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막바지로 갈수록 브론스키에 의존하고 불안에 떠는 안나를 볼 수 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사랑뿐이었으나 브론스키에게는 아주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안나의 딸은 존재 자체가 그녀가 저지른 부정의 증거였으며 브론스키를 떠날 수 없고 카레닌에게 갈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부정을 저지르기 전의 평온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아들 세료자와 그녀의 부정 자체인 딸 안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타슈겐트로의 부임을 거절하고 안나와 함께 떠난 브론스키의 모습에서 “Es muss sein!”을 외치며 스위스를 떠난 토마스가 떠올랐다. 영원히 상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각된 사랑은 과연 진실된 것일까? 다른 점이 있다면 토마스는 테레자를 다시 만난 순간 그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브론스키의 경우 사랑이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톨스토이의 결혼은 실패했다. 톨스토이는 아내 소피아와의 거듭된 불화로 82세의 나이에 가출을 하였고, 나흘만에 폐렴에 걸려 시골의 간이역에서 세상을 떠났다. 결혼에 대한 톨스토이의 부정적인 시각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역시 확인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가 그리는 긍정적인 결혼에 대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레빈과 키티의 결혼과 브론스키와 안나의 생활은 굉장히 달랐다. 브론스키와 안나의 신혼은 달콤했다. 평온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빈과 키티의 신혼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기에 고통스러웠다. 바센카가 보이는 과한 친절에 레빈은 기분이 상했고, 이 모든 감정을 키티에게 털어놓았다. 안나는 바센카의 친절을 브론스키 앞에서 조종하며 자신에 대한 그의 애정을 시험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를 믿지 않았던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결코 해소될 수 없는 불신과 의심이 결국 안나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따라서 톨스토이가 그린 이상적 삶에 대해 정리해보면, 부부가 서로에게 진실되고,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가능성’을 지니지 않는 결혼 생활을 하며 삶의 이유 같은 답이 없는 질문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삶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