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누아르? 조선 누아르? 대관절 누아르가 뭐란 말인가?
누아르하면 주로 영화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원래 누아르는 ‘검다’라는 뜻이니 검은 영화, 즉 어둡고 칙칙하고 무거운 이야기인 범죄 영화 등을 이르는 말이겠죠. 1930년대 미국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오히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유행하던 홍콩 누아르가 훨씬 익숙합니다. 오우삼 감독이 이끄는 주윤발, 장국영 등의 대 스타를 만들어낸 ‘영웅본색’이니 ‘첩혈쌍웅’이니 하는 범죄 영화들 말입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범죄 집단의 암투가 주 내용이고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투쟁과 내면의 고뇌 등을 멋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범죄의 미화라는 평을 받기도 했고 말이죠.
[조선 누아르 – 범죄의 기원]도 이런 누아르의 계보를 정확히 이어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배경이 조선이고 총격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칼부림이 중심이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지만 조선시대 검객집단인 검계의 세력다툼, 그리고 외연이 더 확장되어 현재의 경찰 또는 경찰내 특별팀에 해당하는 척감방과의 대립, 거기에다 권력층과 왕까지 개입한 각 세력간의 권력과 이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이 와중에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어 가며 치밀하게 뒤엉켜 전개되는 세 남자의 관계 역시 누아르의 흐름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악인이고 범죄자인 등장인물들에게 사실은 감정이입이 되며 응원하게 되고 성공을 기대하게 되는 이 소설은 누아르 소설이라고 하기에 딱 적당합니다.
“사람들은 선인과 악인이 싸우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악인이 선인을 이기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고 선인이 악인을 이기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인과 악인이 싸우는 경우는 천에 한둘뿐이다. 대부분은 악인과 악인이 싸운다. 이긴 악인은 덜 나쁜 놈이 되고 진 악인은 더 나쁜 악인이 된다. 차악과 극악의 대결을 선인과 악인의 대결로 간주하여 인기를 끄는 소설도 있지만, 그딴 헛소리를 정말 믿는 바보는 없다. (중략) 이기는 쪽은 악이다. 악인이 이긴다.” p.281
이 소설이 누아르로 분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혀주는 대목입니다.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이고 당연히 악이 승리하며 차악과 극악을 가르는 대결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들 중 누군가를 응원하게 되는 희한한 구조입니다.
#2. 이 소설, 정말 재미있다.
무엇보다 [조선 누아르]를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정말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폭주하듯 이야기가 막 달리고 달립니다. 쉴 줄 모르고 끝까지 달려가 종결되는 이야기는 빠져들어 읽게 만드는데 끝나고도 아쉬워서 뒷 이야기를 더 기다리게 만듭니다.
“탈을 쓰는 순간 세상은 나를 잊었다. 내가 각시탈을 쓰면 첫날밤 남정네 앞에서 수줍은 듯 교태를 부리는 새색시를 생각하며 만지려 들었고, 백정탈을 쓰면 죽은 소들의 피가 튀기라도 할까 걱내며 물러섰다. 나는 바뀌지 않았고 탈만 바뀌었지만 세상은 나를 그리 대했다. 그것이 세상이었고 민심이었다. 때론 탈 뒤에 숨어 나를 가렸고 때론 탈을 이용해 나의 본심을 드러냈다. 세상은 나의 탈을 즐겼지만 정작 세상을 즐긴 것은 탈 뒤에 숨은 나였다. 허깨비 놀음이었다.”p.12
세상 이치를 너무나 잘 알고 스스로 탈 뒤에 숨어서 처신할 줄도 아는 주인공 나용주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결국 살인도 하고 범죄집단의 두목이 되기 위해, 권력을 얻기 위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순도 높은 범죄자 입니다. 금지된 밀주를 팔고 밀수를 해서 이득을 취하는 범죄자인데 한편으로는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나라의 정치를 맡은 사람들이 제 주머니 채우기에만 급급한 마당에 이러니 범죄자인 최용주를 마냥 나쁜놈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오히려 응원하게 되니 참 골치아픈 일입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는 보기 힘든 왕이 등장합니다. 결국 자신의 왕권을 튼튼히 하고, 자신의 출신성분을 세탁하는 등 권력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이기는 하지만(이래서 결국 악인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결국은 공권력과 범죄집단까지 이용해서라도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려 노력합니다. 명분도 아니고 자기 체면도 아닌 실질적인 백성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왕이 정말 있었나를 생각하면 현실세계에서는 흔치 않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입니다.
#3. 조선에도 대한민국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악인들의 세계사…
이 소설이 재미도 있지만 의미도 있고 너무 좋았던 것은 현실 세계의 암울함을 은근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비판의식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비판과 교훈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읽는 독자는 눈쌀을 찌뿌리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재림]같은 경우가 잘못된 종교에 대한 비판의식이 지나친 나머지 거의 작가가 직접 등장해 날이 선 비판을 오랫동안 퍼붓는 모습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가 나서 안타까웠습니다. 이 작품의 경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발란스가 거의 완벽합니다. 따로 비판이랄 것도 없이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자연스럽게 현실세계의 풍자가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김탁환 작가님과 이원태 연출자님의 결합은 상당한 시너지를 내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범죄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를 써내는 것을 읽고 이분들의 이후의 행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movie + novel”이라 ” 무블”이라고 명명한 이 시리즈는 앞으로 다섯편까지 일단 내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이런저런걸 다 떠나서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올해 읽은 모든 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의미가 어떻고, 작품성이 어떻고는 다음 문제고 일단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어서 읽고나서 가슴이 뛸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꾼들이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한편으로는 시셈도 나고 뭐 그러네요.
*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최근편에 김탁환 작가님이 출연해서 이 작품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에 대해 소개해주시는데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들어보시면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님들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평생 몇몇 무리에 속하기 마련이다.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나라까지. 힘이 없을 땐 그 청을 받아들였지만,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한 후론 무리를 위해 내 것을 헌납하지 않았다. 무리를 내세우는 자들을 의심하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리의 장래가 아니라 너의 희생이다. 내가 다치거나 죽은 후 무리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리란 헛된 기대는 개에게나 던져 주어라!”p.188
“이 나라엔 민심이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어리석은 서생들이 적지 않다. 활빈당 흉내에서 보듯, 민심은 저절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또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람과 시간과 돈을 들이면, 검계가 활빈당이 되고 활빈당이 검계로 바뀐다. 다짜고짜 민심부터 들먹이는 이를 경계하라. 천하의 바보거나 희대의 사기꾼이다. 어느 쪽이든 가까이 두었다간 큰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