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뻔한 이야기속에 깊은 공감과 여운이 배어나는 진국같은 이야기…

#1. 끝의 시작, 시작의 끝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매듭을 지어야할 시기를 만납니다. 끝을 만날 때면 대부분 상반된 감정이 혼재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끝이나서 홀가분하다거나 시원 섭섭하다거나, 혹은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에 끝을 맞기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끝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서유미 작가님의 [끝의 시작]은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벚꽃이 짧게 피었다 지는 시기에 빗대어 깊이있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각자의 처지와 형편 가운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맞이하는 끝과 새로운 시작 말입니다. 사실 끝으로 치닫는 복잡다난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착찹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은 시작과 맞닿아있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 작품에서 유난히 좋았던 점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짧은 기간에 이야기를 집중했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해 작가가 일방적으로 한계를 짓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각자 맞이한 벚꽃 피는 계절의 혼란함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면서도 각자의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는 그저 열려있을 뿐입니다. 각자의 시작은 그저 희망일수도 또 다른 절망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떤 시작이건 또 다시 끝을 만나게 된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묘하게 희망을 얘기하고 있지 않는데도 이야기를 대하고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2. 공감과 흡입력을 불러일으키는 서술의 힘

 

   이 소설에 유난히 몰입해서 읽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말기 암 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다가 아내로 부터 이혼을 통보받은 영무, 그 영무와의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이혼을 통보하고 도피처인 미용실에서 불장난 같은 사랑을 만나고 다시 떠나보내는 여진, 가정환경이 좋지 못하고 직장도 이렇다할 것이 없어 남자친구에게 결국 이별을 통보받은 갈곳 없는 청춘 소정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놀라운 것도 없는 흔하디 한한 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설정 인물과 사건의 전개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각 인물들의 처한 상황과 행동과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글에는 뭔지 모를 슬픔과 서글픈 정서가 짙게 묻어납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각각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만큼 감정선을 섬세하게 잡아내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별다른 설정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에 이정도로 집중해서 이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취향에 맞은 것인지 보편적인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능력인지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어느정도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무척이나 공감하는 가운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뻔함의 미학, 살아있는 것들의 안쓰러움으로 인한 진한 페이소스…

 

   뻔하고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나고 있을 법한 설정과 예상 가능한 사건의 전개는 이 작품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애잔함과 쓸쓸함에 한층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의 이야기가 전혀 예측 못했던 놀라운 인물관계나 반전으로 짜여졌다면 오히려 인물들에게 깊이 동화되고 빠져드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자라면서 부모에게, 친구에게, 순정을 바쳤던 이성에게, 그리고 배우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상처로 인해 [끝의 시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아픔과 몸부림과 좌절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대체로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둔감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 흘러가는 이야기, 인물들의 심리와 반응은 너무나 잘 이해가 되고 마치 나의 경험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보편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결같이 아프고 서글프고 답답한 모양새로 살아가는 영무와 여진, 그리고 소정의 삶의 단면을 지그시 들여다보자면 형언할 수 없는 안쓰러움이 밀려옵니다. 이런 깊은 페이소스가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마음 한켠에 깊은 위로를 안겨줍니다. 그리고 “서유미”라는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눈여겨 보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