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접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바로 ‘지하로부터의 수기’다. 죄와 벌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더 오래 걸렸다. 그 이유인 즉슨 주인공으로부터 대리수치심을 계속해서 느꼈기 때문이다. 비굴하고 비참하고 찌질한 인간의 내면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그 내면이 어떤 건지 매우 잘 알고 있기에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볼 때마다 괴로웠다. 제발 그만해. 제발 그런 행동 하지마. 제발 그런 생각 좀 멈춰.
‘아 왜저래’ 라는 생각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1부가 최근 시점이고 2부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적은 것이다. 보통 1부에서 진입장벽을 느낀다고 하던데 나는 1부를 상당히 흥미있게 읽었고 오히려 2부에서 저 수치심때문에 읽는 게 힘들어졌다.
주인공이 마지막쯤에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부러워할 거라고. 본인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점잔떨기만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라는 거다. 그러나 전혀 부럽지 않았다. 만약 주인공이 올곧은 생각을 가지고 그대로 행동에 옮겼으면 조금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전혀 ‘행동하지 않는다.’ 그저 말로만, 아니 생각으로만 온갖 행동을 다 하면서도 정작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모르고 있다. 행동하고 있는 줄 안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성격인 건 애초에 초반부터 알 수 있었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사람이 숨기고자 하는 내면의 생각과 무의식과 본질적인 심리에 대해서 상당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의 작품을 조금만 읽어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대리 수치심을 느꼈던 것이다.
죄와 벌에서도 주인공에게 양가감정을 가졌었다. ‘그렇게 하지 좀 말지’ 라고 생각하지만 ‘왜 그렇게 행동하지?’ 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행동이 싫으면서도 그 기저에 깔린 심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도스토옙스키는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소설에 그대로 녹여낸다.
2부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리자를 사랑하면서도 애정을 보이기는 커녕 증오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언행을 한다. 그렇게 하면 리자가 괴로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리자가 괴로워질 때까지 괴롭힌 뒤 리자가 떠나면 또 바로 후회를 한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잘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나서는 후회하는 그런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내가 싫어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