰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모습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환상 속에 자주 빠지는 그를 만나게 된다. 물론 상상의 세계에 자주 빠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면 다른 문제다.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냉철한 이성도 보여주지만 그것은 논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일뿐이다.
그렇게 난해한 문장도 문체도 아니다. 극도로 세밀하게 정돈된 세계를 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방식들은 처음엔 낯설게 다가온다.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여 신문을 인용하고, & 나 [ ]를 이용한 장면에선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를 한 여자의 문장에서 받은 혼란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겠지만 현실의 눈을 닫고 상상의 공간으로 자신을 은폐하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난해한 만큼 이해할 내용도 많고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책이나 이 책으로 얻을 것이 많을 것 같다. 아직도 이 작가는 나에겐 이해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