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 중 한 권인 것도 있지만 20세기에 다시 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자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려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번이나 읽었지만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릴 때 애니와 어린이 축약본으로 본 것이 전부다. 사실 <톰 소여의 모험>을 더 좋아했는데 이런 광고 글을 보고 선택한 것은 역시 성장소설이란 단어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취향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은 아직 내가 이해하지 못한 소년들의 삶을 보고 싶다는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열네 살 소년 채피는 처음부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처음엔 정확한 나이를 몰랐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그것을 사기 위해 집에 있는 것들을 팔려는 그가 낯설기만 했다. 그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옛날 동전을 찾아내고 그것을 조금씩 전당포에 팔아넘길 때만 해도 그냥 약에 취한 한 소년 이야기인가 했다. 간략하게 자기 집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이제는 흔한 재혼 가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동전 훔친 것을 들킨 후 집을 떠나 생활하는 장면부터 보통의 우리 삶과 다른 소년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채피의 방랑자적인 삶과 불안한 심리와 산산조각난 가족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을 나와 친구 러스 집에서 폭주족과 함께 마리화나나 피면서 생활할 때는 그냥 조그마한 일탈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폭주족이 물건을 훔치고,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채피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 했던 범죄는 장난 같은 것이라면 이제는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감정의 폭주는 자신의 본래 마음과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뛰쳐나가면서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비밀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환상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그 추악하고 섬뜩한 현실이 그에 대한 동조와 이해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채피가 살던 동네에서 자메이카로 이동하면서 펼쳐진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한 편의 로드무비 같은 장면이 연상되지만 그 과정은 간략하게 보여줄 뿐이다. 작가에겐 그가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나 보다 가게 된 이유와 간 후의 삶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 두 지리적 차이는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살던 마을은 그가 활기를 찾지 못하고 가라앉아 있던 시기라면 자메이카는 함께 간 아이맨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곳이다. 이 두 곳은 보통의 우리가 결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낯설고 이국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의 방랑과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소년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다.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나의 가치관이나 철학으로 채피를 자꾸 판단하려고 했다. 이런 작업은 소년의 행동과 심리 상태가 아무리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여도 감정 이입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단숨에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다. 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삶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집중도를 많이 흩어놓았다.
채피 혹은 본 주변 사람들 중 누구 한 명 제대로 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숨겨진 삶이, 욕망이 드러나게 되면 다르다. 모성애보다 이성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중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라면 가족이나 친구도 하나의 소모품이다. 기존 가치관과 윤리의식은 이미 사라졌다. 사실을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 더 우선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맨을 통해 채피가 진정한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사회와 삶의 다른 모습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과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