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은 처음으로 읽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이다.
신선한 소재와 흥미로운 내용 전개로 빠져들어 읽게 된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강해 초반엔 그런 부분이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안에 담긴 어쩐지 익숙한 현실이 보여 서글퍼지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을 파고드는 인상적인 장면과 문장들도 많았다. 인물의 행동의 바탕에 무슨 감정이 깔려있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또 분명히는 모르겠는, 분명 이게 삶의 진리 같은데 알쏭달쏭하고, 멀어보이지만 실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은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들. 그러한 소설의 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코지모의 삶이 보이는 모순이었다. 처음에는 실수로라도 절대 땅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고집스러움이 코지모의 가장 대표적인 면모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사실 시작부터 끝까지 누구보다 성실히 남들을 도운 사람이었다. 땅을 밟을 수 없는 게 코지모의 삶의 제약이었는데, 어쩌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가진 더 큰 제약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지모는 그 제약에서 벗어남으로써 유일하게 넓은 땅을, 수많은 사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세상을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해의 다른 말이기도 하니까. 그가 그렇게 땅을 밟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그의 세상도 좁아졌을지도. “나무 위에서 살았고—땅을 사랑했으며—하늘로 올라갔노라.” 그의 삶을 완벽히 요약한 이 비문도 감동이었다.
재미있는 책들은 읽고 나서 그저 재미있었다는 감정 외에 무언가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많은데 이 책은 길게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칼비노의 다른 소설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