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를 자주 울린다.
나에게 개츠비는 그저 고전이었다.
아주 어릴 땐 만화로 봤던 책이었고, 글을 읽기 시작하며 청소년을 위한 문학으로 접했었다.
잊고 지내던 개츠비를 다시 만난 건 한 차례의 연애가 끝난 직후였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묘사방식을 좋아했기에 향수에 젖어 책을 펼친 나는
몇 차례나 눈물을 쏟았다.
그와 나는 그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이별을 결정했다.
우리의 연애가 개츠비와 데이지의 것처럼 소설스러운 연애는 아니었지만
이별은 나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는 나에게 ‘돈 많은 남자’를 만나고 있으라고 말했다.
혼자서 곱씹으며 자주, 그 말에 울었다.
더 좋은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그의 음성에서 나는 개츠비를 떠올렸었다.
그리곤 잊었었는데, 책을 펼치니 그곳엔 개츠비라는 가명을 쓰는 그가 등장했다.
나는 데이지만큼 예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았지만 그가 개츠비라면 나는 데이지인 것이다.
나에게 돈냄새가 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소설을 정독하고 난 후
우리의 이별이 당연한 결과이며 그의 마음은 개츠비의 마음처럼 갈기갈기 찢겨 아팠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별을 인정하고 감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성인이 된 이후 첫 연애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개츠비를 통해 그를 보았고, 피츠제럴드의 서사를 통해 이별을 이해했다.
소설을 지침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면 몰라도 이별엔 더욱.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 ‘위대한 이별 지침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