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주는 공허함과 빈 의자로 채워진 쓸쓸한 표지 사진이 책을 읽기 전부터 뭔지 모를 애잔한 기분에 젖어들게 했다.
이 책의 내용은 한 마디로 ‘어느 영국 저택의 집사의 직업에 대한 애착’이다.
그는 이 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농담이 잘 통하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무조건 다 해내고야 마는 철두철미하고 냉담해 보이기까지 한다.
저택의 하녀장으로 들어온 켄턴 양에게 처음엔 좀 쌀쌀맞을 정도로 차갑게 굴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여행길에 올랐던 마지막 부분에 가선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손주까지 태어난 그녀에게 남편과 행복하냐고 자꾸 물어보는 그의 속마음은 실제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의 말투로 우린 그도 그녀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당신에겐 어떤 미래가 있을 것 같냐고 했더니, 그는 공허함이 아닌 일 다음에 일, 그리고 또 일이 기다릴 거라고 말한다. 그녀가 편지에서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란 구절에 일부러 이렇게 대답한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그의 외로움이 더 부각된 대사였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그녀에 초점을 뒀다면 더 흥미를 이끌었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주는 사실 이런 연애 감정의 흐름이 아니었다.
저택의 주인장과 그의 손님들이 벌이는 정치적 토론과 주인공 집사가 속으로 이야기하는 의견들-주로 집사란 직업에 대한-이 지루할 정도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의아했지만 그는 아주 어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갔다하니 이런 글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은 역시 일본인이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이 참 매끄럽게 잘 됐다 싶어 번역가의 약력을 보니 이 책의 출간 준비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역시 제목부터 그러더니 책을 덮고 나서도 왠지 모를 기분에 휩싸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