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타고 달리면서 고백하는 희망과 아픔, 그리고 사랑
중,고등학교땐 시(詩)를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국어시험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분야가 시(詩)였었고, 함축적인 의미를 찾기가 힘들어서 무척이나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시가 나이가 듦으로서 점점 좋아지더니 고인이 되신 기형도님을 만나고 나선 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그렇게 싫었던 함축적인 말들이 좋아지고 은유적 표현이라든가, 그 시가 담고 있는 내재적 의미들이 좋아지는 걸로 봐서 나도 이제 진정한 인생의 의미들을 깨닫고 있나 보다.
<세기말 블루스>,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로 유명세를 탄 신현림 시인이 『침대를 타고 달렸어』란 독특한 제목의 시집을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신현림 시인의 전작들이 허무적이고 비관적인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 허무적이고 비관적인 세상을 달관하고 고통마저 감싸 안으며, 어렵고 살기 힘든 세상을 어루만지는 성숙되고 관조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는 시인 자신의 생생한 아픔들을 고백하는 시부터 시인이자 사진작가, 에세이스트로 활약하는 저자의 이력처럼 포루투갈, 베이징, 중앙아시아 타림분지의 동부에 있는 유적지 누란(樓蘭), 인도, 이스탄불,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프라하 등 사진작가로 세계를 여행하면서 작자 자신이 느낀 감정들을 하나둘씩 꺼내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던 설렘이 친밀한 웃음으로 되돌아올 때의 기쁨을 침대 위에서 쓰는 시를 통해 누리고 있다.
또 나의 분신이자 사랑했던 엄마를 잃은 슬픔속에서 그녀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에서는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엄마의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곧 잃어버릴 것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통해 그녀 자신이 느끼는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엄마,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그래, 고맙다.”
“밥과 약은 엄마 지켜 줄 별이야. 잘 챙겨 드세요.“
잃어버릴까 두려워 터져 나온 ‘엄마’란 말
천 번을 부르고 천 번을 사랑해, 외쳐도 부족하다
1년째 의식불명이신 어머니, 아무 대답도 없으시다
지금도 메아리친다 마지막 통화, 마지막 말이
“우리 다시 만나자” (본문 113쪽 ‘마지막 통화’ 中에서)
그리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사람들이 하는 불륜에 대한 메시지까지…
헤어져도 남는 건 색정보다 마음이 담긴 물정이래요.
준만큼 못 받고 쌓이면 떠나는 게 사람이고, 통로 잘 살피면 널린 게 솔로지요.
생각을 바꾸면 환한 기운 메아리같이 퍼질 겁니다. (본문 119쪽 ‘불륜의 사랑, 믿지 마요’ 中에서)
신현림 시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홀로 딸을 키우면서 강해져야만 하는 모성애를 느꼈고, 떠나보낸 어머니를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세상을 여행하면서 느낀 설렘들의 희열을 같이 느낄 수 있었던 『침대를 타고 달렸어』
오늘 나도 침대를 타고 달리면서 내 가슴속에만 남아있던 추억들을 한 장의 종이에 그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