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TV를 통해 알게된 세계문학중 하나. 제목보다 표지 뒷편의 문구에 끌렸다. ‘러시아의 조지오웰’이라 불리는 작가라니…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내 생각보단 어려웠다. 조지오웰의 1984는 메시지와 재미를 모두 가진 작품이였는데, 이 책은 메시지는 있으나 재미는..ㅠㅠ 흑..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이 있다면 책 뒤의 작품해설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러시아의 당시 상황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내게는 분명했기에.
책은 주인공이 없다. 한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기 보다, 여러사람의 말이 얽히며 스토리를 이끈다.
보셰프는 직장에서 일하는 중 생각에 잠겼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곳에서 인간은 준비된 계획에 따라 일을 하면 될뿐, 개인의 생각은 무의미한것이였다.
“보셰프 동무, 행복은 물질주의에서 생기는 것이지 의미에서 생기는게 아니오. p.11”
그렇게 보셰프는 헤매이다가 전체 프롤레탈리아 거주지에 다다른다. 그곳은 그곳에 모인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인 곳이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닥 공사를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그 공사의 책임자 파시킨, 그리고 무능력하고 생각만으로 가득찬 브루주아 출신 프루셉스키, 불구이지만 누구에게나 할말은 다하고 사는 차체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신념이 강한 치클린.
이 이야기는 보셰프를 포함하여 이들의 대화와 생각으로 흘러간다. 이 시대는 가진자는 부농으로 취급되며, 죄인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빈농으로 부농들을 찾아 약탈하고 불지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시대였다.
당으로부터 떨어지는 일감은 계속해서 늘어가지만 언젠가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집을 짓는 다는 명목으로 구덩이를 파던 중, 어느순간 그들의 목표는 부농을 제거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부농을 축출하고, 그래서 그들을 떠나보내고, 그들이 가졌던 것들을 빼앗는것.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점차 사라져간다.
부농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사회주의 물결에 빠르게 물들어가는 나스탸를 만나, 그녀의 밝고 쾌활함에 모두가 즐거워하지만, 그들이 휩쓸린 사회에서 속에서 그들은 그녀를 잊어간다. 그렇게 누구보다 지켜주고 싶었던 그녀를 잃고, 다시 구덩이로 돌아왔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누가 알겠니.” 그가 나스탸에게 대답했다. “일하고 또 일하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알게되면 지쳐서 죽을지도 몰라. 자라나지 마라, 아이야. 자라나면 슬퍼져요” p.186
그들도 사회주의 물결에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갖는 그 집단화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면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것 같았다. 보셰프의 생각, 자체프의 독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무능력했지만 이해가 갔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프로셉스키. 자신이 자랐던 부르주아라는 배경이 더 안락했지만,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 사회주의 물결을 타 지금은 집단농장에 있으면서도 어떤 반항도 의견도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 죽고싶은 생각을 하지만 죽지 못했고, 동생을 걱정하지만 동생에 대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지극히 수동적인 인물. 왜냐면 그 사회는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 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굶주림이나 병으로 또는 부농으로 몰려 죽어야 했던 이들의 삶은 그저 부수적인 데미지에 불과했던 것.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그래서 그 시대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망했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재산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인간 개개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목표만이 중요했던 사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사회는 결국 전체주의, 독재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 되고, 그런 사회가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는 뻔하니까.
내가 읽었던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에서는 대체로 그 배경에 깔린 시스템의 불합리가 한 인간을 어떻게 극단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았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그 시대의 사회주의가 그 시대속의 사람들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그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 시대가 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당위를 말하고 있기에 이 책은 디스토피아가 아닌건가…하는 생각들기도했다.(하지만 작가는 몰랐겠지..)
이 책은 문득 문득 지금도 되살아나는 그시대의 파편, 어쩌면 데자뷔 같은 일들에 대해 경고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디스토피아는 늘.. 섬뜩하다. 왜냐면 지금 우리에게 늘 경고를 하고 있으니까.
조금 어려웠지만 읽어볼만한 소설.
추천!
“이 닳아 빠지고 참을성 있는 낡은 물건들은 언젠가 품팔이하는 사람들의 피와 살을 만졌고, 물건들에는 허리가 굽은 삶의 무거운 짐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삶은 의식적인 의미 없이 낭비되고 대지의 지푸라기 아래 어디선가 영광을 보지 못한 채 영락해 버린것이다.” p. 182