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 페스트의 밤

연령 7세 이상 | 출간일 2022년 3월 4일

오르한파묵의 책은 #내이름은빨강 이후로 처음인데 천일야화 전권을 완독했기 때문에 이국적인 호칭이나 명칭-술탄이나 파샤, 파디샤 같은-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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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초반, 페스트가 극성이던 시대, 민게르섬이라는 오스만제국 소속의 가상의 작은 섬에 페스트가 발병하고 저명한 약사이자 제국 수석방역관인 본코프스키가 암살됨에 따라 오스만제국 최고통치자인 압뒬하미트의 조카인 파키제 술탄과 그의 남편인 의사 부마 누리가 본코프스키의 죽음을 밝혀내고 페스트를 종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파견되면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방대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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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방역체계와 닮은 점도 많고 오스만제국이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으며 민게르섬이 봉쇄되고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늘어가는 사망자와 시민들의 불안, 체제 전복, 통치자의 사망과 혁명 등 전염병이 평화로운 섬 민게르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데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고통받는 현재와 비교하며 읽으면서 닮은 점, 다른 점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한국에서 살고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백신이 없는 전염병,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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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55

“……아무도 전염병이 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방역이 가게가 문을 닫고, 의사와 군인이 사람들 집에 들어가고, 교역이 멈춘다는 의미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무슬림 마을에서 군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가정집에 들어가려고 하는 기독교인 의사는 운이 좋지 않습니다. 페스트가 존재한다고 고집하시면 상황이 안 좋아진 상인들은 당신을 중상모략가로 선언하고, 내일이면 페스트를 당신이 가져왔다고 말할 겁니다. 사실 우리 섬은 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관점이 있고, 그것을 표출하기를 주저하지 않지요.”

P.348

일상에서 거짓말과 징조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희망을 찾지 못하면 깊은 ‘체념’의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와 논쟁한적이 있는 이 정신 상태에 대해 누리는 ‘운명주의’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 생각에 ‘운명주의’는 아니다. 왜냐하면 운명주의를 믿는 사람은 위험을 알지만 신에게 자신을 맡겼기 때문에 조치를 하지 않는다. ‘체념에 휩싸인 절망’인 경우 위험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

P.367

이스탄불의 명령으로 섬이 봉쇄된 이유들을 설명하는 성명서가 마치 전염병과 방역 공고처럼 도시 곳곳에 걸렸다. 성명서는 봉쇄가 민게르 사람을 겨냥한 게 아니라 사람들을 몰래 도피시키는불법 행위를 하는 범법자들과 그 배들을 막기 위해 단행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봉쇄는 모든 섬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 결정은 세계가 그들에게 “너희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우리한테서 떨어져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신호였다. 항상 유럽과 러시아로부터 보호를 기대하던 정교도 룸들은 유럽인이 그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슬림들도 압뒬하미트가 그들을 버렸다고 느꼈다. 어떤 이들은 곧 이 고통스러 운 사실을 얼버무리고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들을 꾸며 냈다. 예를 들어 파디샤의 구호선인 페리보트 수후레트가 군인과 보급품, 약을 싣고 길을 나섰다, 사실 사망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광견병처럼 주사 한 방으로 전염병을 종식시키는 백신을 발견했고 단지 백신 적용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봉쇄했다. 집에서 주로 민게르어를 쓰는 사람들, 테케와 호자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분노는 섬을 봉쇄한 영국인과 프랑스인들만을 향했다. 압될하미트에게는 화를 내지 않고 그도 어쩔 수 없었노라고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P.511

룸 공동체 수장인 콘스탄틴 에펜디의 딸은 회고록에서 페스트 당시를 이야기하며 치테, 게르메, 카디를레르처럼 전염병이 가장 심하게 발생하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아 가족을 먹여 살렸다고 썼다. 뒤뜰을 빠져나온 아이들은 도시 밖으로 나가 무리를 지어 들판과 비밀 통로와 숨겨진 좁은 길을 지나며 블랙베리와 야생 딸기와 아욱을 따고 두 시간 만에 다미타시천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다미타시 계곡의 험한 바위 절벽에 도착했다. 우리 소설의 어두운 분위기에 숨이 막힐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그곳 얕은 물속에서 바짓단을 걷어붙이고 바구니와 막대기에 묶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이 사실 행복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콘스탄틴 에펜디의 딸은 조금 전에 언급한 회고록에서 이 아이들이 개울 어귀에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손에는 그물을 들고서 초록색 숭어를 잡을 때 ‘레벌루시옹’과 캬밀 파샤의 대통령직 취임을 선포하는대포 소리를 들었다고 ‘향수’에 젖어 쓴 바 있다.

P.530

“지휘관 캬밀 파샤는 민게르 민족이 세계의 모든 다른 민족들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민족의 영광과 존엄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합니다.” 누리가 말했다. “그런데 이 교수대를 계속 전시해 둔다면 민게르 민족이 사형을 좋아하는 사악한 민족으로 비칠겁니다.”

“100년 전에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왕과 부자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되는대로 사람을 잡아들여 단두대로 죽일 때는 괜찮았는데 우리가 이곳에서 건방진 살인자와 방역을 방해하는 분리주의 매국노들을 처벌하는 것은 잘못이군요……” 사미 파샤가 대답했다.

하지만 사미 파샤와 의사 누리 사이에는 지난 두 달 반 동안에 일종의 동지애가 생겼기 때문에 이 논쟁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누리는 사미 파샤에게 까마귀와 갈매기들이 죽은 사람들의 시체와 죽은 쥐들을 먹으면, 그것들이 병에 걸리지는 않지만 병을 퍼뜨린다고 설명했다. 사미 파샤는 그의 까마귀가 시체의 눈, 코, 귀를 쪼는 것을 몇 번 보았다. 허수아비를 무서워하는 까마귀들이 왜 시체는 두려워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