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History)는 이야기(Story)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이 바로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곧 역사가 된다.
KBS에서 재미진 역사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십 명의 PD와 작가, 스태프와 패널들이 모여 2013년 가을 「역사저널 그날」을 첫 방송했다.
‘그날’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끼리의 만남이나 빅 이벤트가 있었던 날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조선 개국을 연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이나 세조와 한명회의 만남 같은 것이다. 빅 이벤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종이 토지에 대한 새로운 세법, 공법{貢法) 시행을 앞두고 실시한 전국 여론 조사였다. 이날은 1430년 3월 5일(음력)이었다.
먼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보자. 두 사람의 첫 대면이 이루어진 것은 1383년 가을 함주(함흥)에서였다. 함주(이성계의 고향)에 주둔하고 있던 이성계의 군막에 정도전이 찾아왔다. 당시 이성계의 나이 마흔 아홉, 정도전이 마흔 둘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10년 만에 조선 건국을 이뤄 냈다.
세종 때 실시된 토지세 개혁은 임금의 황소걸음과 뚝심을 잘 엿볼 수 있다. 당시 토지세는 관리가 직접 답사해서 작황을 고려해서 3등급으로 나누었다. 이때 관리가 자의대로 판단하다 보니 원성과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세종은 토지세를 개혁하고자 했다. 주요 개선안은 토지를 6등급[田分六等法]으로 나누고 그해의 작황을 고려해서 다시 9등급[年分九等法]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의 전면 실시를 앞두고 1430년 5개월에 걸쳐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조사대상자가 17만 여 명이었다 하니 가히 놀랍다.
이렇듯 「역사저널 그날」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시작으로 조선 왕조의 주요 만남과 그날을 다룬다. 우선 1권에서는 태조 이성계, 왕자의 난과 태종, 그리고 세종까지.
서술 방식은 대담형식을 취한다. 진행자와 전문가 등 패널 출연진은 가독성을 고려해 ‘그날’로 묶고,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 류근 시인 등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모태는 KBS 「역사저널 그날」의 방송 영상과 대본, 방송 준비용 각종 자료 등을 토대로 했다.
‘일러두기’에 따르면 인용된 사료는 『국역 조선왕조실록』 등을 바탕으로 하고, 본문의 맥락에 맞게 일부 축약·수정하였다. 원본 사료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 고전 종합 DB’(db.itkc.or.kr)을 참고하였다.
나는 역사의 팩트가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불씨라고 본다. 그 팩트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깨어있는 독자들의 몫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책을 통해 제법 다양한 팩트를 얻을 수 있다.
가령 경빈 김씨에 대한 헌종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는 《해를 품은 달》과 같은 로맨스 소설로 되살아날 수도 있겠고, 조선시대 궁궐 전문 건축가 박자청을 좀 더 연구해 보면 선인(先人)들이 지녔던 건축학적 미학을 엿볼 수도 있겠다.
한편 독특한 구성과 풍성한 사진 자료는 읽는 맛을 한층 더해 준다. 지면을 통해 만나는 역사 토크! 흥미롭다. 부족한 2퍼센트의 행간을 읽어내는 일은 또다른 지적 즐거움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