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치 기준을 등지고 남의 생각을 중요시 생각치 않는 다는 것은
자신만의 자유를 추구하는 그만의 인격이고 용기일까…
아니면
극단적인 이기심 또는 무지에서 오는 허세일까…
잘 정돈된 행복을 보장하는 속세의 굴레를 내던지고 자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거친 이상의 세계로 뛰어든 찰스.
하필 왜 찰스는 마흔 살 그 나이에 인생 행로를 극단적으로 바꾸셔서
내 마음을 이리도 심란케 하시는가 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가정과 직장을 버린다는 것.
아무 이유없이 내 마음이 향하는 그 곳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여생을 보내고 뼈를 묻어야 할 곳을 알게 된다는 것.
19세기 말 그 시대의 모든 이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찰스의 행동에 박수쳐 주고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40대 가장에게 응당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라는 엄청난 무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냥 무책임한 정도가 아니라 죄악으로 치부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에 순종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때때로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하는 혹은 외면하고 있는 우리 안의 가식, 모순, 부당함 그리고 진실되지 못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 사회적 가치 이면의 흉한 몰골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가 죽어라 하며 지켜나가고 있는 가치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사랑, 생계를 위한 일, 사람 사이의 신의…
이러한 가치에 진실성이 결여되는 순간들을 떠올릴때마다 책 속의 주인공 찰스가 그 특유의 냉소적인 비웃음이 함께 스쳐지나간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천대받는 그림쟁이였으나 훗날 세계가 인정하는 세기적인 화가가 되었으니
그가 걸어간 길은 빛나는 발자취며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해 마땅히 바람직한 과정이었는가…
그의 그림과 사람을 대하는 삐딱한 태도에 코웃음을 치던 이들이, 그의 죽음을 외면하던 이들이
훗날 그가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게 되자.. 뭐 다 괜챦다…라는 식으로 그를 품는다는 것이…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안의 왜곡된 관념이 난… 지겹다. 물론 나또한 그 왜곡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말이다.
# 이 책은 서머싯 몸이 고갱의 인생사를 모티브로 하여 지은 소설이라고 한다. 고갱의 삶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고갱이 소설 속 주인공 찰스로 왜곡되어 기억되는 오류를 떠안고 살아야 한다. 뭐 이런들 그런들 어떠하리. `달과 6펜스`는 소설 그 자체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안겨주었고 고갱의 작품들은 여전히 그림 그 자체로 나에게 강렬한 감동을 주고 있으니. 게다가 소설과 그림이 뒤엉킨 상상은 온전히 나만의 추억이 되어 내 인생 한 시절의 책갈피가 되었으니 그 정도 오류쯤이야 뭐 상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