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자신의 나라 터키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거나 혹은 두 권역에서 충돌을 가졌던 역사의식을 살린 현실을 반영하는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하얀 성>일 것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이 터키인의 시각에서 서양인의 다른 관점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충돌하고 배치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이 작품은 오히려 그 반대로 서양인의 시각에서 터키인의 다른 관점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충돌하고 배치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작품 곳곳에 서양인의 이야기와 터키인의 이야기를 배치시켜서 균형잡힌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그리고 작품 마지막에 깔끔하게 그 두 부분이 융합되어 나타나도록 한 구성도 보여주고 있다.
왠지 모르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소재만 본다면 서양인이 아시아의 나라로 들어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가 <동방견문록>이나 혹은 <하멜 표류기>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나중에 서로 닯아 보이는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 바꿔서 행동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왕자와 거지>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 두 작품은 이 작품에 비하면 엄청나게 쉽게 읽힌다. 나도 이번에 이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봤지만,다른 작품은 얼마나 난해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이 작품이 쉽게 읽힐 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항해 중 난파하여 터키에서 노예가 된 사람과 터키의 왕자다. 그런데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비록 모습이나 생각은 달랐지만 이후 펼쳐지는 사건들을 계기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주종 관계였다가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적 관계로 변해버린 것이다. 다만,그 과정에서 조금은 난해한 설명과 구성 때문에 자칫 흐름을 한 번이라도 놓친다면 혼란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나도 그 혼란에 여러 번 빠져버려서 고생을 했었다.
아마도 이런 구성과 표현은 오르한 파묵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오르한 파묵의 고향인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와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그는 이미 첫 작품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부터 꾸준하게 이런 형식을 고수해왔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오르한 파묵이 비록 특수한 위치에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그에게 2006년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읽는 데는 상당히 난해할 요지가 있는 작품이지만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절묘하게 융합된 결말이나 소재 등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작품의 결말이 오르한 파묵이 내린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새로운 상징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