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로 희번득거리는 눈동자, 웃고있는 건지 울고있는 건지 표정이 분명치 않은 세일즈맨 윌리는 자동차 핸들을 꽉 쥔채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팔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116쪽) 36년 경력의 세일즈맨인 그는 이제 육십 세가 되었고, 그에게는 더 이상 팔아먹을 것은 남지 않았다. 어느덧 사는 것보다 죽는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된(117쪽) 것이다.
매주 외근 다니는 내가 새삼스레 그 경치를 바라보았다니 상상이나 가? 그런데 린다, 거긴 아주 아름다웠어. 나무는 무성하고 태양은 따뜻하고. 나는 앞 창을 열고 따뜻한 바람에 내 온몸을 맡겼지. 그런데 갑자기 길가로 빠지고 있는 거야! (13쪽)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일즈는 ‘꽃’이라고 불린다. 1920년대 대공항 전의 미국은 그야말로 세일즈의 천국이었고, 때를 놓치지 않고 잘나가던 세일즈맨 윌리 로먼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그들은 윌리에게 기쁨이었으며, 자랑이었다. 그런만큼 자식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비프와 해피는 윌리의 기대에 못미치고, 어느덧 예순이 넘은 윌리는 세일즈맨으로서의 수명을 다한다. 회사는 그런 그를 여지없이 해고시키고, 경제적 자립에 실패한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보험금뿐인 그가 갈 곳은 한 곳 뿐이었다. 그의 맨 모습을 이해하는 세상의 단 한 사람 아내 린다를 뒤로하고.
그에게 성마른 기질과 성질, 황당한 꿈과 자잘한 심술궃음이 있다해도 그것이 남편의 내면에 있는 격한 바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 바람은 린다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지만 감히 입 밖에 꺼내거나 대놓고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11쪽)
감히 입 밖에 꺼내거나 대놓고 추구하지 못한 린다와 윌리의 꿈은 꽃을 심을 마당을 갖는 것이였으리라.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에 허덕이지 않는 삶이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있는 희곡 중 하나가 <세일즈맨의 죽음>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74쪽의 짧은 대본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큰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 속의 한 개인이 자본에 죽도록 봉사하다 정말 죽어버리는 이야기지만, 그의 죽음 뒤에는 가족간의 해묵은 갈등이 있다. 물론 그 갈등 역시도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신화’에 코가 낀 윌리가 자초한 불행이다. 그러나 누가 윌리를 비난할 수 있을까. 부모는 자식이 좀더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기 마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