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꽤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딱 한 권 읽었다. 그것은 <어느 미친 사내의 5년만의 외출>이란 소설이다. 스페인 소설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큰 기대 없이 펼쳤다. 그런데 책을 편 순간부터 정신없이 읽었다. 예상하지 않은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당연히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을 뒀다. 뭐 언제나 처럼 사놓고 고이 모셔두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낯선 작가의 이름은 잘 기억 못해도 책 제목만은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작가 이름보다 먼저 출간된 책이 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기독교 서적이 아닐까 오해를 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그런 오해를 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이 먼 기억의 한 자락을 떠올려주었고, 작가의 다른 번역본들이 기억을 뚫고 강하게 앞으로 나왔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예전 재미가 떠올랐고, 실제 예수가 등장한다는 부분에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궁금했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는 읽는 도중에 전혀 실망을 주지 않았다. 나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호평들이 사실임을 다시 확인했다.
폼포니오는 로마의 과학자다. 그래서인지 놀라운 물의 효능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몸으로 실험한다. 당연히 배앓이를 하고, 돈은 모두 빼앗기고, 카라반의 호의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나사렛이다. 이곳에 올 때 그와 같이 온 호민관 아피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돈을 모으는 인물이다. 한 푼 없는 폼포니오가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과 나사렛으로 오는 도중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한 행동은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돈을 밝히는 이런 특성이 물론 폼포니오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말이다.
폼포니오가 나사렛에 도착했을 때 한 유대인 부자 에풀론이 살해당한다. 그 사건이 있기 전 한 남자와 말다툼이 있었고, 그가 죽은 방은 밀실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살인자로 목수인 요셉을 지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셉이 바로 예수의 아버지다. 작가는 대담한 설정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어린 예수다. 사실 이때만 해도 예수는 어리고 아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단지 그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 요셉이 무죄임을 증명하여 풀려나는 것이다. 돈을 모두 잃고, 지저분한 집에서 집주인에게 구박 받으며 살아야 하는 폼포니오를 돈으로 유혹한다. 이 유혹에 빠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폼포니오가 사건을 파고드는 부분에서 현대의 탐정 같은 역할을 한다. 탐문과 추리를 이용해서 진실을 알고자 하는데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분명히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좀처럼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요셉이 에폴론과 다툰 부분에 대해서 입을 다물면서 더 어렵게 만든다. 혹시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아니다. 죽은 자의 집에서 단서를 찾고자 하다가 실패를 하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만 사건과는 상관없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이름이 낯설다. 그것은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폼포니오와 어린 예수 콤비를 통해 사건의 실상에 다가간다. 이 과정이 결코 매끄럽지도 않고, 일류 탐정처럼 날카롭지도 않다. 폼포니오의 마음은 확 때려치우거나 조그마한 폭력으로 예수의 돈을 빼앗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심리 묘사는 사실적이다. 또 그가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은 웃음을 자아낸다.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을 때가 있다. 폼포니오가 과학자로 나와서 종교에 대해 비판적일 때 스페인에서 이런 책을 낼 수가 있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결코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가볍고 우습고 유쾌하고 풍자적이지만 결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나 전개가 유치하지 않다. 결국 느낀 것은 재미있다는 것과 이 작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